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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출판] 천황을 욕망하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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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9 00:00 수정 : 2008-09-1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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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과의 인터뷰 <21세기 천황제와 일본>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 몰려온 근대화와 침략전쟁의 소용돌이는 그 중심에 천황제라는 에너지원을 장착하고 있었다. 최소한 내셔널리즘이라는 세균에 감염되지 않은 학자라면, 천황제가 군국주의라는 불지옥 속으로 일본을 몰아갔다는 것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의 천황제이다. 패전과 전후 민주화의 과정에서도 이른바 ‘상징천황제’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은 천황제가 90년대 이후 우경화의 한길로 치닫고 있는 일본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것은 동아시아 시민들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21세기 천황제와 일본>(박진우 편저, 논형 엮음)은 천황제에 대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과의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한국에도 꽤 알려진 이 ‘소수파’ 지식인들은 각자의 이론적 맥락에서 천황제의 역사를 성찰하고, ‘21세기의 천황제’를 진단한다. 우리는 특히 21세기 천황제와 일본 우경화에 대한 의견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80년대 일본 페미니즘의 기수라고 불렸던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천황에게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이 내셔널리즘의 담당자가 되고 있는 사태를 지적한다. 이런 ‘천황 없는 내셔널리즘’, 천황을 대신해 국민 통합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대중정치가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다.

야스마루 요시오 교수는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사회 전반의 보수화가 진행되는 70년대를 일본 사회의 한 전환점으로 본다. 이 시기부터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는데, 그것은 반드시 천황이 중심이 되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미국의 세계 정책과 관련돼 있으며 앞으로 더욱 교묘하게 조직돼갈 것이다.

이에 반해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소프트한 황실의 이미지와 상관없이,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스트는 천황, 야스쿠니, 기미가요 등 전전에 만들어낸 내셔널리즘의 상징을 계속 재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천황 없는 내셔널리즘보다는 천황의 재활용이 문제라는 것이다.

고모리 요이치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된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현재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하고 싶어하는 미국과의 관계, 즉 미-일 집단안보 체제와 관련돼 있다고 생각한다. 자위대가 해외로 파병되는 상황에서 고이즈미의 참배는 천황을 대신한 일종의 연기다. 총리가 병사의 죽음을 국가를 위한 죽음으로 위치지우는 ‘국가신도’를 연출한 것이다.

윤건차 교수가 “일본에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일본. 이 상황은 천황제를 바탕으로 한 일본의 ‘오래된’ 내셔널리즘과 연속적이기도 하고 불연속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천황의 주술이 지속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여기에 동아시아의 위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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