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은빛 도너츠, 인테리어로 전향하다

627
등록 : 2006-09-15 00:00 수정 :

크게 작게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웹하드나 메일함 같은 가상 데이터 저장이 선호되기 전, 공CD는 퍽이나 고마운 벗이었습니다. 뭐든 담아낼 여백의 미야말로 이 은빛 도너츠를 백지수표에 버금가게 했지요. 원본을 감쪽같이 훔쳐오는 재주 덕에 영화며 음악이며 밤새 얼마나 구워졌습니까! 트랙 표면이 반사하는 은은한 무지개마저 공CD의 무한능력의 부산물 같았습니다. 그러나 원본에 비해 공CD는 여전히 서자입니다.

표면 위에 손으로 대충 적은 저장목록은 공CD의 타고난 ‘야매성’의 낙인입니다. 이들의 애처로움은 한 번 저장된 그 어떤 데이터도 대체로 다시는 열어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있습지요. 저장이 곧 매장이랄까요? 정보량의 과적으로 은빛 도너츠를 실추됐습니다. 뭐건 필요 이상 쌓이면 버림받기 마련인 법. 그래서일지 현란한 인테리어 장식에는 쓰다 만 공CD가 딱입니다. 하긴 후미진 서랍장에서 최후를 맞느니 표면 고유의 반사광으로 사이키 분위기 내주는 편이 훨씬 낫지요. 용도변경이란 마지못한 상황이 만든 결과이니 말입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반이정의 사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