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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팝뮤지컬의 뜨거운 밤은 계속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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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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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스의 음악에 열광하는 관객들로 가득찬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맘마미아> 이후 높아지는 팝뮤지컬 인기에 국내 창작물도 도전장 내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들은 검지로 하늘을 치르는 독특한 춤 동작에, 알파벳 제목을 촘촘히 새긴 주황색의 장막에 홀린 듯했다. 존 트래볼타가 영화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몸짓이 무대에서 재연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리라. 그리고 막이 올랐을 때 전설적인 그룹 ‘비지스’의 대표곡 <스태잉 얼라이브>(Staying Alive)의 경이로운 보컬 하모니가 귀에 박힌다. 여기에 뉴욕 청춘들의 춤과 노래 사이로 사랑과 방황, 갈등 등이 어우러지면서 토요일 밤 댄스 플로어가 달아오른다. 공연이 마무리될 즈음엔 열광적 환호와 뜨거운 박수를 보내던 관객은 일어나 팔을 뻗어 객석의 배우로 순식간에 변신하기도 한다.

비지스의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추억


비지스의 <토요일 밤의 열기>는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으로 원곡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공연하는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콘서트 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객석의 분위기로 보면 ‘한류 스타’의 무대를 찾은 듯하다. 하지만 객석은 10대 팬들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는다. 대신 비지스의 노래를 흥얼흥얼하는 중년 관객이 수두룩하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비지스가 내뿜는 하모니는 삼형제가 가진 DNA의 결실”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비지스는 1960년대에 활동을 시작해 30여 년 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지금껏 팝음악을 듣는 사람치고 비지스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비지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지스의 주옥같은 멜로디와 현란한 몸짓이 어우러진 무대. 이미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를 통해 디스코 세례를 받은 올드 팬들로선 놓치기 아까운 공연임이 틀림없다. 오리지널팀의 공연이라 정열의 스테이지에서 라이브 연주로 비지스의 원곡을 듣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지난날에 대한 향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지스의 음악을 즐겨듣지 않은 세대일지라도 디스코와 라틴댄스·재즈 등 세련된 춤 동작에서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으리라. 청춘의 성장통을 새긴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애당초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1998년 영국 웨스트엔드 팔라디움 극장에서 초연했다. 비지스의 메니지먼트를 맡았다가 영화사 ‘RSO’를 설립해 동명의 영화에 존 트래볼타를 등장시켰던 로버트 스틱우드가 제작자로 나선 것이었다. 이전에도 가수들의 인기곡들로 드라마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공연 마니아 계층이 뚜렷이 구분되는 영국에서 ‘블루칼라’ 계층의 절대적 지지로 1년 뒤 브로드웨이 민스코프 시어터에 진출해 ‘팝뮤지컬’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올드 팬 유혹하는 팝뮤지컬 잇달아

사실 국내에서 팝뮤지컬이 주목받은 것은 지난 2004년 뮤지컬 <맘마미아>를 통해서였다. 아바의 히트곡 20여 곡으로 꾸민 <맘마미아>도 1999년 런던의 프린스 에드워드 시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초연 뒤 4년 만에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맘마미아>는 브로드웨이에서도 99%라는 경이적인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맘마미아>의 놀라운 성취는 영국의 극작가 캐서린 존슨을 통해서 이뤄졌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아바의 노랫말을 온전히 살린 드라마를 구성했다. 세 명의 옛 애인이 딸의 결혼식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엉뚱한 설정과 모녀 간의 갈등과 화해에 아바의 노래가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아바의 <맘마미아>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노랫말과 스토리 라인이 절묘하게 만난다.

현재 <맘마미아>는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앙코르 공연을 한다. 국내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는 라이선스 공연이라 자막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 오리지널팀의 공연에서는 원곡의 맛을 느끼기 좋아도 자막을 보며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기는 벅차다. 게다가 원어에 심어놓은 ‘웃음 코드’를 지나치기 일쑤다. 웃음이 터져야 할 때를 찾지 못해 객석과 무대의 거리감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서는 배우 박해미가 분했던 도나 역을 뮤지컬 <명성황후>의 헤로인 이태원과 뮤지컬 대중화의 주인공 최정원이 번갈아 맡아 록그룹 리더의 면모를 보인다.

