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싹쓸이에 한국야구 초토화 지경… 허술한 한-미 협정에 야구인 동조까지
한국야구의 씨가 마를 지경이다. 지난 94년 LA다저스 박찬호의 미국 진출을 계기로 붐이 일기 시작한 유망주 미국진출은 국내 프로야구 여건이 악화되는 것과 반비례해 더욱 극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 97년에는 김선우(보스턴 레드삭스), 서재응(뉴욕 메츠), 정석(LA다저스) 등 6명이나 대거 진출, 최고조에 이르렀고 이후에도 매년 3∼4명씩 국내 유망주들이 미국땅으로 건너가고 있다. 지난 2월2일 보스턴에 입단한 안병학(원광대)를 포함해 모두 21명이 제2의 박찬호를 꿈꾸고 있다.
21명 미국행 선택… 강도 높은 구애
게다가 한국 선수를 일년에 한명씩 스카우트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구단도 있다. 한국인 최초로 타자 메이저리거를 꿈꾸고 있는 최희섭의 스카우트로 대박을 터뜨렸다고 여기고 있는 시카고컵스는 아예 1년에 한명씩 뽑겠다고 나섰다. 99년 초에 스카우트한 루키가 불과 2년 만에 빅리그 문을 두드릴 만큼 성장한 것을 지켜본 컵스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 ‘한국 선수는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컵스가 한국 유망주들을 집중 스카우트하기로 한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내 아마추어 선수들의 몸값 폭등 탓이다. 90년대 중·후반만 해도 미국 고교, 대학의 톱클라스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0만달러 안팎으로 한국에서 스카우트한 선수들에게 지불하는 계약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미국 선수들의 몸값은 300만달러를 쉽게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콜로라도 로키스는 투수가 아닌 야수에게 기록적인 530만달러를 계약금으로 준 바 있다. 즉, 현재 한국 선수들에게 형성되는 100만달러대의 몸값은 사실상 중간급에 불과한 셈이다. 한국인 선수 싹쓸이로 유명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 담당 이사 레이 포이테빈트는 안병학의 입단식 당시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체격조건도 보고, 공 구속도 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환경이다. 나는 이 점을 가장 중시한다.” 일본인 아내를 두었을 정도로 동양에 정통한 레이 포이테빈트는 한국 선수들이 왜 성공하는지, 그리고 중남미 선수와 어떤 점이 다른지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실제 메이저리그는 수천만달러 상당의 거액을 투자해 중남미 리틀리그를 양성하면서 ‘빅리그 보급소’를 운영해왔지만 성공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놀기 좋아하고 걸핏하면 마약과 폭력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게 대부분의 남미 선수들이다. 한국선수는 20여명이 진출한 가운데 박찬호,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최희섭 등이 성공궤도에 올라 있으니 확률싸움으로도 이만하면 엄청난 성공인 것이다. 조상 대대로 ‘개척정신’을 타고난 이들 덕에 한국야구는 거꾸로 그 씨가 말라가고 있다. 한국야구인들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저인망식 싹쓸이에 적극 대응하기는커녕 방조하는 게 현실이다. 선수들의 미국행에 편승, 한몫 단단히 잡으려는 이들도 있으니 할말이 없다. 우선 고교-대학 지도자들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다. 도리어 메이저리그 모 스카우트가 선수 A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거나 소문이라도 나면 국내 프로구단과의 경쟁으로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또, 지도자와 브로커가 선수 수출에 앞장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마야구판의 소문난 브로커 ㅂ씨는 전직 고교감독에, 심판까지 지냈던 이다. ‘서로 동업자와 선후배’라고 여기는 데 누가 이를 말리랴.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선 브로커들이라 할 수 없다. 