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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천하장사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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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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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수술비 500만원을 좇는 소년 ‘동구’의 짠하고 웃긴 성장사 … 관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영리하게 만들어진 유쾌한 판타지의 도착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트랜스젠더(성전환자)라고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젠더라도,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고통의 총량이 다르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고통의 정도에 가족 변수가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트랜스젠더가 겪을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더구나 성전환 수술비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가정이라면, 고통은 배가된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노동자 도시, 인천을 배경으로 노동계급 출신 트랜스젠더의 성장사를 그린다.

못생기고 가난해도 씩씩하고 당당해라


그래도 <천하장사 마돈나>는 시종 유쾌하고, 때때로 ‘짠하다’. 영화의 유쾌함은 무엇보다 주인공 오동구(류덕환)의 씩씩함에서 나온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동구는 “누구에게도 무시당할 이유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만큼 씩씩하다. 어려서부터 하루하루가 시련의 연속이었을 트랜스젠더의 일상을 생각하면, 동구의 씩씩함도 이해가 된다. 그들에게 씩씩함이 없다면 고통의 성장기를 통과하기 어려운 탓이다.

동구는 새벽에 ‘노가다’를 해서 수술비 500만원을 모으려고 노력할 만큼 자신을 긍정하고 매사에 성실하다.

그래서 동구의 캐릭터에는 리얼리티가 있다. 동구는 마돈나가 되기 위해 먼저 천하장사가 돼야 한다. 그래서 ‘천하장사 마돈나’다. 동구는 씨름대회에서 우승하면 500만원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씨름부에 들어간다. 500만원은 성전환 수술에 필요한 비용이다. “500이면 똥을 오줌에 말아서도 먹을 수 있다”고 서슴없이 장담하는 동구에게 500만원은 정말로 절실한 돈이다. 이제 여성이 되기 위해 먼저 남성이 되어야 하는 동구의 역설이 시작된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굳이 감동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 장면에서 오히려 ‘짠한’ 느낌을 준다. 동구가 자신의 방에서 비밀의 서랍을 열 때, 서랍 속에 가지런히 정리된 립스틱과 인형 등속을 보여줄 때, 동구가 남몰래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발라볼 때, 동구의 진심이 잔잔하게 스며든다. 가족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책상 서랍 안에 동구의 꿈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동구는 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초난강)에게 “멘스를 했다”고 기뻐서 전하다 꿈에서 깬다. 그리고 자신이 거부하는 아랫도리가 축축히 젖었음을 깨닫는다. 몽정한 팬티를 빨면서 울먹이는 동구의 뒷모습은 슬프다. 이렇게 <천하장사 마돈나>는 자신의 삶에 당당한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장사를 몇 개의 ‘짠한’ 장면과 여러 개의 웃긴 이야기로 묘사한다. 동구가 일본어 선생님을 좋아해서 어려운 고백을 할 때, 아버지(김윤석)에게 커밍아웃을 해서 두드려맞을 때, 이렇게 극적인 사건이 터질 때보다 동구의 진심은 평범한 일상에서 오히려 잘 드러난다.

동구는 자신을 정확히 안다. 씨름선수로 천부적 재능을 보일 만큼 동구는 우람한 체격을 지녔다. 동구는 중국 전통의상을 입은 자신을 거울로 보면서 “나 약간 장만옥 같아”라고 말할 정도로 강렬한 여성에의 욕망 혹은 ‘자뻑’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발을 “곰 발바닥”이라며 “이런 다리에 하이힐을 신으면 얼마나 웃길까”라고 타인의 시선을 인식할 만큼 냉정하다. 못생긴 트랜스젠더 동구는 경제적 계급의 하층일 뿐 아니라 외모의 계급에서도 하층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는 동구는 여자가 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천하장사 마돈나>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론을 이전의 한국 영화보다 깊숙이 파고든다. 동구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난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살고 싶은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리고 씨름감독 역의 백윤식, 동구의 친구인 종만 역의 박영수, 씨름부 덩치 삼인방은 시종일관 ‘뒤집어지는’ 코미디로 영화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동구 아버지, 김윤석의 재발견

<천하장사 마돈나>의 또 다른 축은 가족이다. 동구의 아버지는 밖에서는 억울한 해고 노동자이지만, 집에서는 무서운 술주정꾼이다.

동구의 씨름 재능을 알아보는 씨름감독(백윤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하는’ 캐릭터다.

실패한 권투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자신을 긍정하지 못한다.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타인도 긍정하지 못한다. 동구가 아버지에게 커밍아웃을 하지만 아버지는 주먹질로 대꾸한다. 그는 동구에 대한 애처로움을 버리지 못하지만 동구와 화해하지도 못한다. 이처럼 <천하장사 마돈나>는 트랜스젠더의 정체성 문제를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정면으로 응시한다. 한국적 현실에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정공법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동구 역을 맡은 류덕환의 영화이자 동구 아버지로 나오는 김윤석의 재발견이다. 김윤석은 피폐한 아버지의 모습을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해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천하장사 마돈나>는 마돈나로서 동구와 천하장사로서 동구를 제대로 섞지 못한다. 마돈나를 꿈꾸던 동구의 정체성은 씨름판에 서면 휘발돼버린다. 씨름선수 동구는 그저 천부적 재능을 가진 키 작은 씨름선수처럼 보일 뿐이다. 동구가 씨름판 위에서 어떻게 정체성과 싸우는지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씨름선수 오동구는 별로 퀴어하지 않다.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동구의 정체성을 교복 안에 가두어버렸다는 의혹도 생긴다. 게다가 초반의 즐거운 캐릭터 소개가 끝나고, 후반의 동구와 씨름부 주장(이언)의 이야기로 넘어오면 극의 긴장감은 떨어진다. 무엇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동구의 정체성을, 트랜스젠더의 성장담을 말하되 관객이 불편해하지 않을 지점에서 멈출 만큼 영리하고 영악하다. 그래도 이만큼 유쾌한 판타지가 마침내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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