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멀쩡했던 사람이 순간적으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뇌의 원시신경계와 고등신경계 사이의 갈등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한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세상이 험악하다 해도 어떻게 저런 일이…”라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끔찍한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칼을 사는 장면이 화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흉기를) 사와서 위협하면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것 같아 목에 댔는데도…. 그러다 마지막에 저도 모르게….”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상대방의 목을 두 차례나 찌른 피의자이지만 사건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스스로도 믿고 싶지 않은 듯했다.
두 친구의 술자리가 사건의 피의자를 만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잠시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 벽돌로 내리치고 칼로 목을 찌른 것이다. 이렇게 아무도 믿고 싶지 않은 사건의 당사자들의 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마음을 해석하는 자기공명영상 최근 유전학과 신경영상 기술 등의 발달로 뇌의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에 획기적인 진전이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번 사건 피의자들의 ‘폭력성’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특정 행동을 일으키는 뇌의 구조적 특징이나 활동상의 패턴 등이 확립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살아 있는 뇌를 비침습적 방법으로 관찰한다 해도 특이사항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의 정신질환에 노출되지 않았고, 정신건강과 행동에 영향을 끼칠 만한 유전적 소인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뇌 스캔으로 스트레스나 유혹 등에 대한 반응을 알아봐도 범죄를 설명할 근거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서를 파악하는 장치로 마음을 읽을 수는 없을까. 현재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이 마음을 해석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기기는 신경세포를 추적하는 대신 혈관 근처의 산소를 측정해 생각을 포착한다. 하지만 최소한 2초 이상 지속되는 활동을 관찰해야 하는 탓에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뉴런 세포에서 이동하는 칼슘 이온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수밀리 초 동안에 지속되는 신호를 기록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20T(Tesla)나 되는 강력한 자석이 필요해 인간에게 적용하긴 힘들 것으로 예측된다. 설령 이런 기기로 인간의 마음을 읽어도 ‘독심술’ 이상의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만일 150년 전에 태어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피의자를 만난다면 피의자의 마음을 특유의 방식으로 ‘상징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요구하는 본능적 에너지를 일컫는 ‘이드’(id)가 지배하는 세상의 피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인간의 이성을 압도하려고 위협하는 충동적인 욕구, 그것이 반사회적이며 자기파괴적일지라도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게 이드이니 말이다. 아무리 말다툼을 마무리하려는 의도였다 해도 편의점까지 달려가 흉기를 구입한 것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이성적 자아가 꿈꾸는 안전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공격과 증오에 불타는 본능을 선택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의자들은 ‘무의식적 양심’(초자아)을 저버린 ‘고집스런 바보’(Inner Dummy)에 가깝다. 하지만 프로이트식의 해석은 피의자들의 마음 일부에 적용될 뿐이다. 두 사람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먹자골목’에서 3차까지 술을 마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흥가라는 공간적 특성이 발휘되는 곳에서 알코올로 인한 과격 행동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범죄심리학)는 “개인의 감정에 따른 행동이 유흥가에서 쉽게 나왔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평상시에도 ‘욱’하는 기질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충격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 순간적으로 이성이 무너지기 쉬운 여러 조건이 있었다. 동료와 함께 있으면서 동기가 강화되는 ‘사회적 촉진’ 현상이 나타났고 유흥가이다 보니 행동 규범이 상대적으로 넓게 용인되는 분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 안에 동물적 행동 부추기는 본능이 대부분의 남성은 술을 마시면 과격한 행동을 한다. 평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알코올의 효능을 심심찮게 확인한 일이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섭취하는 알코올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다르다 해도 알코올과 과격한 행동이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라졸라의 스크립스연구소 로버트 퍼디 박사팀은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알코올을 섭취하면 뇌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알코올이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의 순환을 낮추고 생식 능력을 손상시킨다는 통념을 깨뜨린 것이다. 이들은 난폭한 행동을 억제하는 알코올 섭취 방법을 찾고 있다. 얼마든지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공격적인 행동에 이를 수 있다. 최전방 감시초소(GP)에서 동료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거나 어린이집 원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아이를 바늘로 찌르고, 20대 엄마가 두 살배기 아들을 강에 던지기도 했다. [%%IMAGE3%%] 이런 일들은 취중에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연세대 오경자 교수(심리학)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에도 장기적으로 누적된 성향이 있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런 마음의 흔적을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사람이 결정적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감정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공격적 행동은 본능에 가깝다. 