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뺀 서울국제소극장오페라축제, ‘상류층 전유물’선입관 벗고 달려가보자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재미있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창녀인 줄리아 로버츠가 사장님 리처드 기어와 오페라 감상을 할 때다. 화려한 붉은 드레스 차림에 우아한 오페라 글라스를 들고서 <라 트라비아타>를 보던 줄리아 로버츠는 눈물을 흘리면서 찬사를 내뱉는다. “제기랄, 오줌쌀 것 같아.” 음악이라곤 싸구려 나이트클럽에서 흘러나오는 댄스뮤직만 들어봤을 것 같은 이 입이 건 아가씨가 난생 처음 오페라를 보면서 눈물 펑펑 쏟아내는 장면을 보면서 “말도 안 돼”라고 일축했다면 당신은 한번도 오페라를 본 적이 없거나 한번 본 오페라가 운나쁘게도 지독히 못 만든 작품이었을 확률이 높다.
시트콤 즐기듯 배꼽 잡을 수 있고…
고전음악 중에서도 오페라는 유난히 멀게 느껴지는 음악장르다. 오페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드레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레시타티브니 콜로라투라니 어려운 말을 섞어가면서 고상하게 감상해야 하는 음악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귀의 예술에 볼거리를 더한 오페라는 고전음악의 어떤 장르보다도 대중적으로 발전해온 음악이다. 오페라가 융성했던 18∼19세기에 서민들은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기보다 오페라를 보러 극장에 몰려갔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마술피리>가 공연되던 극장 안의 구질구질하고 왁자지껄한 풍경은 당시 저잣거리의 필부들이 어떤 쇼보다 즐겨찾던 오페라의 인기를 잘 보여준다. 작가 스탕달은 오페라를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이 아닌 “최고의 오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페라의 대중적 생명력은 현대에 이르러 뮤지컬이라는 자손에 상당부분 넘어가긴 했지만 그 자체의 매력이 줄어든 건 아니다. 오페라는 여전히 고전음악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고전음악과 친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는 “오페라가 서양의 전통이라 처음에는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연극볼 때의 재미와 음악에서 느끼는 감동이 플러스 알파가 되기 때문에 한번 빠져들면 극장에 가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매력 넘치는 장르”라고 이야기한다. 음악의 문외한이라도 시트콤을 즐기듯 오페라 부파(웃기는 오페라)를 보며 배꼽 잡을 수 있고 슬픈 멜로영화를 보듯 오페라 시리아(심각한 오페라)를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아주 잘 만든 작품을 볼 때에 한해서만. 장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페라에 친숙하지 않은 이유가 “정서의 차이보다는 좋은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외국 유수 오페라단의 내한 공연의 경우 터무니 없는 입장료가 발목을 잡고 국내 오페라는 많은 경우 거물급 성악가들의 자화자찬식 대작 위주에다 안일한 완성도가 관객의 하품을 멈추지 못하게 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2월 초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했던 <마술피리>의 성공은 ‘오페라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깬 좋은 사례다. 2시간30분이 넘는 원작을 1시간35분으로 줄이면서 코믹한 부분을 보강하고 독특한 무대배경과 뮤지컬 배우를 도입한 이 작품은 관객동원과 비평면에서 두루 성공해 제작자들의 의지만 있으면 21세기의 오페라도 얼마든지 대중적인 오락거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오페라는 서양인들을 위한 음악이라거나 상류층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만 버린다면 지금은 오페라와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 2월21일부터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한달간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소극장오페라축제는 국내 오페라계의 거품을 빼고 대중에게 가까이 가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행사다. 80년의 비극 그린 <서울 라 보엠>
“국내 오페라는 관객이 아닌 공연자의 선호도에 의해서 작품이 결정돼왔기 때문에 레퍼토리도 다양하지 못했고 요즘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연출적 실험도 부족했다”고 비판하는 축제위원장인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장수동 대표는 소극장축제를 “관객 위에 군림하는 오페라가 아니라 관객을 찾아가는 오페라”로 소개한다. 올해로 3회를 맞는 이 행사는 베르디와 푸치니 일색이던 국내 대작 오페라의 편식증을 없애기 위해 지난해까지 국내초연 작품을 소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올해는 초연과 재연을 가리지 않고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을 번안 오페라와 오페레타. 현대오페라, 창작오페라 등 다양하게 그릇에 담아 내놓았다.
개막작인 <서울 라 보엠>(서울오페라앙상블)은 푸치니의 대표적인 작품인 <라 보엠>의 배경을 서울의 80년대로 옮겨온 번안작품. 80년 광주의 비극과 독재로 인한 젊은이들의 좌절 속에 ‘내 이름은 미미’, ‘그대의 찬손’ 등 명아리아가 절묘하게 들어간 이 작품은 오페라가 박물관의 진열장 안에서 빛나는 보석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번안할 때 장 대표는 동료 음악가들로부터 많은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장씨는 “영화나 뮤지컬이 다루는 소재를 오페라가 못 다룬다면 결코 관객과 친해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19세기 파리 대신 80년대 신촌의 허름한 하숙집과 술집, 그리고 익숙한 사회적 배경이 드라마로 탄탄히 짜여 음악이 아주 훌륭한 연극을 보는 느낌을 준다.
