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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웃기 싫은데 왜 이러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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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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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충전소 ‘타짱’, 양배추의 엽기적 합성에 쓰러지다…인터넷 화법으로 업그레이드된 몸 개그에 네티즌 열광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나훈아 선생님은 <갈무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런지 몰라… 알면서 왜 이런지 몰라 두 눈에 눈물 고였잖아…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사랑 앞에서만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고 내가 싫은 게 아니다. 나는 종종 TV 앞에서 개그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이러는’ 내가 싫을 때가 있다. 사람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리는 무조건반사 고전 슬랩스틱 개그를 보면서 웃음이 나올 때 나는 내가 싫다. 입에서 뭘 뿌리고 음식물을 흘리는 지저분한 개그를 보면서도 웃을 때도 나는 내가 밉다.

닭 가면을 쓰고 달걀 먹기


몸 개그를 낮춰 보는 것은 아니다. 몸 개그의 몇 가지 법칙에 꼼짝없이 웃어버리는 게 조금 허탈할 뿐이다. 사람 웃기는 게 참 어렵지만 또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웃는다. 옆 사람을 툭 치기만 해도 웃고 멀쩡하게 걸어가다가 넘어지기만 해도 웃는다.

슈렉 분장으로 좌중을 쓰러지게 한 개그우먼 신봉선(위)과 ‘타짱’에서 5연패를 달성한 양배추(아래).양배추는 5연패를 달성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꼭 개그맨들이 아니라고 해도 한겨울 빙판길에서 삑 소리를 내며 미끄러진 아저씨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슬랩스틱이라고 부르는 몸 개그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몸 개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구 심형래나 맹구 이창훈을 보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분장은 바보 같을수록 웃긴다. 2. 말은 어눌하게 할수록 웃긴다. 3. 1분에 1번씩은 넘어져야 웃긴다. 4. 주변에서 다같이 넘어져주면 더 웃긴다.

최근 TV와 인터넷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웃어버리고 만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방송 <웃음충전소>의 ‘타짱’이다.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개그야>는 개그의 폭을 넓히고 각종 캐릭터를 만들어가며 웃음의 코드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본능적으로 웃는다기보다 나의 감각이나 취향과 맞아떨어질 때, 절묘한 말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반전을 만들어낼 때 웃는다. 머리를 한 번 쓴 사람보다 두 번 쓴 사람이 더 웃는다고 할까. <웃음충전소>는 고전적 코미디로 승부하겠다는 취지로 신설됐다. 이에 맞게 ‘타짱’은 모양새로만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꽤나 머나먼 과거로 간 형태의 개그다. 대사나 애드리브는 절대 금지다. 절대 몸과 분장, 동작으로만 승부한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웃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뭔가 참신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타짱’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며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타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코드의 몸 개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몸 개그의 코드는 ‘바보’였다. 위에서 늘어놓은 몸 개그의 법칙도 ‘바보 연기 하는 법’에 가깝다. ‘타짱’은 몸 개그의 코드를 ‘바보’에서 ‘합성·엽기’로 바꿔놓았다. ‘타짱’의 승부 결과를 보자. 코나 입에서 뭔가를 흘리거나 기구를 이용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어설픈 흉내를 낸 출연자는 대부분 졌다. 설령 이겼어도 기억에 남질 않는다. 반면 5연패를 달성한 양배추(조세호)의 역대 레이스 모습을 보자. 불상 가면을 쓰고 앉아 있거나 말 가면을 쓰고 당근을 먹는다. 돼지 가면을 쓰고 노트북을 두들기고 닭 가면을 쓰고 달걀을 먹기도 한다.

온몸을 초록색으로 칠하고도…

이런 모습은 디시인사이드 필수요소 갤러리처럼 합성·엽기 갤러리, 코믹만화에나 등장할 법하다. 아깝게 진 신봉선의 ‘슈렉-두꺼비’ 캐릭터나 이상구의 ‘농민의 난’ 캐릭터 역시 합성 이미지에서 현실로 튀어나온 듯하다. 이렇게 무작정 튀어나오는 본능적인 웃음은 ‘바보’에서 ‘합성·엽기’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타짱’이 시청률은 낮은데 인터넷에서만 열광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타짱’은 인터넷의 화법에 더 잘 맞는 코너니까.

‘타짱’의 가장 극적인 드라마는 승부의 마지막, 한 명이 웃을 때 비로소 펼쳐진다. 출연자들은 ‘내가 웃으면 상대방이 이긴다’는 잔인한 법칙 아래 절대 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양배추 앞에서 웃어버리고 만다. 판정단이 누가 더 웃긴지 판정해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온몸을 초록색으로 칠하고도 양배추 앞에서 울어버린 신봉선이나 겨드랑이에 자기를 닮은 형제까지 그려넣은 김홍식은 아마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왜 (양배추 앞에서) 이러는지 몰라 (웃으면 진다는 거) 알면서 왜 이러는지 몰라 (웃음 참느라고) 두 눈에 눈물 고였잖아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하고도 웃어버린)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나도 개그맨인데)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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