인간 감정의 발생 메커니즘을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를 펴낸 러시 W. 도지어 주니어는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는 증오심이 자연선택에 의한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면서 “뇌의 원시신경계와 고등신경계 사이의 갈등에서 증오심이 싹튼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외부의 자극이나 감정에 즉각 반응하는 원시신경계와 논리적 이성과 사색을 관장하는 고등신경계가 신경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면서 감성과 이성에 혼돈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이라는 인간됨의 포용력을 차단하고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쯤되면 마음의 ‘집행기관’에 문명화된 생각을 거부하고 동물적 행동을 부추기는 무의식적 본능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여전히 의문투성이로 남아 있는 프로이트의 정신과학이 신경생물학의 도움을 받아 되살아나기도 한다. 뇌에서 화학물질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프로이트식의 동기유발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미 원시적인 뇌의 구조와 인지정보를 주고받는 신경경로가 뇌의 피질 아래 부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의식적인 자아를 지배하는 현실원칙을 거스르는 쾌락원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뇌의 내부에 있는 동물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게 행동 신경과학자들의 판단이다. 잘못된 상벌 체계, 분노의 쾌락 때론 정상적인 사람이 사회적 지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상행동을 하기도 한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결혼한 40대 중반의 정아무개씨. 대학교수로서 학문적 성취를 이뤘지만, 그에게도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기러기 아빠로 지내며 부적절한 관계에 관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연히 학술활동과 관련해 만난 미혼여성의 뒤를 쫓아 막무가내로 만나줄 것을 요구했다. 모든 걸 잃어도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것이 통할 리 없었다. 그러자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날렸다. 급기야 여성의 집 앞에서 경찰차에 실려가는 고초를 겪었다. 특별한 혐의가 없어 이내 풀려났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은 유명인의 스캔들도 수두룩하다. 영화배우 휴 그랜트는 한밤중에 매춘부와 함께 체포됐고, 빌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기간에 섹스 스캔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얼마 전 출간된 프랑스 언론인 크리스토프 뒤부아와 크리스토프 들루아르의 <섹수스 폴리티쿠스>(Sexus Politicus)는 정치인의 ‘잠자리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비단 섹스 스캔들이 아니어도 멀쩡한 사람이 돌변하는 경우는 흔히 일어난다. 축구 경기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난동으로 국제적 문제를 일으키는 ‘훌리건’들의 문제가 먼 나라의 일이라면, 도로에서 주행하다 경적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다며 폭력적으로 차를 밀어붙이는 운전자도 흔하다.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 ‘헐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문제도 따지고 보면 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와이너와 정신과의사 길버트 헤프터는 <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에서 이성적 뇌(신피질갢eocor tex)와 원시적 뇌(변연계갟imbic system)의 갈등에 따라 나타나는 비합리적 행동의 실체를 파헤쳤다. 이들은 미국 하버드대학의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빈 서판’(마음은 타고난 특징이 없다)이나 ‘고상한 야만인’(선하게 태어나 사회에서 타락), ‘기계 속의 유령’(생물학적 제한과 관계없는 선택) 등의 도그마 대신 제안한 ‘진화적 본성’을 따르고 있다. 즉, 진화의 최종 산물인 이성적 뇌가 포유동물에서 진화한 원시적 뇌의 지배를 받을 때 이상행동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성적 뇌를 끊임없이 자극해야 이때 이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우울한 감정이나 의기양양 등이 나타난다. 뇌의 변연계가 상벌 체계를 주관하면서 멀쩡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광기라는 비합리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벌 체계에 결함이 있어서 어리석은 행동마저 보상을 해주려고 한다. 분노의 파생물인 증오가 강한 쾌감을 주는 공격적 행동을 하고,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가학적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본능을 성과 공격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눈 프로이트의 이분법은 아닐지라도 뇌의 신경화학물질로 조절되는 쾌락과 분노, 공포, 유희 등의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뇌가 신비의 베일을 벗어 뇌의 결함을 제거하는 화학적 조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된 상벌 체계에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원시적 뇌가 준동해도 극악한 범죄로는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대체로 변연계가 본능에 관련된 권력, 영역, 성, 애착, 생존 등의 욕구를 관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능적 욕구도 등급이 있어서 예기치 않은 사건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애착 욕구가 높은 사람은 마음을 나누는 상대방이 다른 이에게 사소한 관심만 가져도 질투심에 휩싸여 사생결단식으로 덤벼들고, 생존 욕구가 낮은 사람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맡기는 잘못을 저지른다. 이런 욕구는 미묘한 인간 정서에 관련된 것이라 뇌 스캔 같은 기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욕구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자문하면서 뇌의 안과 밖에서 영향을 받는 마음을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이 원시적 뇌에 지배받지 않을 수는 없을까. 뇌의 메커니즘이 이성보다 직관에 빨리 반응하기에 변연계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개인의 본능적 욕구라 해서 원시적 뇌만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는 “감정에 관련된 신경계의 작용은 매우 복잡하다. 문제는 원시적 뇌가 감정을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이성적 판단에 관련된 대뇌 신피질을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먹자골목 사건의 피의자들이 자신들의 마음, 아니 욕구에 귀기울였다면 칼부림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미친 뇌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고 도로에 들어서면 격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운전자들이 도로에서 접촉사고로 승강이를 하고 있다.
