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하는 현대 여성과 비슷한 고민하는 <황진이> 기녀들…앞으로 전개될 갈등의 중심이 되는 ‘완성도 높은 가무’에는 양자택일이 없네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문을 넘으면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문을 넘는 순간, 그 외의 모든 것은 포기해야 한다. 한국방송 수목 드라마 <황진이>의 진이(하지원)는 어린 시절 춤을 배우기 위해 교방의 문을 넘지만, 그녀는 그 순간부터 ‘(춤을) 사랑할 때 버려야 할 몇 가지 것들’을 함께 배운다. 춤을 배우려면 기생이 돼야 한다. 그리고 기생은 누구와도 잘 수 있지만(혹은 자야 하지만) 사랑은 할 수 없고, 춤을 배울 수는 있되 춤을 통해 사회적인 성취를 이룰 수는 없다.
진이는 머리를 올리는 날부터 양반집 남자와 자야 할 운명이지만 정작 사랑하는 명문가 자제 은호(장근석)와는 이루어질 수 없고, 진이의 스승 백무(김영애)는 가무로 조선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되 양반집 부인이 끼얹는 뜨거운 물을 그대로 맞아야 할 처지다. <황진이>에서 기녀란 무엇이든 할 수 있되 무엇도 이룰 수 없는 신분이다. 남자와 가무 둘 다 마음껏 경험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져다주는 것들을 가질 수는 없다. 기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진이의 친구 섬섬이(유연지)처럼 사랑하는 남자를 잊고 독하게 재물을 모을 각오를 하든가, 백무나 매향(김보연)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만 미쳐 살아야 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매향은 가무만 파고드는 백무를 ‘반편이’라 말하지만, 그 역시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존심 다 접고 양반들의 발 밑에서 기어다닐 수도 있는 반편이긴 마찬가지다.
가무만 파고드는 반편이, 권력에 기는 반편이 그래서 <황진이>는 <대장금>과 다르다. <황진이> 역시 <대장금>처럼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대립관계가 축이 되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마저 죄를 뒤집어씌우는 매향과 부용(왕빛나)이 악하게 묘사돼 선악 대비가 된다. 그러나 <대장금>에서 장금(이영애)이 보여주는 의술과 요리는 근본적으로 타인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장금의 사랑은 굳이 일을 버릴 필요도 없었다. 반면 <황진이>의 기생들은 일과 사랑, 혹은 일과 자신의 신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진이는 그저 춤에 이끌려 교방의 문을 넘었고, 그가 임금 앞에서 춤을 추고 싶은 것도 임금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춤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진이>의 진정한 갈등은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진이와 은호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생의 삶’에 대한 진이와 백무 사이의 갈등에 있다. 진이는 그의 어머니 현금(전미선)에게 “좋은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은 것을 어떻게 죄랄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백무는 진이에게 진이가 머리를 올리는 날 은호의 마음을 시험하는 승부를 제안하며 현금을 찾아가 “사랑? 목숨 거는 사랑? 나쁠 거 없지. 허나 난 그 전에 알아야겠다. 모든 걸 걸 만큼 대단한 사람인지 확인해야겠어”라며 사랑을 의심한다.
사랑을 믿는 제자와 오직 일만을 믿는 스승. 이런 관계는 가무 실력 대신 정치적 로비를 통해 일을 해결하려는 매향과 가무만큼은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은 부용의 갈등에서도 반복된다. 그것은 곧 세대 간의 갈등이기도 하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진이가 백무와 승부를 벌이고, 은호는 부모는 물론 관헌을 찾아가 진이와의 혼인을 요청한다. 모두가 정말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사랑을, 혹은 네가 ‘어릴 때’ 갖고 있는 그 작은 것을 포기하라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다. 일과 사랑 사이의 갈등에서 결국 그 둘 다 아닌 그 사이의 무엇을 선택했던 조선 최고의 기녀가 겪은 사춘기의 성장통을 보여주는 <황진이>의 황진이에 대한 접근 방식은 권선징악, 혹은 여인들의 권력암투 같은 기존 여성 사극보다는 오히려 현대 여성의 고민들에 가깝다.
<대장금>이 이병훈 PD의 <허준>과 <상도>를 잇는 ‘성공한 사람’에 관한 사극이었다면, <황진이>는 성공에 한계가 있는,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여성’에 관한 사극이다. <황진이>를 다른 사극과 차별화하는 기녀라는 설정은 더불어 <황진이>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다. 진이의 모든 갈등의 핵심은 결국 진이가 추구하는 지극한 완성도의 가무에 있다. 그러나 황진이가 아닌 하지원은 그것을 보여줄 수 없다. 매향은 가무에서 “고하를 재는 명징한 잣대라는 건 이 세상엔 없다”고 말하지만, 한국 드라마 제작 여건상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전문적인 춤을 배우기도 힘든 <황진이>의 배우들이 시청자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의 춤 솜씨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는 진짜 요리사의 손을 통해 제대로 된 요리 과정을 보여줄 수 있었던 <대장금>과는 다른 부분이다.
<대장금>은 진짜 요리사가 요리를 했으나…
이 때문인지 <황진이>는 진이와 부용 등의 독무는 다양한 편집으로 넘어가는 대신 동작을 자세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군무를 보여주거나, 온갖 고생을 이겨내며 학춤을 배우는 진이의 모습처럼 수련 과정을 통해 시청자가 캐릭터의 감정에 이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진이가 진정 ‘프로’가 돼 부용과 정면 승부를 벌일 때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또 가무에 대한 진이의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진이와 백무의 갈등의 핵심이 무엇인지 담아내기 위해 주변 정황까지 설명하다 보니 스토리가 일반 미니시리즈의 호흡에 비해 느슨한 것도 아쉽다. 과연 <황진이>는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기녀의 이야기를 완성도 높은 ‘여성’ 사극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일(춤)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사랑(시청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무만 파고드는 반편이, 권력에 기는 반편이 그래서 <황진이>는 <대장금>과 다르다. <황진이> 역시 <대장금>처럼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대립관계가 축이 되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마저 죄를 뒤집어씌우는 매향과 부용(왕빛나)이 악하게 묘사돼 선악 대비가 된다. 그러나 <대장금>에서 장금(이영애)이 보여주는 의술과 요리는 근본적으로 타인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장금의 사랑은 굳이 일을 버릴 필요도 없었다. 반면 <황진이>의 기생들은 일과 사랑, 혹은 일과 자신의 신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진이는 그저 춤에 이끌려 교방의 문을 넘었고, 그가 임금 앞에서 춤을 추고 싶은 것도 임금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춤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진이>의 진정한 갈등은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진이와 은호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생의 삶’에 대한 진이와 백무 사이의 갈등에 있다. 진이는 그의 어머니 현금(전미선)에게 “좋은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은 것을 어떻게 죄랄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백무는 진이에게 진이가 머리를 올리는 날 은호의 마음을 시험하는 승부를 제안하며 현금을 찾아가 “사랑? 목숨 거는 사랑? 나쁠 거 없지. 허나 난 그 전에 알아야겠다. 모든 걸 걸 만큼 대단한 사람인지 확인해야겠어”라며 사랑을 의심한다.
비록 기녀라는 신분을 ‘핑계’ 삼지만, 사극이면서도 여성을 ‘순정’에만 가두지 않는 <황진이>는 어쩌면 매우 진보적인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