야구 선후배 사이로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아마야구의 수장격인 대한야구협회 회장 직무대행을 맡게 된 고익동 실무부회장이 지난달 19일 정기대의원총회 뒤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약 3년간 현장에서 떠나 있었던 탓이라고 하지만 상황을 너무 모른 발언이다. 유망주 해외 유출을 야구 선후배들의 호구지책으로 눈감아버리기엔 한국야구는 사실상 너무 심각한 지경까지 와 있다. 급기야 메이저리그 LA다저스가 각 언론사에 트라이아웃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보내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일어나고 있다. 국내 아마추어 선수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자유계약 선수라는 게 미국 구단의 입장이다. “한국 아마추어 선수는 ‘자유계약’ 선수”
한국야구의 현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그 융성했던 90년대 중반 국내 프로구단끼리의 스카우트 경쟁은 사실상 사라진 지 오래다. 유망주 ‘표찰’만 달아도 벌써 메이저리그에서 낚아채기 때문에 국내 프로구단들은 아예 눈높이를 낮춰 스카우트를 실시한다. 또, 각 구단들은 스카우터를 계약직 사원으로 채용, 보수와 근무조건의 열악함을 그대로 방조한다. 스카우터는 3D업종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니, 야구단 내에서도 서로 보직을 맡지 않으려 하고, 근무기간 또한 채 몇년 안 되는 이도 많다. 이래서야 경쟁이 될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활개’가 가능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한-미 선수 계약협정(Korea-United States Player Contract Agreement)의 허술함 때문이다. 지난 83년 7월7일 당시 서종철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보위 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사이에 체결된 이후 단 한번도 개정·보완되지 않은 탓에 양국의 프로리그 상황이 훨씬 달라진 지금의 상황을 담기란 다소 무리인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 미-일 선수계약협정을 보완해가며 자국시장을 철저히 지켜나가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한-미 협정 1항과 4항에는 해당 국가 선수의 교섭·계약에 앞서 신분조회를 거쳐야함을 명시하고 있다. 협정 4항은 이렇다. ‘미국 구단이 한국프로야구선수와 교섭·계약을 희망하는 경우, 미국구단은 미국 커미셔너를 통해 한국 총재에게 해당 선수의 신분 및 가능성 여부를 조회하여야 한다.’ 이처럼 한-미 협정에는 ‘한국프로야구선수’라고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아마추어는 규정돼 있지 않아 악용될 소지를 애초부터 남겨 놓은 것이다. 반면 미-일 협정은 그 대상을 명확히 못박아 놓았다. 1항과 4항에는 각각 그 대상이 미국 또는 캐나다의 프로, 아마추어 선수(일본→미국으로 신분조회시), 일본의 프로, 아마추어 선수(미국→일본으로 신분조회시)로 돼 있어 아마추어 선수도 국가간 선수협정에 해당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일 협정이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개정된 것은 지난 99년 시즌이다. 97년 이라부(당시 롯데 마린스)의 미국 진출 파동 이후 임시로 시행했던 포스팅시스템(Posting System: 공개입찰제)을 문서에 명시한 게 주된 개정 골자였다. 개정된 미-일 협정은 6항부터 14항까지 포스팅시스템의 절차 및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계약 협정의 종료 180일 전에 미국 커미셔너와 일본 커미셔너가 협정 연장이나 변경에 관한 의견교환을 시작해야 한다’(17항)고 돼 있다. 급변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협정 개정이 이뤄져야함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협정은 또 ‘미국, 일본의 현재와 미래의 법적인 제한을 받는다’(15항)고 규정해 자국의 룰을 존중함과 동시에 돌발 변수가 발생할 때의 유권해석 또한 가능케 하고 있다. 현재 미-일 협정은 이치로, 신조 등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2년 동안의 가조인 기간을 거치며 연착륙했다.
