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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금박으로 가릴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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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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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선사 이래 가장 고귀한 쇠붙이는 금입니다. 그러나 귀하신 신분과 지위를 보장해온 이 상징적 금속이 꼭 희소했던 건 아닙니다. 1만분의 1mm까지 얇아지는 유연성은 금박의 탄생을 가능케 했고, 사방천지 금박 입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금빛 일색입니다. 건물 외관, 기념 쟁반, 양장 제본, 포장지, 한복 등 권위와 품격이 요구되는 오브제 일체에 금박이 씌워집니다.

금박의 번들거림은 내용물을 자신할 수 없는 모든 종류의 비겁함 위로 올라앉아 그 속살을 은폐합니다. 역사적으로 금의 가치는 상수였지만, 금박은 변수입니다. 금박은 작은 상처에도 쉽게 벗겨져 부실한 실상이 폭로됩니다. 최상위층을 위한 한정본의 주 소재는 금이지만, 금빛의 권위를 얄팍하게 빌려오는 금박의 난립을 두고 ‘키치’라는 경멸어로 응수하곤 합니다. 그래서 금(박)은 이율배반의 금속입니다. 세계적 종교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를 향한 지지자의 존경심은 금상 제작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보기에 따라 우상숭배의 가장 흉물스런 광경으로 지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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