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빈티지의 복원을 주장하는 행동형 철학자 이준익 감독 인터뷰… <왕의 남자> 이은 <라디오스타>에서도 가치를 전복하고 의심을 찬양하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역시나 이름이 문제다. 이준익 감독에게 ‘신윤동욱’ 명함을 내밀자 대뜸 이름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런데 아버지나 어머니가 재혼하면 어떻게 됩니까? 성이 복잡해지지 않나?” 순간 뻘쭘해하다가 뭐라고 웅얼대자 웃음 띤 답변이 돌아왔다. “그냥 (부모성 같이 쓰기를) 영화적으로 한번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어쨌든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어진 인터뷰 이야기.
그는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지만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하는 인터뷰는 질색”이라고 말했다. “스튜디오에서 찍으면 지나치게 미화되는 경우가 많아요. 진실이 왜곡되죠. 누구나 성공하려면 추하고, 더럽고, 냉정한 일면이 있기 마련인데…. 성공을 미화하면 잘못된 정보로 (시청자에게) 잘못된 지침을 주게 되잖아요. 게다가 열패감까지.” 빚더미에 시달리다 <왕의 남자>로 1230만 관객을 동원하고, “당신의 성공에 반대합니다”라는 역설법으로 성공을 강조한 광고의 모델까지 한 감독의 말이었다.
변방에서 부르는 퇴물의 부활가 이날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슬로건으로 요약하면, “가치의 전복을 돌아보자” 혹은 “의심을 찬양함”, 그쯤이 되겠다. 첫 번째 전복 이야기. “성공의 가치가 전복돼왔죠. 우리한테도 수백 년, 수천 년 이어진 고유의 가치가 있었죠. 그런 가치가 일제에 유린당하면서 사라지고, 미 군정부터 무방비로 서양의 가치를 흡수하면서 전복됐죠. 또 고도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성공이라는 집단최면에 걸렸고요. 그래서 사람은 무조건 서울로 보내야 한다, 이런 말이 생겼죠”. 당연히 그의 가치론은 영화에 투영됐다. 이 감독의 신작 <라디오 스타>는 변방에서 부르는 퇴물의 부활가다. ‘쌍팔년도’ 가수왕 최곤(박중훈)이 몰락을 거듭하다 이르게 된 강원도 영월에서 라디오 DJ를 하면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최곤의 곁에는 20년을 동고동락해온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있다. 이준익의 영화적 방법론(혹은 가치론)은 ‘역부정’일지도 모르겠다. “가치의 전복 속에서 세대의 단절, 가치의 단절은 한국인의 존재 방식이 돼버렸어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선배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거죠.” 이제는 세대의 단절을 넘어 부정의 부정을 해야할 때다. 그는 “이식된 가치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새것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에게 부정은 곧 복원인 것이다. <왕의 남자>가 서구에 의해 부정당한 역사를 조선을 배경으로 복원하는 영화라면, <라디오 스타>는 그 무대를 오늘로 옮겨와 첨단에 의해 밀려난 어제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그에게 물었다. “부정의 부정을 거듭한 역사가 거꾸로 오늘의 ‘다이내믹 코리아’를 만든 것 아니냐”고.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이내믹을 ‘냄비근성’으로 번역할 수 있어요. 냄비근성이 과거에는 악덕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역동적이라는 뜻도 되니까.” 또다시 유장한 설명문.
“20세기에 한민족은 엄청난 업을 쌓지 않았습니까? 친일행위, 동족상잔의 업. 저는 업은 덕으로 풀고, 덕을 쌓아야 복이 온다고 믿어요. 이제는 업을 단죄할 것이 아니라 용서해야죠.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있잖아요. 굳게 믿으면 정말로 이루어진다는. 한국도 피그말리온 시대로 가야죠. 다행히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 가고는 있는데, 문제는 소외된 부분에 햇살을 비추는 거죠.” 그래서 그의 시선은 몰락한 스타와 뒤처진 공간에 닿았다.
<라디오 스타>에는 삼중 사중의 과거가 중첩돼 있다. 공간으로서 과거형인 영월에 시간으로서 과거형인 몰락한 가수왕이 들어간다. 그리고 소멸하는 매체로 여겨지는 라디오를 통해 오래된 미래가 펼쳐진다. 게다가 변방으로 밀려난 가수와 매니저를 중심에서 멀어졌던 배우들이 연기하는 리얼리티도 겹쳐진다. 영월의 대척점인 서울은 비정한 인간들의 비열한 거리로 영화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감독은 “<라디오 스타>는 변방의 인생에 어떤 희망이 있는지를 묻는 영화”라고 말했다.