마음을 해석하는 자기공명영상 최근 유전학과 신경영상 기술 등의 발달로 뇌의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에 획기적인 진전이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번 사건 피의자들의 ‘폭력성’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특정 행동을 일으키는 뇌의 구조적 특징이나 활동상의 패턴 등이 확립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살아 있는 뇌를 비침습적 방법으로 관찰한다 해도 특이사항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의 정신질환에 노출되지 않았고, 정신건강과 행동에 영향을 끼칠 만한 유전적 소인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뇌 스캔으로 스트레스나 유혹 등에 대한 반응을 알아봐도 범죄를 설명할 근거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서를 파악하는 장치로 마음을 읽을 수는 없을까. 현재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이 마음을 해석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기기는 신경세포를 추적하는 대신 혈관 근처의 산소를 측정해 생각을 포착한다. 하지만 최소한 2초 이상 지속되는 활동을 관찰해야 하는 탓에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뉴런 세포에서 이동하는 칼슘 이온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수밀리 초 동안에 지속되는 신호를 기록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20T(Tesla)나 되는 강력한 자석이 필요해 인간에게 적용하긴 힘들 것으로 예측된다. 설령 이런 기기로 인간의 마음을 읽어도 ‘독심술’ 이상의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만일 150년 전에 태어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피의자를 만난다면 피의자의 마음을 특유의 방식으로 ‘상징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요구하는 본능적 에너지를 일컫는 ‘이드’(id)가 지배하는 세상의 피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인간의 이성을 압도하려고 위협하는 충동적인 욕구, 그것이 반사회적이며 자기파괴적일지라도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게 이드이니 말이다. 아무리 말다툼을 마무리하려는 의도였다 해도 편의점까지 달려가 흉기를 구입한 것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이성적 자아가 꿈꾸는 안전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공격과 증오에 불타는 본능을 선택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의자들은 ‘무의식적 양심’(초자아)을 저버린 ‘고집스런 바보’(Inner Dummy)에 가깝다. 하지만 프로이트식의 해석은 피의자들의 마음 일부에 적용될 뿐이다. 두 사람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먹자골목’에서 3차까지 술을 마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흥가라는 공간적 특성이 발휘되는 곳에서 알코올로 인한 과격 행동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범죄심리학)는 “개인의 감정에 따른 행동이 유흥가에서 쉽게 나왔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평상시에도 ‘욱’하는 기질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충격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 순간적으로 이성이 무너지기 쉬운 여러 조건이 있었다. 동료와 함께 있으면서 동기가 강화되는 ‘사회적 촉진’ 현상이 나타났고 유흥가이다 보니 행동 규범이 상대적으로 넓게 용인되는 분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 안에 동물적 행동 부추기는 본능이 대부분의 남성은 술을 마시면 과격한 행동을 한다. 평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알코올의 효능을 심심찮게 확인한 일이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섭취하는 알코올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다르다 해도 알코올과 과격한 행동이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라졸라의 스크립스연구소 로버트 퍼디 박사팀은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알코올을 섭취하면 뇌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알코올이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의 순환을 낮추고 생식 능력을 손상시킨다는 통념을 깨뜨린 것이다. 이들은 난폭한 행동을 억제하는 알코올 섭취 방법을 찾고 있다. 얼마든지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공격적인 행동에 이를 수 있다. 최전방 감시초소(GP)에서 동료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거나 어린이집 원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아이를 바늘로 찌르고, 20대 엄마가 두 살배기 아들을 강에 던지기도 했다. [%%IMAGE3%%] 이런 일들은 취중에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연세대 오경자 교수(심리학)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에도 장기적으로 누적된 성향이 있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런 마음의 흔적을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사람이 결정적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감정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공격적 행동은 본능에 가깝다. 인간 감정의 발생 메커니즘을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를 펴낸 러시 W. 