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 모인 아프리카 40여 개국 조각 175점…‘원시주의’ ‘이색 애장품’ 선입견 버리고 ‘우주론적 세계관’ 읽어보자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현대 주류 예술이 대체로 답보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새로운 활력으로 떠오른 게 아프리카 예술이었다.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다양한 형식의 문화예술은 지구적 보편성을 띠고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았다. 라틴 문화가 미국 마이애미에, 동아시아 퓨전 문화가 영국 런던 등에 둥지를 틀고 주류 문화에 역동성을 가미했다면 아프리카 문화는 짐바브웨의 ‘웨야 아트’처럼 인간의 본성을 떠올리게 하며 지구적 감성을 자극했다. 현란한 색깔과 강렬한 무늬로 메마른 예술적 상상력에 영감을 던졌던 것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내면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프리카전이 잇따라 열리고 쇼나족의 조각품 등은 아트숍의 히트 상품 목록에 오르고 있다. 식민 종주국의 벼룩시장을 떠돌던 작품들
정말로 아프리카를 통해 문화적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를 체험한 사람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25년 동안 지낸 화가 김정자씨는 “아프리카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면 그 자체가 그림이다. 흑인이 야자나무 밑에 서 있기만 해도 작품이 된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이미지의 축제를 가슴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이를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풍경을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아프리카인들은 색조의 조화를 표현하는 감각이 탁월해 하늘과 바다, 나무만으로도 색의 황홀경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색깔은 참으로 독특하다. 어떤 색이든 아프리카의 땅에선 밝게 비친다. 심지어 검은색마저도 밝게 느껴진다. 특유의 검은색 피부에 배인 아름다운 무늬옷은 마치 초록잎에 핑크색 꽃을 숨기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피카소나 마티스가 아프리카 색에서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발견했으리라. 그런 흐름은 아프리카 현대미술에 오롯이 담겨 있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아프리카 미술: 인간을 묻다’전에 소개된 아프리카 현대미술 작품은 “지금 피카소가 그림을 그린다면 이런 게 아니었을까”라는 허망한 상상에 빠지게 한다. 화려한 색채와 안정된 구도가 피카소의 것을 넘어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아프리카의 오래된 회화 작품은 현실에서 만나기 어렵다. 아프리카의 부족들은 종족의 역사의식을 높이는 데 문자 대신 그림이나 조각을 이용했다. 하지만 회화 재료가 마땅치 않은 환경에서 작품의 생명력은 짧을 수밖에 없었다. 일찍 자취를 감추는 일상 소모품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에서야 본격적인 현대 회화 작가들이 등장했다. 콩고 킨샤사대학에서 회화를 가르치는 칸킨다를 비롯해 무칼라이, 물람바 같은 화가들에 의해서였다. 인간의 심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이들의 작품은 우리가 떠올리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심연에 다가서도록 한다.
이렇게 아프리카의 회화가 잠재된 열정으로 꽃을 피우는 데 견줘 일상의 때가 묻은 조각품들의 운명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우리가 갤러리나 아트숍 등지에서 만나는 아프리카 조각품들은 식민지 종주국의 ‘벼룩시장’을 떠돌다 주인을 만난 운수 좋은 작품들이다. 돌을 재료로 삼은 쇼나 조각만 해도 영국의 미술평론가 프랭크 매퀸이 1950년대에 유럽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열기 전까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국내에는 지난 2001년 갤러리 ‘터치 아프리카’ 정해종 대표가 현지에서 수집한 작품을 전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물론 작품성을 평가받기보다는 ‘이색 애장품’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이런 가운데 아프리카 40여 개국의 조각 175점이 ‘아프리카 미술’전에 소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작품들은 갤러리 ‘아프리카로’ 정해광 대표가 유럽 벼룩시장과 아프리카 현지 등에서 수집한 500여 작품 가운데 일부다. 1980년대 후반 스페인 마드리드국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정 대표는 벼룩시장에서 만난 아프리카 조각품에 반해 지금까지 15회에 걸쳐 아프리카 중서부를 방문해 조각과 회화 등을 모았다. 카메룬 바문족의 잔 조각, 가봉 암베테족의 목각인형, 말리 도곤족의 창문 조각, 말리 밤바라족의 바오바브나무를 닮은 조각 등은 아프리카의 일상에 스민 예술성을 살포시 드러낸다.