최곤에게 드리운 압축성장의 이미지
“아니 벌써, 이준익이 영화를 만들었단 말이야?” 나만의 의문은 아니다. 2005년 말에 개봉한 <왕의 남자>가 초대형 대박을 터뜨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신작이란 말인가. 그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답했다. “<왕의 남자>를 찍기 전에 <라디오 스타> 제작 스케줄이 잡혀 있었어요. <왕의 남자>로 제가 대표인 영화사 씨네월드의 빚을 다 갚을 줄 몰랐던 거죠. 빚이야 질 수도 있지만, 빚지고도 게으른 놈은 정말 나쁜 놈 아닙니까.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한편으로 <라디오 스타>로 같이 일하기로 약속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약속을 못 지키면 또 빚지는 거잖아요.”
이번에는 전혀 다른 궁금증 하나 더. “최곤의 모델은 가수 김현식일까?”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최곤의 이미지가 고 김현식의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최곤의 히트곡이라고 나오는 <비와 당신>도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연상시켰다. 혹시나 김현식이 살았다면, 최곤처럼 되었을까,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감독의 답변, “<라디오 스타>에는 (내가 생각하는) 한국 록 음악의 시조와 막내가 있어요. 영화에서 경배를 표하는 신중현씨가 한국 록의 대부라면, 록의 막내는 영월의 유일한 록밴드 ‘이스트 리버’로 노브레인이죠. 그 중간에 김현식, 전인권, 이승철 같은 수많은 로커가 있었죠. 그들의 이미지가 최곤에 녹아 있는 거죠.”
최곤은 끝도 없이 몰락했지만 여전히 매니저 박민수가 자장면도 비벼줘야 먹고, 혼자서 담배가게도 못 찾는 철없는 왕년의 가수왕이다. 이 감독은 “갑자기 스타가 됐다가 몰락했지만, 스타의식에서 정신적 성장은 멈춰버린 최곤에게는 압축성장을 한 한국의 이미지가 드리워져 있죠”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라디오 스타>는 “최곤이 인생의 고단한 짐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이 감독은 “먼 길 가는 사람은 짐이 가벼워야 하지 않느냐”며 “최곤이 짊어진 스타의식이라는 짐을 매니저 박민수와 헤어짐을 거치면서 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최곤은 영화의 막바지에 고해성사를 하듯 깨달음을 독백한다. “형이 별은 혼자 빛날 수 없는 거라고 했잖아.” 최곤의 독백은 이준익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저는 자의식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인간이에요. 세상이 나한테 프로그래밍한 시스템을 의심해야 에너지가 생겨요. 더구나 자신의 현실과 의지가 어긋나 있을 때, 그것을 인정해야 극복이 시작되죠. <라디오 스타>도 최곤이 자신의 남루한 현실을 응시하고 인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퀴어 영화냐고요? 여성이 주변화됐다고요?
잠시 인터뷰 장소 묘사. 이준익 감독이 대표를 맡고 있는 영화사 ‘씨네월드’에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이준익 감독 뒤에는 <라디오 스타>와 나란히 <왕의 남자>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맞은편 벽에는 씨네월드가 제작한 영화 <달마야 놀자> <아나키스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결같이 남자들 위주로 나오는 영화다. 특히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영화다. 시대 배경은 다르지만, 남자 둘이 인생길을 함께 가는 일종의 버디 무비다. 당연히 이어진 순진한 질문, “왜 남자들 얘기만 하세요?” “남녀를 그릴 자신이 없어요. 내가 사랑을 안 믿나 봐요. 대신 우정으로 채우지. 그러니까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를 만들지.” 이어서 “그러면 <왕의 남자>는 퀴어 영화냐”고 물었다.
그는 “<왕의 남자>가 퀴어 영화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하죠. 반대로 퀴어 영화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해요. 퀴어적인 요소도 있지만 퀴어 영화는 아니고, 그냥 <왕의 남자>인 거죠.”
