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한계 보여준 게놈프로젝트 완성… 무병장수 꿈은 실현 가능성 낮아
지난 2월13일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날 발표는 셀레라 게노믹스의 크레이그 벤터와 인간게놈프로젝트팀의 프랜시스 콜린스에 의해 합동으로 이루어졌다. 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된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개별 과학연구 프로젝트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적·물적 자원이 투자되었고 생물공학(BT)은 21세기와 동의어로 격상되었으며 세간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생물공학시대에 대한 무수한 기대와 비판이 난무했다. 지난해 6월에 초안 발표를 하면서 미리 너무 김을 빼서 그런 것인지, 정작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었는데도 지난해와 같은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 주된 이유는 이번 발표에서 지금까지 예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언스> 최신호에 무려 200여명이나 되는 공동저자와 함께 최종결과를 발표한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최종 연구 결과 몇 가지 측면에서 종전의 예상과 다른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유전 코드로 인간의 복잡성 환원 못해
그중 가장 큰 관심을 끈 대목은 역시 사람의 유전자 숫자이다. 지금까지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은 사람에게 대략 10만개 정도의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벤터 박사는 “2만6천에서 3만8천개 사이라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 숫자는 초파리의 2배, 회충보다는 1만개 정도가 많은 숫자이다. 유전자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이 정도의 숫자로는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특성을 결정짓는다는 유전자 결정론, 또는 유전자 환원주의가 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언론, 대중서적 등을 통해 이러한 생각을 널리 유포시킨 주범이었던 게놈프로젝트의 최종 결과가 오히려 유전자 결정론의 근거를 허물어뜨렸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이 주장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그동안 염기서열 해석 과정에서 게놈프로젝트와 경쟁을 벌였던 크레이그 벤터 박사였고, 게놈프로젝트 진영은 적극적인 해석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아직도 절반 가까운 유전자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벤터 박사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연구 결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이 결과에 대한 대중적인 토론이 필요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피해야 할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이 있다. 하나는 인간의 모든 특성이 게놈 속에 ‘영구기록’(hard-wired)돼 있다는 결정론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게놈의 염기서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으면 인간의 변이성을 인과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놀라운 복잡성과 다양성은 유전 코드로 환원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게놈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데에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2월14일치 <워싱턴포스트>는 “벤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유전자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최근 유전자 검사, 유전자 치료 등과 연관해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번 결과를 통해 나쁜 유전자와 좋은 유전자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벤터 박사는 단일 유전자가 단일한 특성을 나타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여러 수준에서, 여러 가지 연결을 통해 그리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교란에 대한) 다양한 감수성의 상태에서 작동하는 유전자들의 연결망(network)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개별 유전자들이 연결망을 이루어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고, 외부 환경이 주는 교란에 대해 천차만별의 감수성을 갖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나쁜 결과를 가져온 유전자도 다른 경우에는 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통해 그동안 유전자 차별과 악용에 대한 깊은 우려를 불러왔던 유전자 검사의 보편화나 유전정보은행 설립이 진지하게 재검토돼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유전병과 같은 명백한 유전자 결함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면,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할 것처럼 과장된 유전자 치료를 둘러싼 환상은 거품이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인종차별의 유전적 근거는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지만 이번 발표에서 확인된 중요한 결과는 인종이나 민족에 따른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99.99%까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유전자의 차이가 인종이나 민족에서 나타나는 차이보다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진 인종차별 문제는 최소한 생물학의 영역에서는 그 근거가 무너진 셈이다. 더구나 사람과 포유류 나아가 생물 전체에서 유전자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재확인되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람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측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고, 개에게 없는 사람 고유의 유전자 숫자는 300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의 유전자 중 100여개는 박테리아에서 전이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그동안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어졌던 장벽은 최소한 유전자의 측면에서는 매우 인위적인 것이었던 셈이다. 결국 동물과 다른 인간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유전자가 아닌 다른 원천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근대 이래 자연파괴와 동식물의 대량멸종을 가능하게 했던 인식적 토대가 인간중심주의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발견은 인간과 동물, 그리고 환경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크레이그 벤터 박사의 말처럼 게놈에 대한 연구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게놈 연구를 통해 유용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그동안 게놈 연구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난 거품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지금까지의 논의들이 정말 근거가 있는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사진/10여년동안 계속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을 발표하는 셀레라 게노믹스의 크레이그 벤터(왼쪽). (SYGMA)

사진/예상보다 훨씬 적은 숫자로 밝혀진 유전자지도.(SYGMA)
그동안 언론, 대중서적 등을 통해 이러한 생각을 널리 유포시킨 주범이었던 게놈프로젝트의 최종 결과가 오히려 유전자 결정론의 근거를 허물어뜨렸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이 주장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그동안 염기서열 해석 과정에서 게놈프로젝트와 경쟁을 벌였던 크레이그 벤터 박사였고, 게놈프로젝트 진영은 적극적인 해석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아직도 절반 가까운 유전자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벤터 박사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연구 결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이 결과에 대한 대중적인 토론이 필요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피해야 할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이 있다. 하나는 인간의 모든 특성이 게놈 속에 ‘영구기록’(hard-wired)돼 있다는 결정론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게놈의 염기서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으면 인간의 변이성을 인과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놀라운 복잡성과 다양성은 유전 코드로 환원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게놈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데에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2월14일치 <워싱턴포스트>는 “벤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유전자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최근 유전자 검사, 유전자 치료 등과 연관해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번 결과를 통해 나쁜 유전자와 좋은 유전자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벤터 박사는 단일 유전자가 단일한 특성을 나타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여러 수준에서, 여러 가지 연결을 통해 그리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교란에 대한) 다양한 감수성의 상태에서 작동하는 유전자들의 연결망(network)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개별 유전자들이 연결망을 이루어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고, 외부 환경이 주는 교란에 대해 천차만별의 감수성을 갖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나쁜 결과를 가져온 유전자도 다른 경우에는 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통해 그동안 유전자 차별과 악용에 대한 깊은 우려를 불러왔던 유전자 검사의 보편화나 유전정보은행 설립이 진지하게 재검토돼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유전병과 같은 명백한 유전자 결함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면,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할 것처럼 과장된 유전자 치료를 둘러싼 환상은 거품이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인종차별의 유전적 근거는 없다

사진/“유전자는 생명체의 삶을 뒤흔들지 않는다.”인간과 포유동물의 유전자 차이는 거의 없다(왼쪽/이종근 기자). 유전자 치료도 부분적으로만 가능할 전망이다(오른쪽/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