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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명과 벌인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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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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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세계사> 3만5천여개의 지명을 표기하는 고난의 행군

▣ 임윤희 생각의나무 제2팀장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5대양 6대주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지도들에다 프랑스 아날학파의 거장 조르주 뒤비의 이름값까지 더해져,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는 자신의 존재만으로 담당 편집자의 기선을 단번에 제압하는 책이었다.


520여 개의 지도, 지도 속의 지명만 3만5천여 개, 전세계의 역사를 아우르는 해설, 대형 판형에다 400여 쪽에 달하는 분량…. 이런 책을 만난 건 분명 흥미진진한 모험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이 방대한 책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았다.

어떤 책이든 편집자의 속을 끓이는 부분이 있겠지만, 책의 성격에 따라 어려운 측면은 각기 다른 법. 이 책을 떠올리면 3만5천여 개의 지명을 바로잡으려 좌충우돌했던 일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지명의 방대함이 실감나지 않는 분을 위해 편집 과정 중 일부를 얘기하자면, 번역자가 원서의 지도 위에 각각 트레이싱페이퍼를 붙인 뒤 거기에 일일이 지명을 번역해 적어넣었는데, 디자이너가 그것을 단순 입력하는 데에만 꼬박 한 달 반이 걸릴 정도였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물론 대한민국 지식의 최전선이라는 네이버 지식in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지명들까지 표기법을 하나하나 바로잡는 일은 그야말로 독초를 즈려밟고 가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사실 외래어맞춤법에 맞게 말들을 바로잡는 작업은 편집자들이 겪는 일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생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지명들과의 사투는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이 시대의 변천을 훑고 있어서, 특히 이민족의 침략이 많았던 지역의 경우에는 시대에 따라 지명이 달라지는지라 더욱 혼란이 컸다. 가령 그리스의 영토였을 때는 ‘비잔티온’으로 불렸으나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비잔티움’으로 바뀌는 식의, 수많은 지명들의 변천은 편집자가 원서를 확인하고 지도의 맥락을 파악해야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김대중)

이러한 변천이 없는 지명에 한해서는 ‘전체 검색’을 이용해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지도의 경우는 검색이 불가능한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지라 편집자들이 하나하나 지명들을 바로잡는 것 외에는 달리 이를 수정할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빨간 펜을 들고 눈을 부릅뜨고 편집자가 일일이 ‘노가다’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이 사투의 마지막에는 각각의 지명들을 하나의 포맷으로 합치는 색인 작업이 남아 있었다. 하나의 지명이 서로 다른 지도에서 다르게 표기되지 않았는지 확인한 뒤 다시 지도와 색인에 이를 올바르게 반영하는 일 역시 편집자들의 진을 빼놓는 작업이었다. 특히 헛갈리는 지명들에 경우엔 더더욱 세심한 확인이 필요했다. 이해하기 손쉬운 예를 들자면, 미국 사우스캐롤라니아주의 주도 ‘컬럼비아’(Columbia)와 남아메리카에 있는 나라 이름 ‘콜롬비아’(Colombia)의 경우 각각 지도를 확인하고 표기법도 맞추어 정리한 뒤 두 개의 색인 항목으로 나누어 쪽수를 표기해줘야 하는 식이었다. 글자로 치자면 두 글자 차이밖에 안 나지만 그 하나로 완전히 다른 지명이자 완벽히 다른 정보가 되어버리니, 그 작업이 지난하더라도 여러 명의 편집자들이 열심히 교정지를 들여다보며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컬럼비아나 콜롬비아나 힐끗 보기엔 큰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책 속에 들어 있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두들겨보며 가장 먼저 돌다리를 건너는 이들이 편집자가 아닐까. 가끔 만나는 부실한 돌에 걸려 물에 빠져서는 투덜대기도 하지만, 그리고 튼실하지 못한 돌들 때문에 뒤에 다리를 건너는 이들에게 돌 맞지는 않을까 걱정도 하지만, 그렇게 시험 삼아 가장 먼저 돌다리를 건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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