여기에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24곡으로 만든 브로드웨이산 록뮤지컬 <올슉업>(사랑에 빠져 미치도록 기분이 좋은 상태를 뜻함)이 가세한다. 오는 1월30일 프리뷰 공연을 시작하는 <올슉업>은 지난해 2월 초연된 작품으로 올드 팝의 향수에 탄탄한 스토리를 얹었다. 뮤지컬 <아이러브유>의 극본을 쓴 조 디피에트로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모티브를 얻어 얽히고설킨 사랑의 실타래에 열정과 즐거움이 날뛰는 스토리 라인을 구성했다. 경쾌한 로큰롤 리듬에 맞춘 화려한 안무, 기발한 무대 등은 팝뮤지컬의 새로운 진화를 확인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토요일 밤의 열기>와 <맘마미아>는 라이선스 뮤지컬로 국내 공연이 이뤄졌다. 이에 견줘 <올슉업>은 처음으로 국내 관객을 만난다. 당대의 문화혁명자로 군림했던 엘비스를 떠올린다면 뮤지컬 관객층이 60대까지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엘비스는 1950년대에 사랑에 관한 직설적인 가사와 허리를 빙빙 돌리는 춤으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엘비스의 노래와 춤을 선보일 남자 주인공 채드 역은 파워풀한 음색의 김우형과 떠오르는 샛별 조정석이 맡았고, 사랑을 위해 남장까지 불사하는 여자 주인공 나탈리 역은 뮤지컬계의 기대주 윤공주와 가수에서 배우로 변신한 이소은이 분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올슉업>은 경쾌한 리듬에 화려한 안무와 무대가 돝보인다.

이렇게 해외 팝뮤지컬이 저마다의 색깔로 올드 팬을 무대로 유혹하고 있다. 여기에 팝음악을 사용한 국내 창작 뮤지컬도 등장할 태세다. 공연 제작사 ‘소나기 아츠’가 오는 3월에 막을 올릴 뮤지컬 <래퍼스 파라다이스>는 1990년대 힙합 가수 ‘투팍’(2PAC)과 ‘노토리어스 BIG’(Notorious BIG)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과 우정, 배신 등을 소재로 삼았다. 국내의 대표적인 힙합 가수 ‘가리온’과 ‘쥬비트레인’ 등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홍익대 인근의 지하클럽을 개조한 전용관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단지 추억을 자극하는 데 머물지 않고 객석과 무대의 소통을 꾀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국내 창작물 <래퍼스 파라다이스>의 등장

이미 국내에서도 팝뮤지컬 형태의 공연이 해마다 무대에 올랐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3)를 시작으로 <달고나>(2004), <매직 카펫 라이드>(2005), <동물원>(2006)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기존 가요 히트곡으로 만든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달고나>는 무뎌진 감성의 7080 세대를 자극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오래된 추억의 노래를 현대적 감각으로 포장했을 때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그 뒤 무대에 올린 <매직 카펫 라이드>는 자우림의, <동물원>은 그룹 동물원의 노래로 만들어졌다. 앞으로 <젊음의 행진>을 비롯해 김광석, 그룹 산울림, 이문세 등의 노래가 뮤지컬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룹 동물원의 <동물원>은 특유의 서정적인 노랫말이 잔잔하게 가슴에 파고드는 무대를 만들었다.

