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자각, 또는 그저 청춘을 만끽하는 길… 사진집 <하늘빛 사람들>과 <청춘·길>
“사막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일은 없다. 어떤 사막도 다른 것과 닮지 않았지만, 사막에 들어갈 때마다 심장은 더욱 세차게 고동친다.”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이렇게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사막 없는 우리나라에서 사막이란 최고로 이국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여행갈 여유가 못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르 클레지오와 그의 아내 제미아가 함께 낸 사진산문집 <하늘빛 사람들>(문학동네 펴냄)을 보면서 갈증을 달래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미지로만 키워왔던 사막에의 갈망
열세살 때 처음 모로코를 방문한 이래 커져갔던 르 클레지오의 사막에 대한 동경은 모로코인 부인 제미아와 살면서 구체화되었다. 이에 기반해서 나온 작품이 1980년의 <사막>으로, 사하라를 주름잡던 하늘빛 옷을 입은 민족과 그 후손 랄라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또 1997년에 <황금빛 물고기>라는 소설을 썼다. 황금빛 물고기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프랑스, 미국을 떠돌다가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오는 라일라라는 여성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이 여성은 끊임없이 자기가 떠나온 곳을 그리워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작품을 쓸 당시, 르 클레지오 자신은 이 지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내부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입국이 불허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 장모가 해준 이야기에 의존해서 작품을 썼다. 르 클레지오는 아내의 고향을 찍은 사진을 보는 것도 거부했는데, 자기가 직접 그곳을 방문하기 전에 사진을 본다면 이미지에 혼란이 올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신화와 이야기를 통한 이미지로만 키워왔던 아프리카 사막에 대한 그의 갈망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 이번 방문이었다고 한다. 이번 사진산문집 <하늘빛 사람들>은 그의 사막여행기이자, 아내와 함께 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르 클레지오의 부인 제미아의 가족은 사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족이었던 ‘구름부족’(아헬 무즈나)의 후예였다. 책 제목이기도 한 하늘빛 사람들은, 이들 부족이 하늘빛 옷을 입는 데에서 연유한다. 구름부족은 비를 좇아서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며 살아온 부족이었다. 20세기 초, 사하라 지방의 부족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교역길이 막혔다. 에스파니아인들과 결탁한 용병들, 프랑스인들, 새로 생긴 국경선 때문에 통행로가 차단되었다. 이로 인해 경제위기가 오자 식량과 물을 낙타에 싣고 고향을 떠나 문명세계로 이주한 것이다. 작자는 자신의 조국이 만든 비극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유럽인들의 교만함과 사막부족의 우아함을 은연중에 지적한다.
르 클레지오 부부는, 마치 역사 그 자체를 거술러 살아보는 것처럼, 구름부족의 후예가 쫓겨왔던 경로를 거꾸로 여행한다. 여행의 시작은 ‘사막의 문’이라고 불리는 문 모양의 구조물이다. 이들 부부는 이곳에서 여정을 시작하여 제미아의 시원인 ‘붉은 강’, 즉 사기아 엘 함라 골짜기를 따라 떠난다.
일회용 카메라로 표현된 세계
작자가 처음 만난 사막은 “바람의 풍광, 공허의 풍광”이다가,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로, “성스러운 땅”으로 점차 짙은 의미가 부여된다. 르 클레지오는 여행이라는 현실과 함께 장모로부터 들은 신화나 이슬람 신비주의의 가르침을 함께 서술해 사막을 하나의 몽환적인 세계로 만든다. 저자는 또 이곳에서 사막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본다. “태양의 열기를 견디는 법, 온종일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갈증을 참아내는 법, 설령 남들이 다 먹고 뼈에 힘줄과 가죽만 달랑 남는 한이 있더라도 남보다 나중에 먹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행이 끝날 무렵, 제미아는 이모뻘 되는 친지를 만난다. 이에 대해 르 클레지오는, “한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삼촌이나 이모처럼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어떤 사람이 세계의 끝에 있는 어떤 계곡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거기로 가는 것은 진정한 귀환이 된다”고 말한다. 작자는 여행의 끝에서 영원에 이르는 길, 이른바 타리카의 초입을 보았다고 말한다. 자기 존재의 시작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청춘·길>(마음산책 펴냄) 역시 <하늘빛 사람들>처럼 여행길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아프리카 반건조지대 사헬과 아프리카 카메룬의 소도시 바멘다, 그리고 아시아의 버마를 다룬 사진산문집이다. 시인 신현립은 이 책을 가리켜 “영화 <아이다호>에서 청춘과 길이 주던 매혹,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감동”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사진을 찍은 쉰한살의 베르나르 포콩은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소르본에서 철학을 공부한 포콩은 일회용 카메라를 통해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이 책에 쓰인 사진도 어마어마한 장비를 동원해서 세밀하게 찍은 것들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이 일단 여행을 간 다음, 현지에서 일회용 사진기를 사서 찍은 것들이다. 지난 1997년, 그는 세계 20개국의 청소년 2천명에게 일회용 사진기를 주고 자기가 찍고 싶은 대로 사진을 찍게 해서 모은 다음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0월 성곡미술관에서 이 전시회가 열렸다.
반면 글을 쓴 앙토넹 포토스키는 스물일곱의 싱싱한 나이다. 어렸을 때 누군가 자기를 납치해주기를 원하는 소년이었던 포토스키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뜨거운 대기 속에서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 심술궂던 사촌들을 추억한다. 포토스키는 이 과정에서 “내게 아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의 40대, 50대를 상상해보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20대 작가와 50대 사진가의 만남
그러나 이들의 여행은 르 클레지오의 여행처럼 ‘뿌리를 찾겠다’ 혹은 ‘어른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적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언덕길에 세워둔 트럭이 굴러와 지은이가 타고 있던 차를 부수는 사고를 겪기도 하고,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거닐기도 하며, 어떨 때는 한국제 자동차에 몸을 싣고 테크노 음악을 들으며, 청춘의 순간들을 만끽할 따름이다. 이십대 포토스키가 인생에 대해 재잘재잘 말하면 쉰한살 먹은 사진작가는 다음 페이지에서 빛바랜 사진 한장으로 대답하는 식이다. 그러던 중, 포토스키는 자신이 더이상 풍경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때는 풍경이 아름다워 울기도 하고, 공기 그 자체를 삼킬 듯 받아들였던 자기가 불현듯 없어져버린 것이다. 작자는 오로지 자신의 몸, 어른이 된 자신밖에는 남아 있지 않게 됨을 느끼고 밤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간다.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미안하지만 난 가야 해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청춘·길>의 원제는 ‘La plus belle route du monde’,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란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수도 바마코에 있는 길 이름이다. 그 길은 꽃이 만발하고 나비가 가득한 길은 아니다. 오히려 그 길 근처는 ‘황량하다’고 적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책의 원제인 까닭은 두 남자가 여행한 소박한 길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사진/트베일라 바위. 정령이 유랑부족의 성인 시디아흐메드를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로 성인의 제자이름이 새겨져있다.(브뤼노 바르베)

사진/미얀마의 바간. 옛 수도로서, 붉은 벽돌로 된 사원과 구조물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베르나르 포콩)


사진/멀리서 본 트베일라 바위. 사막 부족에게 이곳은 하나의 표상이자 그들의 근원이다.(브뤼노 바르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