그리고 인간의 젠더와 영화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그의 생각. “저는 이성 간 애정과 동성 간 우정의 심리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것도 자의식에 대한 의심이 중요한 문제인데. 태어날 때 이성, 동성으로 조건이 다른 것뿐이잖아요. 문제는 태어난 조건의 지배를 받느냐, 내가 만든 조건으로 살 것이냐 그거지. 왜 플라톤도 인간이 원래 자웅동체였다고 하잖아요. 물론 은유죠. 하지만 내 안에도 여성성이 있고, 우리 안에 남성과 여성 호르몬이 모두 있잖아요. 단지 호르몬의 비례가 달라 남녀로 구분될 뿐이죠. 그래서 그렇게 구획짓는 것이 우스워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흘러간 노래가 떠올랐다. 정상성의 편견을 버리고 찬찬히 돌아보면, 사랑과 우정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왕의 남자>는 물론이고, <라디오 스타>에도 사랑과 우정 사이의 정서가 스며 있다. 이 감독은 “사랑이 49%, 우정이 51%”라고 성분을 분석했다. 그리고 “1%가 100%가 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다시 한 번, 이준익 영화에서 여성들이 주변화되는 경향을 추궁했다. “그래도 <왕의 남자>에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장녹수가 있었고, 황산벌에는 계백 부인이 촌철살인의 대사를 날렸는데, <라디오 스타>에는 도드라진 여성이 없어요.” 이어진 감독의 항변. “강 PD가 있잖아요. 강 PD가 술을 마시고 최곤과 박민수를 향해 ‘당신들처럼 될까봐 두렵다’고 말하잖아요. 처음으로 최곤한테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사람인 거죠.” 강 PD(최정윤)는 원주 방송국에서 일하다 방송 사고를 내서 영월 방송국으로 밀려온다. 그리고 내키지 않지만 ‘최곤의 오후 2시의 희망곡’을 맡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준익의 사설은 감독이 꼽은 명대사로 이어졌다. 강 PD의 말에 ‘찔린’ 최곤은 술 취해 쓰러진 강 PD를 업고 가는 박민수에게 처음으로 이별을 입에 올린다. “형, 우리 헤어질까?” 20년의 세월을 허무는 말이다. 심각해지려면 한없이 심각해지는 순간이다. 박민수가 수습하듯 애원하듯 나지막이 대답한다. “내가 더 열심히 할게.” 이 감독이 꼽은 <라디오 스타> 최고의 명대사이자,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순간을 떠올릴 장면이다. 처연한 대사에 관객은 뒤통수를 맞고 영화는 앞으로 나가지만 관객의 생각은 멈추게 되는, 그런 한마디다. “남녀관계는 자신 없다”던 이준익 감독이 다음에는 멜로 영화를 찍을 작정이란다. 역시나 자기 부정이다. 그는 “세상에는 평생 불 지르고 다니는 인간과 평생 불을 끄고 다니는 인간이 있다”며 “나는 불 지르고 다니는 인간”이라고 말했다. 그의 멜로 영화 도전은 “불 지르고 도망가는 일”이다. 이어진 상식적인 질문, “실패가 두렵지 않느냐”. 그는 “모르는 것에 호기심이 동한다”며 “성공과 실패는 순간의 현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패해도 행복한 인간들이 있으니까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사람들이 우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라디오, 고백의 성소이자 하소연의 창구
<라디오 스타>를 이야기하면서 라디오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라디오 스타>에서 라디오의 발견은 터미널 앞 청록다방 김양이 얼떨결에 마이크를 잡고 눈물 젖은 고백을 하면서 시작된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김양의 사연은 ‘영월인’의 심금을 울리고, 장삼이사들의 사연이 이어지는 계기를 만든다. 시골 무지렁이들의 무공해 고백은, 소도읍 장삼이사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인터넷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최곤의 오후 2시의 희망곡’은 전국의 애청자를 거느리게 된다. 그리하여 라디오는 고백의 성소이자 하소연의 창구이자 소통의 매체로 재발견된다. 어찌 라디오에 대한 이준익의 철학을 묻지 않으리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에는 표정, 글, 말, 목소리가 있죠. 표정은 기뻐도 슬픈 척 속일 수 있잖아요. 글로도, 말로도 속일 수 있죠. 하지만 목소리는 다르죠. 말은 머리에서 나오지만, 목소리는 가슴에서 나오니까.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가슴을 만지며) 생물학적으로 가슴의 진동이 파장을 일으켜서 목소리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 거짓말 탐지기를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현란한 수사를 동원해도 목소리의 진정성을 숨길 수는 없어요. 그러니 목소리로 전달하고 전달받는 라디오는 진심을 드러내는 매체가 되는 거죠.”
<라디오 스타>에서 라디오를 빼놓을 수 없는 만큼 영월의 풍광도 빼놓을 수 없다. 담담하게 영월을 비추고 동강을 음미하는 카메라에는 <라디오 스타>의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정서가 스며 있다. 이 감독은 “영월의 지세가 예술”이라고 극찬했다. 산 아래 강, 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더없이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만큼 자연과 인간이 사이좋게 지내는 나라는 없었어요”며 “서구식 근대화를 거치면서 자연을 불편하게 여기게 됐죠”라며 안타까워했다. 최곤과 박민수도 예외는 아니다. “최곤과 박민수는 도시라는 용광로에서 불나방처럼 살면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때때로 서로를 증오하면서 20년을 달려온 거잖아요. 만약 서울에서라면 최곤의 자기 고백이 불가능했겠죠.” 그래서 그에게 <라디오 스타>는 “영월의 품에서 최곤이 정화되는 영화”다.
