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마감이 되면 어느새 상처를 주고받는…
▣ 오경은 <윙크> 편집장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같은 팀 후배 모씨는 원고 마감에 몸이 슬슬 달아오르는 시간이 되면 최희준 선생의 <하숙생>을 자주 흥얼거린다.
사실 그녀가 무의식 중에 흘리는 이 노래의 숨은 뜻은 자신의 담당 만화가들의 마감 상황이 불길하니 인쇄소와 마감 스케줄을 조정할 때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책이든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없겠지만 한 달에 두 번 매호 400페이지를 만화로만 가득 채운 잡지를 만든다는 건 좀 격하게 표현해서 낙타가 개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수십 명의 각기 다른 개성과 가치관을 뽐내는 만화가들에게서 일정량의 만화 원고를 무탈하게 받아내기 위해 만화 기자는 만화가들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해부하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만화 기자들은 담당 만화가에 대한 시시콜콜한 히스토리까지 ‘내 머릿속 폴더’ 안에 담아놓는다. 그리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갖가지 ‘해독기’를 구비해둬 1:1 맞춤형 서비스로 다가간다. 만화 기자가 만화가에게 좋은 만화를 뽑아내기 위해 활용해야 할 비기(秘技)는 수도 없이 많지만 오늘은 우선 가장 보편적인(?) 노하우 몇 가지를 공개해본다. 첫째, 담당 작가의 컨디션을 수시로 체크하라.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와 음성의 고저, 그리고 대화 중간 중간 끊어지는 침묵까지도. 침묵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정보이다. 그의 침묵에 귀기울여라. 둘째, 담당 작가가 마감 피크 때 동료 작가와 서로 마감 시간을 체크하지 못하게 원천봉쇄하라. 뜬금없는 타이밍에 타오르는 동료애는 결국 우리에게 눈물의 쓰나미만을 몰고 올 뿐이다.
셋째, 마감 막바지, 아직도 허~연 원고용지를 두고 자학 모드에 빠져 허우적대는 만화가는 무조건 칭찬하라. 넌 할 수 있다, 넌 최고다라는 최면을 계속 걸어주며 마감을 진행시킨다.
넷째, 그가 애완동물을 키우는가? 그렇다면 그의 애완동물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보여라. 어쩌면 만화가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이야말로 그들의 정신적 지주일지 모른다
한때는 나도 꽤나 얄미웠던 작가들이 있었다. 영하의 추운 겨울, 마감 상황을 체크하러 1시간을 달려 찾아간 서울 근교 화실. 그 문밖에서 초인종을 또 1시간가량 눌렀으나 부재 중인 척 문도 안 열어주고 숨죽이고 있던 A작가, 마감 시간에 원고가 안 끝날 것 같자 후다닥 병원에 가서 팔에 가짜 깁스를 하고 교통사고가 났다고 눈물 연기로 원고를 펑크냈던 B작가, 멀쩡히 우리 잡지에서 연재를 하면서 라이벌 잡지 창간 사인회에 참가했던 C작가 등등….
그러나 어느 날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며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그저 이해해야 한다는 최인호 선생의 일갈에 큰 깨침을 얻은 뒤론 요즘은 만화가들을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는 중이다.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만화가와 만화 기자. 우리의 인연은 칼로 물을 베는 부부 사이처럼, 다정함보다는 서로에게 무디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이다. 우리는 서로 철석같이 믿고 그 믿음의 부실함에 화를 낸다.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결국 만화가와 만화 기자는 만화가 우리를 허락하는 그 시간 안에서 하숙생처럼 살다갈 벌거숭이 나그네이고 흘러가는 인생들이다. 그러기에 안타까운 인연 서로 다독이며 살아가면 그만일진대 오늘도 나는 지난 마감 때 데드라인을 뚫고 들어와 편집부와 협력업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던 D작가에게 일찌감치 원고 독촉 전화를 건다. 지난 마감과 똑같은 패턴의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D작가. 순간 나의 얄팍한 이해의 폭은 습자지 두께로 확 좁혀지고 뻔히 그에겐 독이 되고 내게도 하등 득이 될 게 없는 그 말을 뱉어버리고 만다.
“D작가, 요즘 자기 만화 재미없는 거 알지?” “….” 아차차~ 그의 침묵이 시작됐다. 다급해진 나는 내 머릿속 폴더를 뒤적거리며 그의 호감을 살 단어를 찾아내기 위해 허둥거린다.

사실 그녀가 무의식 중에 흘리는 이 노래의 숨은 뜻은 자신의 담당 만화가들의 마감 상황이 불길하니 인쇄소와 마감 스케줄을 조정할 때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책이든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없겠지만 한 달에 두 번 매호 400페이지를 만화로만 가득 채운 잡지를 만든다는 건 좀 격하게 표현해서 낙타가 개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수십 명의 각기 다른 개성과 가치관을 뽐내는 만화가들에게서 일정량의 만화 원고를 무탈하게 받아내기 위해 만화 기자는 만화가들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해부하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만화 기자들은 담당 만화가에 대한 시시콜콜한 히스토리까지 ‘내 머릿속 폴더’ 안에 담아놓는다. 그리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갖가지 ‘해독기’를 구비해둬 1:1 맞춤형 서비스로 다가간다. 만화 기자가 만화가에게 좋은 만화를 뽑아내기 위해 활용해야 할 비기(秘技)는 수도 없이 많지만 오늘은 우선 가장 보편적인(?) 노하우 몇 가지를 공개해본다. 첫째, 담당 작가의 컨디션을 수시로 체크하라.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와 음성의 고저, 그리고 대화 중간 중간 끊어지는 침묵까지도. 침묵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정보이다. 그의 침묵에 귀기울여라. 둘째, 담당 작가가 마감 피크 때 동료 작가와 서로 마감 시간을 체크하지 못하게 원천봉쇄하라. 뜬금없는 타이밍에 타오르는 동료애는 결국 우리에게 눈물의 쓰나미만을 몰고 올 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