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아토피 치료제가 보이는가

622
등록 : 2006-08-08 00:00 수정 :

크게 작게

최근 질병 치료를 위해 단백질 간 네트워크 판독에 안간힘 쓰는 과학자들… 단백질 전달체 이용한 치료법이 자가면역질환 등에 놀라운 가능성 예고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프리랜서 출판기획자 정영주(34)씨는 10여 년 동안 아토피 피부염을 달고 살았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은 정씨에게 피맺히는 아픔을 안겨주기 일쑤였다. 긁어서 생긴 흉한 피부로 직장에 출근할 수 없어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으로 전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양·한방을 넘나드는 병원 쇼핑도 아토피를 잠재우지 못했다. 병원에 다닐수록 아토피는 치료해서 완치되는 질병이 아니라 꾸준한 관리로 증상을 완화하는 게 최선의 치료라는 말을 실감해야 했다. 아토피를 관리하려면 자연 치유력을 높여야 한다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정씨가 아토피안 대열에서 탈출할 비법은 없을까.

단일클론항체도 세포 안으로는 못 들어가


사실 아토피를 비롯한 천식,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의 자가면역 질환을 다스리는 방법은 이론적으로 간단하다.

“생명공학 차세대 치료제를 개발하라.” 연세대 이상규 교수(오른쪽)가 연구원과 함께 단백질 분석 자료를 살피고 있다.

체내의 면역신호를 관장하는 T세포가 지나치게 활성화돼 자신의 장기나 세포를 외부의 물질로 오인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 T세포는 인체의 면역 시스템에서 뇌와 같은 구실을 한다.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T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면역 억제제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예컨대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로 쓰이는 화학 면역 억제제만 해도 활성화된 T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세포와도 무차별적으로 결합해 부작용을 유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세포와 조직에 있는 단백질 간의 네트워크를 판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간의 단백질 목록을 작성하고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밝혀내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좋은 약물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단백질 연구는 게놈보다 훨씬 복잡하다. DNA의 ‘암호문자’는 화학물질인 아데닌(A), 시토신(C), 구아닌(G), 티민(T) 네 가지로 구성된 데 견줘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불리는 20개의 기본 단위로 이뤄져 있다. 특정 단백질을 구성하는 데 어떤 아미노산이 필요한가는 유전자가 결정한다. 그런데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알고 있을지라도 기능과 상호작용을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다.

일반 세포는 수십만 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을 만든다. 이 단백질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실체가 파악되지 않았다. 문제는 인체 세포와 조직에서 만들어지는 유형이 매우 복잡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췌장만 해도 뇌보다 훨씬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고, 알코올이 흡수됐을 때 생성되는 단백질 유형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나마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간 단백질 성분을 분석하는 장비가 있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동차 산업의 조립 라인을 본뜬 단백질 분석 시스템은 세포 배양 같은 반복 작업을 자동화해 실험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다양한 세포의 활성을 유도하는 단백질의 협력 활동을 살필 수 있다.

이렇게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첨단 장비로 인체의 단백질을 분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질병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에 걸린 환자의 세포를 분석해 정상세포에는 나타나지 않고 암세포에만 있는 단백질 목록을 작성한다면 개선된 진단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치료에서도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각종 질환에 관련된 단백질을 찾아내 인체에 주입하면 질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이미 거대한 시장을 형성한 ‘단일클론 항체’(monoclonal antibody)만 해도 치료물질을 장착한 상태에서 암세포에 치명적인 폭격을 가해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현재 20여 개 제품이 출시된 단일클론 항체 세계 시장은 200억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이 시장은 해마다 급성장해 2010년 무렵에는 3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단백질의약연구센터 홍효정 박사팀이 대장암과 난소암 등의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단백질에 맞서는 ‘인간화항체’를 개발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홍 박사팀이 만든 인간화항체는 항원과 결합하는 부분에 생쥐 항체의 일부분을 이식하는 기존의 방법과 달리 항원에 직접 결합하는 특정 아미노산 잔기를 인간 항체에 이식하는 것으로 인체 투여 때 면역반응을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단일클론 항체를 이용한 단백질 치료제가 요격 미사일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세포의 기능에 관련된 통신 메커니즘을 조절하는 데 그친다. 흔히 세포 안의 단백질은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들 단백질은 정교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특정 자리에서 스스로 구실을 한다. 때로는 세포 안의 특정 부위에 있는 다중 복합체가 신호를 조절하기도 한다. 이런 세포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조절하려면 단백질 전달체로 세포 속에 파고들어 가는 것처럼 특별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정씨처럼 자가면역 질환 환자들은 단백질 치료제를 이용할 수 없을까. 지금으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면역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약물 개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이상규 교수팀이 개발하는 세포 내 신호전달 조절 단백질 치료제를 이용하면 된다. 이 교수팀은 세계 최초로 사람의 세포 내 전사단백질에서 단백질이나 유전자 등의 물질을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단백질 전달체’(PTD·Protein Transduction Domain)를 찾아냈다. 이 단백질 전달체는 세포 투과력과 조직 침투력이 좋아 눈이나 기도, 피부 등을 통해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

