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백야행> 등 일본 추리소설이 보여주는 절대악, 사이코패스들… 선악 구분법에 익숙한 서양의 악마적 존재와 달리 사회적 문제가 범행동기
▣ 김봉석 문화평론가
평화로운 공원에서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이 발견된다. 핸드백의 소유자는 실종된 여성. 하지만 함께 발견된 팔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범인은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범죄를 자랑하고, 다시 실종된 여성의 가족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조롱한다. 잔혹할 뿐 아니라, 일체의 도덕과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이 범인은 대체 어떤 인간일까?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에 등장하는, 연속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은 이른바 ‘극장형 살인마’다.
자신의 무대에서 범죄를 연출하고,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찬탄한다고 착각해 쾌락을 느끼는 살인마. “창작가의 열정으로 살인극을 연출했다면, 죄의식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라는 말처럼, 범인에게는 어떤 죄의식도 없다. “너는 죽고 싶지 않다고 애걸하지만, 지금처럼 보잘것없이 살아봤자 뭘 하겠어? 그렇지만 내가 기획한 이 연속살인극에 참가하면 네 이름은 전국으로 알려지게 돼. 모든 사람이 네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줄 거야. 모든 사람이 너의 죽음을 애도해줄 테고. 이거 너무 멋지다는 생각 안 들어?”
죄의식 개념이 없는 사이코패스일까 어떻게 본다면, 그는 절대악이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는 범죄를 저지른다.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고도,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범인은 피해자들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해. 물론 유족들에 대해서도. 당신들의 보잘것없는 삶에 생각지도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줬다는 거야. 참가자도 관객도 그걸로 즐거워하니 아무도 손해가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모방범>의 범인 같은 인물 유형은 요즘 범죄소설에 단골로 등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과 <환야>에 나오는 여성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떤 짓이든 망설임없이 저지른다. 남자를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게 하고, 결국 그 남자를 파멸시킨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에 나오는 요한 같은 사회적인 살인마도 있다. 타인을 조종해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악인. 물론 그들에게도 이유는 있다. <모방범>과 <백야행>의 살인자들은 가혹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로움이나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그들은 생존의 가시밭길에서 냉정하게 승자의 길을 택했다. <몬스터>의 요한은 냉전시대 동구권에서 행해진 인체실험의 과정에서 태어난 ‘괴물’이다. 하지만 시작이 어땠건 상관없다. 어쨌거나 그들은 지금 ‘마음’이 없는 존재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장 가까운 친구나 가족까지 냉정하게 파괴하는 인물이 나온다. 기시 유스케는 그런 범죄자가 단순한 정신이상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연히 인간과 똑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게 된 다른 종류의 생물’이 아닐까 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사이코패스다. <진단명: 사이코패스>의 저자 로버트 D. 헤어는 이들이 ‘다른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동정심과 사랑의 전제조건이 완전히 결핍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이코패스가 모두 살인마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이코패스는 대부분 살인자가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이웃, 연인의 가면을 쓴 ‘사기꾼’들이다. ‘자기중심성, 죄의식 결여, 피상적인 감정, 기만성’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침범하고 파괴한다.
사이코패스가 절대악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들에게 전혀 죄의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남부지역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정남규는 체포된 뒤에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뒤에도 “국가와 사회가 (나에게) 도움을 주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보통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수하거나, 도망치더라도 마음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피해자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선처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에게는 도덕이나 양심, 죄의식이나 후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악 그 자체다. 로버트 D. 헤어는 이런 사이코패스가 지금 뉴욕시에 1만명, 북미에만 300만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한니발 렉터가 매력을 잃은 이유
미국 등지에서는 절대악의 존재가 낯설지 않다. 선악의 이분법에 익숙한 의식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이교도의 신을 끌어들여 악마로 만들어버리거나, 이교도에 대한 전쟁을 거침없이 감행하는 서구인의 사고방식은 절대악의 존재인 악마를 인정한다. 하지만 다신교가 지배했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판타지 작가인 히카와 레이코는 한 대담에서 “빛과 어둠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융합돼버리고 만다. 기독교적인 권선징악 구도로 결말이 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악인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끝나게 된다”고 말한다. <공작왕>의 공작은 세계에 파멸을 불러오는 공작의 환생이지만, 스님에게 키워지면서 오히려 악의 힘에 맞서 세계를 구원한다. <북두신권>의 악인들은 켄시로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자신이 악인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려준다. 그들에게 악이란,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운명적인 함정이거나 선택이었다. 그리스 신화처럼, 다종다양한 신들의 사회를 신화로 받아들인 일본에서는 절대악이 우세종이 아니다.
