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준은 연애 상대에게 주기만 하는 캐릭터다. 민준이 실제 엄정화씨와 비슷한가. 여우가 되려고 꾸준히 노력은 하는데, 완전히 여우가 되지는 못하는 사람. =내 속에 곰이 있다는 건가? (웃음)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공감하는 민준의 대사가 많았다. <싱글즈>의 동미,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홍반장>)의 혜진, “Mr.로빈 꼬시기”의 민준까지 일관되게 가수 이미지와 다른 ‘푼수기’가 있다. = 나 같은 시나리오를 고르는 건 아니지만, 섹시하기만 하기보다는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가 좋다. 그런 취향이 있는 것 같다. “Mr.로빈 꼬시기”에는 “니가 내 엄마냐?”라는 대사도 나온다. 헌신적인 민준이 오히려 애인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엄정화는 ‘뜻밖에’ 누군가를 보살피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싱글즈>에서는 친구를,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는 아이를 보살폈다. 이렇게 섹시한 가수 이미지는 영화에서 거두고 돌보며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로 변주된다. 예전의 기사에 이렇게 썼다. “엄정화는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가수 엄정화가 ‘팜므파탈’에 가깝다면, 배우 엄정화는 ‘자립 여성’에 어울린다. 어쩌면 엄정화의 얼굴은 세 개다. 영화배우 엄정화는 발랄한 독신 여성이지만, 탤런트 엄정화는 조신한 여성에 가깝다.” 엄정화에게 듣는 엄정화의 이미지. 배우, 가수로 이미지가 다르다. =절대로 같길 원하지 않는다. 가수 엄정화는 색깔이 분명하다. 그 색깔을 지키면서 발전시키고 싶다. 가수로서 이미지가 퍼포먼스에 가깝다면, 영화 속 캐릭터는 당신의 취향에 가까운가? =가수로서 퍼포먼스는 나의 환상이 많이 들어간, 말 그대로 퍼포먼스다. 영화는 캐릭터 속에서 내가 표현된 것이고. 섹시함과 귀여움의 황금비율 그가 주연한 ‘본격’ 로맨틱 코미디는 <홍반장>과 “Mr.로빈 꼬시기” 두 편이다. 제목에 공히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들어간다. 하지만 <홍반장>에서 홍반장을 ‘짠’ 하고 나타나게 만드는 ‘누군가’가 중요하다. 그것이 엄정화의 혜진이다. 그리고 “Mr.로빈 꼬시기”에서도 로빈을 ‘꼬시는’ 주체는 민준이다. 이렇게 제목은 배우 엄정화의 능동성을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있다. <싱글즈> <홍반장> “Mr.로빈 꼬시기”의 또 다른 공통점은 섹시함과 귀여움이 황금비율에 가깝게 캐릭터에 녹아 있다는 것. 예쁘지만 너무 예쁘진 않고, 섹시하지만 야하지는 않은 자연인 엄정화는 캐릭터에 현실감을 더한다. 배우로서 30대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강하다. =고집한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것 안에서 고른 것이 그렇게 됐다. 내 취향이 반영된 거겠지. “Mr.로빈 꼬시기”에서도 민준이 연하의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이제 누나라고 불러’라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 민준뿐 아니라 동미, 혜진 캐릭터도 연인과 관계(나이든, 직업이든, 정서든)에서 우위에 있거나 최소한 평등하다. =그 대사는 통쾌했다. ‘밥값도 니가 내’라는 대사는 애드리브였다. 당당한 30대의 삶을 연기하는 것이 좋다. 예전에 “그는 90년대 한국 공중파 방송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팜므파탈이었다”고 썼다. 그는 1993년 <눈동자>로 데뷔해서 2006년 <프레스티지>까지, 9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한 관록의 가수다. 하지만 한국에서 섹시한 댄스 여자가수로 나이 들어가기만큼 ‘미션 임파서블’도 드물다. 엄정화는 “음반을 낸다면 주변에서도 ‘이번엔 발라드겠지’ 한다”며 “시사회 때도 ‘아직은 괜찮아요’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내가 참 뭐랬나, 노~장, 그런 게 힘들다”고 덧붙이는 얼굴에는 답답함이 묻어 있다. 2004년 음악적 모험을 시도한 8집 음반 <셀프 컨트롤>(Self Control)이 히트를 ‘치지는’ 못했지만, 2006년 꿋꿋이 <프레스티지>로 돌아왔다. 여전히 섹시한 퍼포먼스와 함께. 서른 넘은 섹시 여가수, 와이 낫? 섹시한 여가수의 최전선이면서 최장수다. 나이듦에 대한 불안은 없나 =인터뷰하면서 나이, 불안감 물어보니까 생각하게 되는 거지. 보통 때는 생각 안 한다. 그런 질문에 기운도 빠지고. 그렇다면 여기서 서른을 넘은 여가수들은 표현 방식을 조신하게 맞추거나 없어져버려야 되는 건지. 30대 여성들이 섹시한 엄정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신의 좌절된 욕망을 대신해주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너무 신난다. 와이 낫?(Why not?). 이건 정말 쇼다, 쇼.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 왜 자꾸 같아지라고, 맞추라고 하는지. 이번 음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냥 소문이었다. 그런 말한 적 없다. 다음 음반이 참 막연하기는 하다, 사실은. 한국 대중음악의 딜레마가 있다. 음반시장 불황도 문제지만, 음악 수준도 갈수록 세계 시장과 멀어진다는 느낌이다. 8집, 9집은 팝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지만, 대중은 어려워한다. =아쉽기도, 어렵기도 하다. 사실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것이다, 딱 (정해져) 있다. 답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지 않나. 다시 이런 음악도 있어요, 이런 무대도 있어요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이제는 어차피 가수활동은 즐기면서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인기를 의식했다. 이제는 많이 놓았다. 내가 즐기고, 사람들이 신났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끔은 신나지 않는다. 음악적 시도보다 의상 논란, 이런 것이 중심이 되니까. 콘서트도 했으면 좋겠는데…. 예전에 작곡가 주영훈이 엄정화의 콧소리가 최고라고 했다. 애착이 가는 곡은? =<포이즌>(Poison). 처음 전주를 들을 때, 너무 트로트 같은 거 아냐 했다. 딴따라따라따라딴따다~ 지금 들어도 에지(edge)가 있다. <초대>도 좋다. 한국의 마돈나로 불리기도 한다. =마돈나는 너무나 좋아하는 가수다. 하지만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환경도, 시장도 너무나 다르니까. 내게는 따라갈 선배가 없다. 내가 뭔가 길이 됐으면, 그래서 후배들에게 역할모델이 됐으면 싶다. 여기서 위축되고 포기하면 또 엄정화란 가수는 없어질 테고, 서른 넘은 여가수들은 또 나 같은 문제에 부딪힐 테고, 결국은 20대 가수밖에 없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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