‘수집’으로 약탈을 하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예술품이 그렇듯이 벼룩시장에서 ‘건진’ 정씨의 수집품들에는 뒤늦게 진가를 드러낸 작품도 수두룩하다. 19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룬 바문족의 잔 조각만 해도 꼬리가 달린 기교한 인간 형상이 인상적이다. 한 벼룩시장에서 3개월 동안이나 진열됐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했던 작품으로, 스페인에서 발행하는 대형 백과사전 <에스파사 칼페>(Espasa-Calpe)에 수록될 정도로 예술성을 지녔다. 게다가 생명체의 진화설에 바탕한 유기체적 세계관을 표면에 새기기도 했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라는 시간의 길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그동안 아프리카의 예술품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일상용품을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찬사에도 ‘원시주의’이라는 선입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여기에는 아프리카를 낮춰보는 서구의 잣대가 깊숙이 개입돼 있는 게 정씨의 판단이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를 떠올릴 때 미개한 대륙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면 조각 작품 하나하나를 새롭게 볼 수 있다. 동양의 대동사상과 통하는 우주론적 세계관이 담겨 있다. 조각 작품에 드러난 인간만 이해해도 상징적 의미를 통해 아프리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을 떠올리며 아프리카를 주목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뭔가’가 아프리카에 있기 때문이다. 기아와 내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그리고 남녀가 서로 동행하는 존재로 표현된 아프리카 조각품들은 인간이라는 이데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머리가 길쭉한 가나 판티족의 조각은 신 혹은 과거의 시간에 다가서려는 마음이 새겨져 있고, 남편과 두 부인이 어깨를 겯고 손을 맞잡은 아샨티족 빗 조각은 공동체를 유지해야 하는 숙명을 읽게 한다. ‘미개사회’라는 선입견에 가려진 아프리카의 진실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프리카 예술 작품은 지극히 인간적인 표정으로 다가온다. 그런 표정을 우리에게 전하는 정씨의 맘은 편치만은 않다. ‘수집’이라는 이름으로 ‘약탈’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운 탓이다. 문화방송 방송을 계기로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 환수 모금운동이 벌어진 것을 보며 정씨는 반환의 뜻을 더욱 굳혔다. 지금은 아프리카를 알리는 데 예술품을 활용할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콩고와 가봉, 카메룬 등의 나라가 정치적으로 안정된다면 작품을 기증하려고 한다. 그때는 인도 정부가 후원하는 인도 미술전처럼 아프리카 미술품전을 열 수도 있으리라.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현대 주류 예술이 대체로 답보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새로운 활력으로 떠오른 게 아프리카 예술이었다.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다양한 형식의 문화예술은 지구적 보편성을 띠고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았다. 라틴 문화가 미국 마이애미에, 동아시아 퓨전 문화가 영국 런던 등에 둥지를 틀고 주류 문화에 역동성을 가미했다면 아프리카 문화는 짐바브웨의 ‘웨야 아트’처럼 인간의 본성을 떠올리게 하며 지구적 감성을 자극했다. 현란한 색깔과 강렬한 무늬로 메마른 예술적 상상력에 영감을 던졌던 것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내면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프리카전이 잇따라 열리고 쇼나족의 조각품 등은 아트숍의 히트 상품 목록에 오르고 있다. 식민 종주국의 벼룩시장을 떠돌던 작품들
정말로 아프리카를 통해 문화적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를 체험한 사람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25년 동안 지낸 화가 김정자씨는 “아프리카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면 그 자체가 그림이다. 흑인이 야자나무 밑에 서 있기만 해도 작품이 된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아프리카 조각품들은 인간과 신, 자연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정해광 대표(맨 오른쪽)가 관람객들에게 말리 밤바라족의 조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아와 내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원시적 풍경이 아프리카의 전부는 아니다. 아프리카인의 세계관을 표현한 조각과 현대 회화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