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다리의 개수와 개체의 고등성은 반비례하나 봅니다. 지네 같은 다지류보다는 소 같은 네발 짐승이, 그리고 이들보다 두 발 인간을 우위에 두는 분위기니까요. 다수의 발이 한 개의 머리를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구조여서, 다리 많은 모양새가 굴복의 관례적 기호와 가까워서인가 봅니다. 네발 의자는 어떨까요? 무생물임에도 의자는 다리가 달렸습니다. 보행이 아닌 정착을 위한 보조 장치라는 점이 생물체의 다리와 다릅니다. 의자는 깔고 앉는 이의 신분을 보장합니다.
의자에 엉덩이를 놓는 이는 자신의 체중을 그의 다리가 아닌, 의자 다리에게 떠넘깁니다. 고위직의 의자일수록 단순 착석의 기능을 넘어 ‘안락’까지 제공합니다. 의자의 남다른 상징성 때문에 의자는 더러 ‘자리’라는 용어로 대체됩니다. ‘자리를 빼앗겼다’느니 ‘의자를 꿰찼다’느니 하는 말은 권력 투쟁의 대리 표현입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목격되는 가장 치열한 의자(자리) 싸움은 지하철 빈 좌석을 둘러싼 쟁탈전입니다. 본디 삶의 치열함은 사소한 것에서 나오니까요.
표지이야기
엉덩이들의 의자 쟁탈전
제 633호
등록 : 2006-11-03 00:00 수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