협정 개정 없으면 미국의 싹쓸이 지속
한-미 협정의 개정은 90년대 중반 정대철 전 KBO 총재 재임시 개정 논의 시도가 있었고 KBO 또한 당시 초안까지 구성했으나 총재의 갑작스런 낙마로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역대 총재마다 협정 개정 의지를 다짐하고 있으나 번번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KBO는 “미국쪽에서 아마추어 선수를 포함하는 한-미 협정개정을 원치 않는다”며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미국 스카우트들의 지도자, 선수 접촉이라도 엄격하게 감시해야 할 텐데 팔짱만 끼고 있다. 일본에서는 난리나는 일이다.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사진/국내 야구 유망주들이 대거 미국무대에 진출하고 있다. 지난 2월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안병학.(연합)

사진/지난 97년 뉴욕 메츠에 입단한 서재응.
하지만 컵스가 한국 유망주들을 집중 스카우트하기로 한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내 아마추어 선수들의 몸값 폭등 탓이다. 90년대 중·후반만 해도 미국 고교, 대학의 톱클라스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0만달러 안팎으로 한국에서 스카우트한 선수들에게 지불하는 계약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미국 선수들의 몸값은 300만달러를 쉽게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콜로라도 로키스는 투수가 아닌 야수에게 기록적인 530만달러를 계약금으로 준 바 있다. 즉, 현재 한국 선수들에게 형성되는 100만달러대의 몸값은 사실상 중간급에 불과한 셈이다. 한국인 선수 싹쓸이로 유명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 담당 이사 레이 포이테빈트는 안병학의 입단식 당시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체격조건도 보고, 공 구속도 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환경이다. 나는 이 점을 가장 중시한다.” 일본인 아내를 두었을 정도로 동양에 정통한 레이 포이테빈트는 한국 선수들이 왜 성공하는지, 그리고 중남미 선수와 어떤 점이 다른지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실제 메이저리그는 수천만달러 상당의 거액을 투자해 중남미 리틀리그를 양성하면서 ‘빅리그 보급소’를 운영해왔지만 성공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놀기 좋아하고 걸핏하면 마약과 폭력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게 대부분의 남미 선수들이다. 한국선수는 20여명이 진출한 가운데 박찬호,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최희섭 등이 성공궤도에 올라 있으니 확률싸움으로도 이만하면 엄청난 성공인 것이다. 조상 대대로 ‘개척정신’을 타고난 이들 덕에 한국야구는 거꾸로 그 씨가 말라가고 있다. 한국야구인들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저인망식 싹쓸이에 적극 대응하기는커녕 방조하는 게 현실이다. 선수들의 미국행에 편승, 한몫 단단히 잡으려는 이들도 있으니 할말이 없다. 우선 고교-대학 지도자들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다. 도리어 메이저리그 모 스카우트가 선수 A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거나 소문이라도 나면 국내 프로구단과의 경쟁으로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또, 지도자와 브로커가 선수 수출에 앞장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마야구판의 소문난 브로커 ㅂ씨는 전직 고교감독에, 심판까지 지냈던 이다. ‘서로 동업자와 선후배’라고 여기는 데 누가 이를 말리랴.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선 브로커들이라 할 수 없다. 야구 선후배 사이로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아마야구의 수장격인 대한야구협회 회장 직무대행을 맡게 된 고익동 실무부회장이 지난달 19일 정기대의원총회 뒤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약 3년간 현장에서 떠나 있었던 탓이라고 하지만 상황을 너무 모른 발언이다. 유망주 해외 유출을 야구 선후배들의 호구지책으로 눈감아버리기엔 한국야구는 사실상 너무 심각한 지경까지 와 있다. 급기야 메이저리그 LA다저스가 각 언론사에 트라이아웃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보내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일어나고 있다. 국내 아마추어 선수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자유계약 선수라는 게 미국 구단의 입장이다. “한국 아마추어 선수는 ‘자유계약’ 선수”

사진/시카고 컵스 소속 구장서 스프링캠프에 돌입한 최희섭(왼쪽)과 권윤민.(연합)

사진/LA다저스에 입단한 정석.(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