<모방범>이나 <백야행>의 절대적인 악 역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는 악의 유전자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한 가닥 동정받을 만한 여지가 존재한다. 반면 미국 범죄소설이 낳은 최고의 살인마 한니발 렉터에게 동정은 어울리지 않는다.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는 카리스마적인 ‘악’ 그 자체로 묘사되지만, <한니발>에서는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어 ‘식인’을 하게 된 것으로 암시한다. 과거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살인의 예술가인 렉터는 오히려 힘을 잃는다. 렉터는 악의 존재, 너무나도 매력적인 악 그 자체로 존재함으로써 의미가 있었다. 그는 상처가 필요 없는 완전한 존재였던 것이다.
서구 추리소설에서 절대악의 시초라면, 셜록 홈즈의 라이벌인 모리아티 교수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이면서도, 사회적 권력을 지니고 있는 모리아티. 모리아티의 존재는 하드보일드 소설이나 필름 누아르에서 묘사되는 거대한 사회악으로 발전한다. 불륜이나 실종 등 사소한 사건을 수사하던 탐정은 거대한 음모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그만 사건은 해결할 수 있지만, 절대악은 건드리지도 못한다. 영화에서 필름 누아르의 절망은, 세계 대전 같은 절대악의 존재에 짓눌리면서 야기된 것이다. 일본에서의 절대악은 사회적인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한 경향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발전한 사회파 추리가 있다. <점과 선> <제로의 초점>의 마쓰모토 세이초와 <야성의 증명> <인간의 증명>의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형성, 발전시킨 사회파 추리는 일본 특유의 범죄소설을 형성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당시의 일본 추리소설이 너무 트릭만을 중시하며 유희적 경향으로 빠지는 것에 반대해, 극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파고들 것을 주장했다. 사회파 추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테마로 삼고, 탐정보다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트릭보다는 사회적인 범죄에 얽힌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동기를 파고든 사회파 추리의 전통
마쓰모토 세이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모래그릇>은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한센병 환자를 둘러싸고 과거의 원한과 증오가 폭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키네 료스케의 <와일드 소울>은 2차 대전 뒤, 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한 브라질 아마존 개척이민 사업에 희생된 사람들이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다. 사회파 추리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오히려 희생자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과거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범죄를 계획한다. 이처럼 사회파 추리는 급속한 경제개발에 따른 개인이나 집단의 피해, 정치권력의 폭력 등 명백한 ‘범죄 집단’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권력의 실질적인 범죄를 폭로하고 있다.
요즘에는 사회파 추리의 스펙트럼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에서는 최고급 고층 아파트의 일가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살해당한 사람들은 사실 가족이 아니었고, 원래의 입주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이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미야베 미유키는 르포 형식으로, 사건에 얽힌 모든 사람들을 찾아간다. 고층 아파트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이유>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고, 범죄의 동기는 단지 한 사람의 정신이상이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방범>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란 모두 누군가의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한 인간이 미친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어딘가로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이미 미쳤거나.
죄의식 개념이 없는 사이코패스일까 어떻게 본다면, 그는 절대악이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는 범죄를 저지른다.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고도,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범인은 피해자들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해. 물론 유족들에 대해서도. 당신들의 보잘것없는 삶에 생각지도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줬다는 거야. 참가자도 관객도 그걸로 즐거워하니 아무도 손해가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모방범>의 범인 같은 인물 유형은 요즘 범죄소설에 단골로 등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과 <환야>에 나오는 여성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떤 짓이든 망설임없이 저지른다. 남자를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게 하고, 결국 그 남자를 파멸시킨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에 나오는 요한 같은 사회적인 살인마도 있다. 타인을 조종해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악인. 물론 그들에게도 이유는 있다. <모방범>과 <백야행>의 살인자들은 가혹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로움이나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그들은 생존의 가시밭길에서 냉정하게 승자의 길을 택했다. <몬스터>의 요한은 냉전시대 동구권에서 행해진 인체실험의 과정에서 태어난 ‘괴물’이다. 하지만 시작이 어땠건 상관없다. 어쨌거나 그들은 지금 ‘마음’이 없는 존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