도지어 주니어는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는 증오심이 자연선택에 의한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면서 “뇌의 원시신경계와 고등신경계 사이의 갈등에서 증오심이 싹튼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외부의 자극이나 감정에 즉각 반응하는 원시신경계와 논리적 이성과 사색을 관장하는 고등신경계가 신경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면서 감성과 이성에 혼돈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이라는 인간됨의 포용력을 차단하고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쯤되면 마음의 ‘집행기관’에 문명화된 생각을 거부하고 동물적 행동을 부추기는 무의식적 본능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여전히 의문투성이로 남아 있는 프로이트의 정신과학이 신경생물학의 도움을 받아 되살아나기도 한다. 뇌에서 화학물질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프로이트식의 동기유발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미 원시적인 뇌의 구조와 인지정보를 주고받는 신경경로가 뇌의 피질 아래 부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의식적인 자아를 지배하는 현실원칙을 거스르는 쾌락원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뇌의 내부에 있는 동물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게 행동 신경과학자들의 판단이다. 잘못된 상벌 체계, 분노의 쾌락 때론 정상적인 사람이 사회적 지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상행동을 하기도 한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결혼한 40대 중반의 정아무개씨. 대학교수로서 학문적 성취를 이뤘지만, 그에게도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기러기 아빠로 지내며 부적절한 관계에 관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연히 학술활동과 관련해 만난 미혼여성의 뒤를 쫓아 막무가내로 만나줄 것을 요구했다. 모든 걸 잃어도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것이 통할 리 없었다. 그러자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날렸다. 급기야 여성의 집 앞에서 경찰차에 실려가는 고초를 겪었다. 특별한 혐의가 없어 이내 풀려났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은 유명인의 스캔들도 수두룩하다. 영화배우 휴 그랜트는 한밤중에 매춘부와 함께 체포됐고, 빌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기간에 섹스 스캔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얼마 전 출간된 프랑스 언론인 크리스토프 뒤부아와 크리스토프 들루아르의 <섹수스 폴리티쿠스>(Sexus Politicus)는 정치인의 ‘잠자리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비단 섹스 스캔들이 아니어도 멀쩡한 사람이 돌변하는 경우는 흔히 일어난다. 축구 경기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난동으로 국제적 문제를 일으키는 ‘훌리건’들의 문제가 먼 나라의 일이라면, 도로에서 주행하다 경적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다며 폭력적으로 차를 밀어붙이는 운전자도 흔하다.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 ‘헐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문제도 따지고 보면 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와이너와 정신과의사 길버트 헤프터는 <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에서 이성적 뇌(신피질갢eocor tex)와 원시적 뇌(변연계갟imbic system)의 갈등에 따라 나타나는 비합리적 행동의 실체를 파헤쳤다. 이들은 미국 하버드대학의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빈 서판’(마음은 타고난 특징이 없다)이나 ‘고상한 야만인’(선하게 태어나 사회에서 타락), ‘기계 속의 유령’(생물학적 제한과 관계없는 선택) 등의 도그마 대신 제안한 ‘진화적 본성’을 따르고 있다. 즉, 진화의 최종 산물인 이성적 뇌가 포유동물에서 진화한 원시적 뇌의 지배를 받을 때 이상행동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성적 뇌를 끊임없이 자극해야 이때 이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우울한 감정이나 의기양양 등이 나타난다. 뇌의 변연계가 상벌 체계를 주관하면서 멀쩡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광기라는 비합리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벌 체계에 결함이 있어서 어리석은 행동마저 보상을 해주려고 한다. 분노의 파생물인 증오가 강한 쾌감을 주는 공격적 행동을 하고,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가학적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본능을 성과 공격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눈 프로이트의 이분법은 아닐지라도 뇌의 신경화학물질로 조절되는 쾌락과 분노, 공포, 유희 등의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뇌가 신비의 베일을 벗어 뇌의 결함을 제거하는 화학적 조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된 상벌 체계에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원시적 뇌가 준동해도 극악한 범죄로는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대체로 변연계가 본능에 관련된 권력, 영역, 성, 애착, 생존 등의 욕구를 관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능적 욕구도 등급이 있어서 예기치 않은 사건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애착 욕구가 높은 사람은 마음을 나누는 상대방이 다른 이에게 사소한 관심만 가져도 질투심에 휩싸여 사생결단식으로 덤벼들고, 생존 욕구가 낮은 사람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맡기는 잘못을 저지른다. 이런 욕구는 미묘한 인간 정서에 관련된 것이라 뇌 스캔 같은 기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욕구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자문하면서 뇌의 안과 밖에서 영향을 받는 마음을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이 원시적 뇌에 지배받지 않을 수는 없을까. 뇌의 메커니즘이 이성보다 직관에 빨리 반응하기에 변연계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개인의 본능적 욕구라 해서 원시적 뇌만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는 “감정에 관련된 신경계의 작용은 매우 복잡하다. 문제는 원시적 뇌가 감정을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이성적 판단에 관련된 대뇌 신피질을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먹자골목 사건의 피의자들이 자신들의 마음, 아니 욕구에 귀기울였다면 칼부림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미친 뇌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