마지막 이야기는 ‘빈티지’로 흘러갔다. “<왕의 남자>에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한국적 혹은 전통적) 가치의 실제성이었어요. 우리는 근대 이전까지 수천 년 동안 서양보다 훨씬 빈티지가 뛰어난 나라였어요. 그런데 반세기 만에 서양에 물질은 물론 정신까지 점령당해버렸죠. 빈티지라는 게 뭡니까? 뭔가를 쓰고 또 써서 역사가 축적되는 거잖아요. 저는 문화의 용불용설을 주장하는데요. 우리가 거문고와 해금을 자꾸 써야 서양인들도 따라한다는 거죠. 서양은 동양문화에 매혹되는 문화의 역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서양의 빈티지에 눈이 팔려 있잖아요. 이제는 한국적 빈티지를 복원하자는 거죠.” 그에게 <왕의 남자>가 고전적 빈티지의 복원이라면, <라디오 스타>는 오늘의 빈티지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안성기를 한국산 빈티지 목록에 넣자”
그는 “우리에게는 안성기가 있다”고 ‘외쳤다’. 한국산 빈티지 목록에 배우 안성기의 이름을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알 파치노를 숭배하고, 영국은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경(Sir)이라는 존칭을 붙이면서 경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경배하기는커녕 주변으로 밀어내잖아요.” 한국적 빈티지, 안성기와 박중훈 콤비를 캐스팅한 하나의 이유다. “조종사 한 명을 만드는 데 사회적 비용이 몇억이 든다고 하는데, 안성기라는 배우를 만드는 데 들인 비용이 얼마입니까? 수십 년 동안 그가 나오는 영화 만들고 보고 하면서 몇백억, 몇천억이 들었잖아요. 우리가 우리의 빈티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쩌면 <왕의 남자>에 이은 <라디오 스타>는 자신의 빈티지에 경배하지 않는 문화에 대한 이준익의 영화적 항의다. 참, 영월의 유일한 록 밴드이자 최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이스트 리버’를 연기한 노브레인은 영화의 감초 역을 톡톡히 해낸다. 이 감독은 노브레인에 대해 “그들 연기의 천진성은 어떤 숙달된 연기보다 값어치가 있다”고 칭찬했다. 물론 “얼굴이 변방”이라는 촌철살인도 함께. <라디오 스타>는 28일 개봉한다.

변방에서 부르는 퇴물의 부활가 이날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슬로건으로 요약하면, “가치의 전복을 돌아보자” 혹은 “의심을 찬양함”, 그쯤이 되겠다. 첫 번째 전복 이야기. “성공의 가치가 전복돼왔죠. 우리한테도 수백 년, 수천 년 이어진 고유의 가치가 있었죠. 그런 가치가 일제에 유린당하면서 사라지고, 미 군정부터 무방비로 서양의 가치를 흡수하면서 전복됐죠. 또 고도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성공이라는 집단최면에 걸렸고요. 그래서 사람은 무조건 서울로 보내야 한다, 이런 말이 생겼죠”. 당연히 그의 가치론은 영화에 투영됐다. 이 감독의 신작 <라디오 스타>는 변방에서 부르는 퇴물의 부활가다. ‘쌍팔년도’ 가수왕 최곤(박중훈)이 몰락을 거듭하다 이르게 된 강원도 영월에서 라디오 DJ를 하면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최곤의 곁에는 20년을 동고동락해온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있다. 이준익의 영화적 방법론(혹은 가치론)은 ‘역부정’일지도 모르겠다. “가치의 전복 속에서 세대의 단절, 가치의 단절은 한국인의 존재 방식이 돼버렸어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선배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거죠.” 이제는 세대의 단절을 넘어 부정의 부정을 해야할 때다. 그는 “이식된 가치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새것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에게 부정은 곧 복원인 것이다. <왕의 남자>가 서구에 의해 부정당한 역사를 조선을 배경으로 복원하는 영화라면, <라디오 스타>는 그 무대를 오늘로 옮겨와 첨단에 의해 밀려난 어제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그에게 물었다. “부정의 부정을 거듭한 역사가 거꾸로 오늘의 ‘다이내믹 코리아’를 만든 것 아니냐”고.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이내믹을 ‘냄비근성’으로 번역할 수 있어요. 냄비근성이 과거에는 악덕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역동적이라는 뜻도 되니까.” 또다시 유장한 설명문.
123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의 흥행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를 완성했다. 그는 <왕의 남자>에 대해 “퀴어무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에는 시공을 넘는 공통점이 있다. 남자 둘이 인생길을 함께 걷는 버디 무비라는 것이다.
<라디오 스타>는 박중훈과 안성기라는 배우의 리얼리티에 힘입어 한물간 가수와 매니저의 감동을 만들어낸다.
촬영장에서 안성기씨와 함께 웃고 있는 이준익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