오페레타 <룩셈부르크의 백작>(안희복오페라연구회)은 국내에서 초연되는 오페레타. 작은 오페라라는 의미의 오페레타는 19세기 중엽에 자리잡은 음악으로 오페라보다 가벼운 형식에 코믹한 소재를 다룬 작품으로 정통오페란 지지자들로부터는 ‘타락한 오페라’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페레타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잇는 근대의 과도기적 음악형식이기도 하다. 오페레타는 작품량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와 <박쥐>와 레하르의 <메리 위도>, 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의 문제작 <서푼짜리 오페라> 외엔 거의 소개된 적이 없다. 대표적인 오페레타 작곡가인 레하르의 <룩셈부르크 백작>은 흥겨운 왈츠와 폴카로 구성된 유쾌한 작품이다.
메노티의 <노처녀와 도둑>(세종오페라단)은 1941년 초연된 작품으로 현대 오페라의 보편적 경향과 달리 난해하지 않고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가득해서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오페라다. 이 밖에 한편으로 묶어 공연하는 이건용의 창작오페라 <봄봄봄>(국립오페라단)과 일본오페라 <호월전>(도쿄실내가극장)은 두 나라의 문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 지난 1월 말 이미 일본에서 두 나라의 가수들이 서로의 작품을 바꿔 불러 호평을 받았다. 두 작품은 각각 김유정의 <봄봄>과 나카지마 아쓰시의 소설 <산월기>를 오페라화한 것으로 이번 무대에서도 한국의 성악가가 일본어로 <호월전>을, 일본 성악가가 한국어로 <봄봄>을 연기한다.
오페라 감상의 지혜
오페라에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세종문화회관의 조성진 공연예술부장은 “그래도 오페란데 용어 한두개라도 익혀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일체 접을 것”을 당부한다.“오페라는 많은 종류의 음식이 한꺼번에 나오는 뷔페와 같아서 모든 요소를 한꺼번에 즐기기는 힘듭니다. 한두 가지 맛에 매료되고 나서 그 다음맛을 찾아보고 또 골라먹는 감식안을 가지게 되는 거죠. 중요한 건 일단 가서 먹어봐야 그 맛을 안다는 겁니다.”
혹시 노래로 하는 대사를 정확히 알아듣기 힘들까 걱정된다면 극장 앞에서 파는 얇은 대본집을 사보는 것이 오페라 감상의 지혜다. 아리아는 선율의 아름다움만으로 감상의 즐거움이 있지만 푸치니의 <자니스키키>에서 유명한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처럼 한없이 우아한 선율과 달리 “아빠, 이 남자와 결혼을 허락 안 하면 난 아르노 강물에 빠져 죽을 거예요” 따위의 경박하고 우스운 대사를 발견하는 재미를 맛볼 수도 있으니까.
(문의 02-586-5282)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현대에 이르기까지 공연때마다 성황을 이루는 비제의 오페라<칼멘>.(GAMMA)
오페라의 대중적 생명력은 현대에 이르러 뮤지컬이라는 자손에 상당부분 넘어가긴 했지만 그 자체의 매력이 줄어든 건 아니다. 오페라는 여전히 고전음악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고전음악과 친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는 “오페라가 서양의 전통이라 처음에는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연극볼 때의 재미와 음악에서 느끼는 감동이 플러스 알파가 되기 때문에 한번 빠져들면 극장에 가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매력 넘치는 장르”라고 이야기한다. 음악의 문외한이라도 시트콤을 즐기듯 오페라 부파(웃기는 오페라)를 보며 배꼽 잡을 수 있고 슬픈 멜로영화를 보듯 오페라 시리아(심각한 오페라)를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아주 잘 만든 작품을 볼 때에 한해서만. 장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페라에 친숙하지 않은 이유가 “정서의 차이보다는 좋은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외국 유수 오페라단의 내한 공연의 경우 터무니 없는 입장료가 발목을 잡고 국내 오페라는 많은 경우 거물급 성악가들의 자화자찬식 대작 위주에다 안일한 완성도가 관객의 하품을 멈추지 못하게 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2월 초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했던 <마술피리>의 성공은 ‘오페라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깬 좋은 사례다. 2시간30분이 넘는 원작을 1시간35분으로 줄이면서 코믹한 부분을 보강하고 독특한 무대배경과 뮤지컬 배우를 도입한 이 작품은 관객동원과 비평면에서 두루 성공해 제작자들의 의지만 있으면 21세기의 오페라도 얼마든지 대중적인 오락거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오페라는 서양인들을 위한 음악이라거나 상류층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만 버린다면 지금은 오페라와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 2월21일부터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한달간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소극장오페라축제는 국내 오페라계의 거품을 빼고 대중에게 가까이 가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행사다. 80년의 비극 그린 <서울 라 보엠>

사진/오페라를 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없애는 것이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위). 서울국제소극장 오페라 축제에서 공연되는 오페레타 <룩셈부르크의 백작>(아래).(예술영화 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