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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하얀 봉투, 수상하다 수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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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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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백색 직사각형이 주종인 편지 봉투는 고시된 규격에 존재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번 혹은 네 번 고이 접힌 송신인의 사연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수신인에게 전달하는 책무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규격은 동일하지만 안에 담긴 내용물은 전부 상이합니다. 요샛말로 슬림하기 짝이 없는 편지 봉투의 두께는 구구절절 방대한 사연을 납작하게 압축합니다.

얇게 눌려 배달된 소식을 앞에 두고 수신인의 궁금증은 더할 나위 없이 증폭됩니다. 겉봉에는 받는 이와 보낸 이의 신상 정보만 기재될 뿐, 안의 내용물은 철저히 위장하는 백색 직사각형의 양면성 때문에 봉투가 속 깊은 고백을 실었는지 검은 현찰을 담았는지 오리무중입니다. 종이 편지의 왕래가 사라진 오늘, 봉투의 낭만은 실종되고 부정한 금품 살포의 증거물로 종종 제시되는 형편이고 보면 대단한 위상 추락입니다. 어쨌건 세상에서 제일 선망되는 봉투는 노동량을 현찰로 환산한 급여 봉투이고, 제일 기피되는 봉투는 체변 검사 때 배부되는 똥봉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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