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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출판] 귀엽고 당찬 아줌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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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8 00:00 수정 : 2008-09-1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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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변두리 지역 여성들의 삶을 그린 <꽃분엄마 파이팅!>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이은하씨는 아들의 탄생을 기다리다 지쳐버린 ‘칠공주집’ 다섯째로 태어났다. 대학원을 다니느라 돈벌이는 전부 아내에게 맡겨버린, ‘가장으로서는 무능한’ 남자와 결혼했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남편의 학업 때문에 서울 달동네의 지하방으로 이사간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린이 책 방문판매를 시작한다. 그에게 떨어진 ‘구역’은 누구도 맡기를 꺼려하던 독립문 인근 지역이다. 그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꽃분엄마 파이팅!>(이은하 글, 이화성 그림, 한겨레출판 펴냄)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삶을 그린다. 꽃분엄마 이은하씨가 카투니스트를 꿈꾸며 그의 집에 기생하던 막내동생 이화성씨와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다. 2005년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분량 외에 18개의 에세이를 덧붙였다. 얼핏 밋밋하고 싱겁다는 느낌을 주지만 읽을수록 슬슬 진한 국물 같은 것이 배어나오는 만화책이다.


이 만화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꽃분엄마라는 캐릭터다. 이렇게 당차고 귀여운 아줌마를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아줌마의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너무 귀여워서 세상이 다 밝아질 것만 같다. 처음 본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다가 “아줌마 책장사죠?”라는 물음에 손을 휘저어버린 초짜 세일즈맨, “오늘은 상담 약속이 하나도 없으니 어디서 목표달성을 하지?”라고 걱정하며 길을 걷다가 구민 노래자랑에서 자원자로 노래까지 부르고 마는 대책 없는 전직 가수 지망생. 그는 닫히는 문에 목을 끼워넣으면서까지 한부 한부 실적을 쌓아가며 팀장으로, 지점장으로 승진해간다. 친구와의 술자리에 불러내 술값을 계산하게 하던 우리의 대책 없는 남편도 석사 과정을 마치고 취직을 하게 된다(천성이 물러터진 그 ‘양반’도 귀여운 캐릭터다).

한 권의 만화도 참 다양하게 읽힌다. <꽃분엄마 파이팅!>에 대해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 “제3의 성 아줌마가 만화의 주인공으로 뜬 것이니 이는 현대 여성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일”이라고 했고, 세일즈스쿨 연구원장인 신윤순씨는 “한국에서 세일즈의 신화는 세일즈우먼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만화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들에 서울 변두리 지역 여성들의 삶을 진실되게 그려냈다는 점을 빠뜨려선 안 될 것 같다. “돈은 남자가 벌어야 한다”며 타박하던 동네 아줌마들은 외환위기 이후 일용직 노동자 남편들이 해고되자 하루 5천원 벌이라도 해보려고 줄을 서게 된다. 만화가게 아줌마는 이웃 아줌마에게 10년간 바느질해서 모은 돈을 떼먹히고 방 두 칸짜리 내 집 마련의 꿈도 부서져버린다. 생활은 늘 그들을 속이지만, 그들은 생활에 충실하다. 한 아줌마가 국수를 삶으면 다른 아줌마는 참기름을 가져오고, 이웃집 아이가 배고파 보이면 라면을 먹이는, 어떤 변두리의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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