심장이나 뇌질환에도 응용 가능

오래전부터 단백질 전달체를 이용한 치료법은 놀라운 가능성을 예고했다. 단일클론 항체나 인터페론, EPO(단백질 생산 의약품 원료) 등과 달리 세포 속에 들어가 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질병은 나쁜 단백질들이 서로 결합할 때 생긴다.

“자가면역 치료제 시장 30조원을 잡아라.” 한 연구원이 무균배양대에서 세포를 키우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때 단백질 전달체에 실린 약품이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 사이의 관계를 가로막거나 제거해 병인을 제거한다. 예컨대 아토피 피부염이라면 단백질 전달체에 인체 면역세포를 관장하는 T세포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단백질을 넣어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다. 만일 천식이라면 단백질 전달체를 스프레이 형태로 기도에 뿌리면 된다.

이런 단백질 전달체는 신약의 효능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단백질 치료제나 DNA, 화학약품 등을 연고제나 스프레이, 주사제 등 다양한 형태로 질환 부위 세포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러스 유래 단백질 전달체보다 침투력이 뛰어나고 특이성이 높아 심장질환이나 뇌질환 등에도 응용할 수 있다. 단백질 사이에 숨은 질서를 찾아내는 ‘비교 상호작용체학’(Comparative interactomics)의 놀라운 결실이라 하겠다. 앞으로 세포 사이의 통신 네트워크가 완벽하게 규명된다면 단백질 전달체가 닿지 않는 질병 부위는 거의 없게 될 것이다. 아토피 피부염에도 증상 완화제가 아닌 치료제가 쓰일 날이 다가오고 있다.


원천기술로 시장에 진입한다

아토피·천식·류머티즘성 관절염 등 치료제도 개발 중

인터뷰/단백질 전달체 개발한 이상규 교수

세계 최초의 인체 유래 단백질 전달체를 개발한 연세대 생명공학과 이상규 교수의 실험실 연구원들은 세포를 키우고 분리하는 게 주요 일과다. 세포 표면에 원하는 단백질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마다 긴장이 감돌기도 한다. 질병이 단백질의 이상 작동에서 비롯되는 만큼 단백질의 비밀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 실험실에서는 질병 모델 동물의 단백질을 박테리아 재조합 단백질로 대신하면서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단백질을 세포 안에 넣는 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한마디로 질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개발된 화학약품은 세포 안에 들어가지 못해 여러 부작용을 일으킨다. 단일클론 항체도 세포 안에 들어가지 못해 질병 특이성이 떨어진다. 우리는 인체 유래의 물질전달 펩타이드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 질환에 관련된 단백질을 대신하도록 했다.

신약 물질이 없다면 단백질 전달체는 쓸모가 없지 않은가.

= 단백질 전달체는 단백질 신약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실을 한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의 경우 면역억제 효과가 있는 단백질을 찾아낸 뒤 전달체에 결합해 인체에 적용될 것이다. 다양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해 단백질 전달체에 결합하면 된다. 단백질이나 DNA를 자유롭게 세포 안에 전달하는 기술을 보유한 것이다.

현재 단일클론 항체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 단일클론 항체가 유망한 신약임에는 틀림없다. 국내에서도 유망한 인간화항체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미 수많은 단일클론 항체가 개발되면서 거대해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다. 이에 견줘 세포 내 신호전달 조절 단백질 신약은 우리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로 기존 시장에 진입하는 데 유리할 것으로 본다.

현재 개발된 단백질 전달체를 이용한 신약은 있는가.

= 자가면역 질환에 관련된 치료제를 개발해 전임상을 진행 중이다. T세포 내부에서 활성화를 억제해 아토피와 천식, 류머티즘성 관절염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약물이다. 단백질 전달체를 이용한 단백질 신약으로 질환 특이성이 매우 높다. 바이오 신약개발 전문기업 포휴먼텍이 신약 개발을 주도하며 단백질 전달체의 국제 특허를 출원 중에 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