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국 대한적십자사 대구병원 신경과
외환위기로 길거리에 실업자들이 넘쳐나던 시절로부터 무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 거리의 풍경은 지난 10년의 세월과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 당시 길거리로 내몰렸던 사람들이 겪은 고통은 그때의 절박한 위기 상황만 벗어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을 터이다.
지금은 희망이란 말 자체가 아예 잊혀진 낱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역 주변 노숙인들의 수는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고 하루에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살풍경스런 세상으로 돌변해버렸지만, 세상은 그저 무덤덤하게 잘도 돌아가고 있다. 내일이 없는 사람들이 납덩이처럼 굳은 얼굴로 숨소리 허덕이며 팍팍한 도시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데, 대통령은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은 다르다”는 알 듯 말 듯한 말과 함께.
한계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하나뿐이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기 위해서라도 그 몸 하나는 온전히 보존해야 할 터이지만 이 나라의 의료보장 체계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만신창이가 된 그들의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해주질 못하는 형편이다. 그 틈을 일부 의사들의 모임에서 진료봉사 사업으로 메우고는 있으나 언 발에 오줌 누는 효과조차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나마 젊은 몸이라면 풍찬노숙을 하더라도 얼마간 버텨낼 수 있겠지만 노인들, 재활용도 불가능한 폐품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 가난한, 게다가 홀로 된 노인들의 삶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형벌일 지경이다. 이런 시절, 이런 세상에서 서글픈 황혼을 보내기 위해서는 자식은 물론 자신이 누군지조차 제대로 모를 정도로 넋 놓아버린 노인들이 오히려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자식들에게 모두 외면당한 한 노인이 이리저리 떠돌다가 마지막으로 안착한 곳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었다. 입원 당시에 지병이 있어 거동이 다소 불편했어도 사리분별만은 명료한 분이었다. 하지만 입원 2주일이 지날 무렵부터 말문을 닫은 채 밥은커녕 물 한 모금 입에 대질 않았고, 의료진이 잠시 한눈만 팔아도 수액을 공급하던 주삿바늘까지 뽑아버리기 일쑤였다. 그 노인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는 ‘집’이란 말이 나올 때뿐.
어렵게 연락이 된 가족의 반응은 냉정했다. 집으로 모시고 간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어찌됐든 병원에서 끝장(?)을 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며, 가족이 다들 먹고사는 일이 바쁜 만큼 운명했을 때 외에는 굳이 연락조차 삼가달라는 간청 아닌 간청만 늘어놓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쇠잔해질 대로 쇠잔해진 노인은 밤늦은 시간 잠자듯이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노인이 눈을 감은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새벽에 사망진단서 발급건 때문에 나는 다시 병원에 불려나와야 했다. 운명에서 출상에 이르는 시간까지 대여섯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자정을 넘겼으니 엄연히 이일장이다. 삼일장에서 하루를 빼 허례허식을 줄이겠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그 노인이 자식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로 식음을 전폐함으로써 스스로 숨을 끊은 것인지 노쇠와 지병으로 자연사한 것인지는 알 길 없으나,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경제와 민생의 수준이 반비례하는 이 시대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집이 없는 가난한 노인들의 삶은 지금도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한계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하나뿐이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기 위해서라도 그 몸 하나는 온전히 보존해야 할 터이지만 이 나라의 의료보장 체계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만신창이가 된 그들의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해주질 못하는 형편이다. 그 틈을 일부 의사들의 모임에서 진료봉사 사업으로 메우고는 있으나 언 발에 오줌 누는 효과조차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나마 젊은 몸이라면 풍찬노숙을 하더라도 얼마간 버텨낼 수 있겠지만 노인들, 재활용도 불가능한 폐품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 가난한, 게다가 홀로 된 노인들의 삶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형벌일 지경이다. 이런 시절, 이런 세상에서 서글픈 황혼을 보내기 위해서는 자식은 물론 자신이 누군지조차 제대로 모를 정도로 넋 놓아버린 노인들이 오히려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