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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가 만든 이방인, 옌벤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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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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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순수함과 서슴없는 직언을 부여받은 일일드라마 <열아홉 순정>의 양국화… 이성교제 질문에 쩔쩔매는 달래음악단에도 우리는 ‘이국적 시선’을 보내지 않나

▣ 이김나연 언니네트워크 국제연대 팀장

나의 어머니는 오랜만에 함께한 저녁 나들이에서 유난히도 자주 시간을 물어보셨다. 그러곤 “서두르면 한 20분은 볼 수 있겠구나”라고 중얼거리셨다. “엄마, 그거 재밌어?”라고 눈을 흘기긴 했지만, 결국 집에 돌아오자 은근슬쩍 엄마 옆에 앉아 텔레비전 삼매경에 빠지고 말았다.

한국방송에서 방영되는 일일드라마 <열아홉 순정>에는 국제결혼을 위해 옌볜에서 이주한 열아홉 살의 양국화가 등장한다. 그녀는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바르고’ 똑 부러진, 때 묻지 않은 무공해 소녀, 옌볜 걸(girl)이다.

<열아홉 순정>에서 옌볜 아가씨 양국화는 낯설면서도 신기한 존재다. 결국 그는 ‘타자’이면서 ‘이방인’이다.


양국화는 이처럼 ‘소녀’라는 말이 어울리는 ‘미성년자!’, 십대 여성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 예정 상대인 순구씨가 장갑을 손에 끼워주려 하자 ‘소녀답게’ “손 잡는 건 결혼하고 난 뒤에”라더니, 이내 얼굴까지 붉힌다. 끊임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는 그녀의 대사는 결국 ‘자연스럽게’ 이 여성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작동된다. 드라마상에서도 이런 그녀와 결혼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지, 순구씨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결혼은 없었던 일이 된다. 그러곤 그녀를 스무 살로 성장시키면서 여전히 변치 않는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해 ‘옌볜 처녀’라는 속성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킨다.

“대사를 해야 해서 연극하기 싫다”

국화가 옌볜에서 이주해왔다는 사실은 곧 그녀를 현재의 한국 사회에 대한 낯섦을 갖고 있는 존재로 안착시키는 데 설득력을 가지는 근거가 된다. 사람들이 버스를 탈 때 지갑을 센서기에 갖다대는 것을 보곤 중국 인민증을 꺼내 보이는 모습이 당연히 자연스러운 캐릭터인 것이다. 한편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작동되는 룰을 모르는 그녀는 권력적인 위계 관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용감한’ 존재가 된다. 그녀는 사주의 아들이자 기획실장인 윤후에게 때로는 무모하리만큼 맞설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방식의 무모함은 결국 그녀를 매력적인 존재로 만드는 근거가 된다. 그녀는 기형적인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권력 관계의 법칙을 무시하기 때문에 곧 ‘올바른’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은 결국 그녀가 외부자 혹은 ‘이방인’라는 사실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슴다”로 끝나는 그녀의 말투는 그녀가 이 사회에 속하지 않은 외부자임을 끊임없이 각인해준다.

국화가 윤후와 처음 마주쳤을 때, 그녀의 독특한 말투에 윤후는 이렇게 묻는다.

“혹시… 북에서 왔니?”

자, 북에서 온 사람은 국화가 아니라 달래음악단이다. 달래음악단은 북한에서 이주해온 5명의 여성이 속해 있는 그룹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8월12일 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 10위 안에 진입했다!). 얼마 전부터 방송에 등장한 달래음악단은 주로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차림으로 방송에 나온다. 이들의 차림새는 곧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려는지와 관련된 의도적인 공략이기도 하다. 방송에 함께 출연하는 남자 출연자들이 이성교제 등에 관해 질문을 하자 어쩔 줄 몰라하는 달래음악단의 모습은 <열아홉 순정>에 나오는 국화의 ‘순수함’과 너무나 닮아 있다. 이들은 낯설고 신기한 ‘이국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국적’인 시선은 어째 낯설지가 않다. ‘동양’은 ‘서양’의 시각에 의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지난하게 재현돼왔다. 이때의 ‘동양’은 곧 소녀인데, ‘서양’은 ‘동양’을 이런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밖에는 ‘동양’과 관계를 맺는 상상력이 없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당했다.

북한 출신 ‘달래음악단’을 보는 남한의 시선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반복할 뿐이다.(사진/ 연합 김도윤기자)

달래음악단이 <스타 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스피드’(speed)가 무엇인지를 물어본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 장면을 통해 결국 이들은 ‘오빠가 가르쳐주고 보살펴줘야 하는 여자’가 되었다.

지난 여름 북한 이주 청소녀와 함께하는 여성주의 문화캠프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사진, 춤, 연극이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북한에서 이주한 청소녀들과 관계맺기를 시도한 캠프였다. 그런데 기획자들의 기대와 다르게 연극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북한 이주 청소녀들은 “대사를 해야 해서 연극을 하기 싫다”는 다소 예상치 못한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이처럼 대사를 하는 것을 꺼려 했던 이유가 그들의 ‘독특한’ 억양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자신의 말투를 보고 대뜸 옌볜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주인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는 또 다른 북한 이주 청소녀의 이야기(어느 탈북 청소녀의 수기 중)는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경험하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단편적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말투로 인해, ‘토종’ 한국인이 아님을 의심받으면서 그들은 이주(移住)민이 아닌 이(異)주민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관계맺기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이렇게 글로벌한 한국에서 이제 이주민들을 만나는 것은 감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쩌면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내가 캠프에서 청소녀들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결국 이들과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감수성에 대한 상상력과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동시에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특별한 존재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과의 관계맺기에서 ‘특별한’ 시선을 갖게 한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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