이런 팝뮤지컬은 귀에 익은 노래로 드라마를 만들어 관객과의 소통이 용이하다. 국내 가요만 해도 아시아권에서 드물게 독자적 흐름을 형성해 한류 상품 목록에 오를 잠재적 가능성도 있다. 검증된 대중음악 콘텐츠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양한 형식적인 도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때의 유행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씨는 “어떤 공연은 라이브 연주도 없이 팝뮤지컬을 표방하기도 했다. 복고·향수 마케팅만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진부한 형식의 공연을 되풀이할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무빙 아웃>의 창조적 실험을 주목하라

이런 의미에서 빌리 조엘의 노래를 소재로 트와일라 사프가 안무를 맡았던 뮤지컬 <무빙 아웃>(Moving Out)의 창조적 실험을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댄스 뮤지컬로 만들어진 <무빙 아웃>은 이중 무대에서 전혀 새로운 공연을 보여줬다. 절반의 무대에선 빌리 조엘의 모창을 연주하는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고, 다른 한쪽에선 모던댄스 공연을 선보인 것이다. 초기에 평론가들은 ‘형편없는 공연’으로 혹평했지만 브로드웨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토니상을 받았다. 춤과 노래에 바탕하는 뮤지컬, 그 절반의 고민을 해소한 팝뮤지컬의 여유는 형식적인 도전을 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팝뮤지컬의 흐름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톡톡 튀며 진화하는 쇼

어 트리뷰트’와 ‘컴필레이션’의 단순 구분 탈피해 형태적·구조적 변화 모색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평론가 jwon@sch.ac.kr

팝뮤지컬은 흘러간 옛 대중음악을 가져다 극적으로 활용하는 부류의 작품들을 지칭한다. 대중에게 익숙한 왕년의 히트곡 멜로디를 빌려 극적 구성에 녹여냄으로써 뮤지컬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친근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팝뮤지컬은 그 특성에 따라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먼저 특정 음악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뮤지컬을 만드는 경우로, 흔히 ‘어 트리뷰트 쇼’(A Tribute Show)라 불린다. 말 그대로 해당 음악가의 작품이나 업적을 기리는 성격의 뮤지컬을 말하는데, 덕분에 이런 어 트리뷰트 쇼에는 단순한 뮤지컬 애호가뿐 아니라 그 음악가와 그가 만든 음악을 좋아하는 일반 음악 팬들까지도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경우가 흔하다. 때로는 빈약한 스토리나 무대적 구성의 허술함이 있더라도 지나간 그 시절 본인이 좋아했던 음악을 생음악으로 재연한다는 매력 때문에 큰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다.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맘마미아>(Mamma Mia), 퀸의 음악으로 만든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로드 스튜어트의 음악으로 만든 <투나이츠 더 나이트>(Tonight’s the Night), 그리고 오는 3월 개막 예정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올슉업>(All Shook up) 등은 이 부류를 대표한다. 최근 국내 창작 뮤지컬에서도 이 부류의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룹 동물원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동물원>이나 몇 해 전부터 구상 중이라는 소문이 들리는 김광석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은 특정 음악가가 아니라 특정 시대의 음악이나 장르에 맞춰 극적 구성을 꾀하는 부류의 뮤지컬들이 있다. 편집음반과 유사하게 특정 시대의 히트곡을 여럿 담고 있다고 해서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라 불리기도 하고, 동전을 넣으면 다양한 싱글 음반을 들을 수 있는 기계와 비슷하다고 해서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구분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미완성 소설과 공상과학(SF) 영화를 뒤섞어 영국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끈 바 있는 뮤지컬 <금단의 별로의 귀환>(Return to the Forbidden Planet)은 1950~60년대 등장했던 여러 히트곡의 가사를 변형해 만든 대표적인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다. 우리 창작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달고나>는 이 부류의 뮤지컬로 구분할 수 있다.

최근 팝뮤지컬은 세계적으로 그 인기가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기존의 양식을 뛰어넘는 형태적·구조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비틀스의 음악에 애크러배트 묘기를 뒤섞은 태양의 서커스단의 근작 아트 서커스인 <러브>나, 월남전 이야기를 담은 무용극 형태의 댄스 뮤지컬 <무빙 아웃>은 이러한 형태적 변용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최근 뮤지컬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한국형 팝뮤지컬의 모색도 본격화되고 있어 이들의 앞으로의 행로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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