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그 ‘결정’은 결정적이었다

347
등록 : 2001-02-21 00:00 수정 :

크게 작게

결정을 통한 거대기업들의 성공사례, 〈75가지 위대한 결정〉과 〈위대한 결정들〉

일본의 혼다가 아직 거대기업이 되기 전인 1959년의 일이다. 혼다는 미국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에 진출했지만 이내 미국지사를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미국의 고급 대형 모터사이클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혼다의 모델을 값싼 모방품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이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혼다가 내민 350㏄ 대형 모터사이클이 아니라 혼다 영업사원들이 업무용으로 타고 다니던 50㏄ 소형 모터사이클에 관심을 가졌다. 그 사실을 보고받은 혼다 본사는 소형 모터사이클로 제품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오랜 세월 준비해온 전략을 스스로 포기하고 태평양 건너 미국시장에서 직접 뛴 영업사원들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과감한 결단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혼다는 74년까지 미국시장에서 1천만대가 넘는 소형 모터사이클을 팔았다.

혼다와 코카콜라가 주는 교훈

사진/코카콜라는 2차대전 당시 미군에 단돈 5센트로 콜라를 팔기로 결정해 미국의 ‘국민음료’자리를 굳혔다.(SYGMA)
1985년, 코카콜라사는 회사 역사상 가장 큰 위기상황을 맞았다. 시장점유율에서 2위인 펩시콜라와의 격차는 불과 5% 미만으로 좁혀졌고, 펩시콜라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내놓은 ‘뉴코크’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았다. 훗날 경영학자들에게 이 신제품의 출시는 20세기 마케팅사상 최고의 실책이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였다. 90일 뒤 코카콜라는 새로운 전략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원래 코카콜라 맛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뒤 코카콜라는 두번 다시 콜라 제조법을 바꾸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코카콜라가 신제품으로 바꾼 본래 결정에 맹목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석달 만에 상품을 되돌리기로 한 결정 자체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최선의 의사결정이었다.


혼다와 코카콜라의 사례는 기업경영에서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다. 결정의 순간에 경영자들은 기로에 선다. 경영자들이 내리는 최후의 결정은 제품의 성패를 넘어 기업의 존망을 좌우한다. 혼다는 미국 지사 직원들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소환하지 않고 눈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이 지금 세계 최고수준의 자동차업체 혼다를 있게 만든 결정이었다. 반면 코카콜라의 원래 제조법 상복귀 결정 역시 세계 최대의 음료업체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어느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뛰어난 제품을 내놓아 운좋게 시장을 석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제품이란 결과물은 그 회사 전체의 역량을 모으는 경영의 산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제품을 개발한 연구진이 우연히 그 제품을 개발했다고 해도 그 모든 과정에는 경영이란 고도의 메커니즘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와, 개발된 제품의 상품화 선택 등 모든 것이 경영의 산물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는 바로 결정이란 중요한 순간이 등장한다. 그래서 현대 경영학에서는 의사결정이 경영의 핵심이고, 경영자는 사안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경영자들은 엄청난 연봉을 받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경영자의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분석한 책이 최근 동시에 소개됐다. 두 책 모두 탁월한 결정으로 기업의 운명을 바꾼 사례중심으로 경영을 분석하는 책들이다. 영국의 기업경영 전문저술가인 스튜어트 크레이너의 〈75가지 위대한 결정〉(송일 옮김/ 더난출판사(02-2236-2341)/ 1만5천원)과 톰 캐논의 〈위대한 결정들〉(은석준 옮김/ 명솔출판(02-783-1907)/ 1만2천원)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주제에 거의 비슷한 소재를 담고 있다. 세계적인 거대기업들이 어떤 결정을 통해 성공을 거뒀는지를 다루다보니 예를 드는 기업도 거의 일치한다.

소설같은 기업들의 흥망기

사진/빌 게이츠는 운영체계에 사운을 걸기로 결정해 마이크로소프트 시대를 열었다.(SYGMA)
이들 두 책이 공통적으로 꼽고 있는 예시 기업은 콘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자동차 대량생산체제를 시작한 포드자동차, 거대한 문어발식 운영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위크맨으로 휴대용 카세트 혁명을 연 소니, 고급면도기 시장을 석권한 질레트, 세계 최대의 음료회사인 코카콜라 등이다. 서로 달리 고른 기업들 역시 모두 현재 세계경제계를 주름잡는 거대회사들이 망라돼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의 성공을 서술하는 방식은 다소 다르다. 〈75가지…〉가 최대한 많은 사례를 통해 ‘결정’과정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경영학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덧붙이는 데 비해, 〈위대한…〉은 이보다 적은 스무개의 기업만을 골라 좀더 세밀하게 전후과정을 분석하고 배경을 설명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거의 비슷한 몇 가지의 주제를 정하고 거기 해당하는 기업들의 특징을 분석하는 점은 두 책 모두 큰 차이가 없다.

가령 보잉747기종으로 대형여객기 시장을 선점한 보잉사와 아스피린이란 신약 하나를 100년 넘게 팔아온 바이엘 등은 한곳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해 성공한 사례들로 등장한다. 반면 운동선수들이 신는 특수한 신발을 경기장 밖으로 가지고 나와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개조해 아디다스를 꺾은 나이키, 컴퓨터 운영체계의 표준화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해 세계시장을 석권한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새로운 산업이나 마케팅 방법을 개발해 성공한 기업들로 분류된다. 또다른 기준은 성장의 기회를 적절히 포착해 성공한 기업들이다. 처음으로 소비자들에게 컴퓨터를 직접 판매하는 유통방식을 도입한 델컴퓨터나 판촉물로 끼워주던 풍선껌이 제품보다 더 인기를 끌자 주력상품을 과감하게 바꿔 성공의 맥을 짚은 세계적 껌회사 리글리 등이 바로 그런 예다.

두 책 모두 경영에 관한 책이지만 전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사례중심으로 풍성한 일화를 담고 있어서 마치 기업들의 흥망기를 소설 읽듯 쉽게 읽을 수 있다. 산업화 이후 지금의 고도자본주의를 정착시킨 주역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지난 세기 세계경제사를 저절로 파악하는 부수효과도 있다. 세계 경제를 분야별로 좌지우지하는 거대메이저들이 거의 망라돼 있기 때문에 이들이 어떻게 성공적인 결정을 통해 성장했는지를 읽다보면 저절로 해당 산업분야가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방식으로 시장이 운영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최악의 결정 21가지

사진/초기 ‘여성용 담배’로 나왔던 말보로 담배를 남성용 담배로 이미지를 바꾼 전략으로 대성공을 거뒀다.(SYGMA)
물론 지은이가 다르다보니 이들이 예로 드는 기업 이외의 뛰어난 경영측면의 결정사례들을 비교해보는 것도 책을 읽는 데 재미를 더해준다. 〈75가지…〉는 팬들에게 콘서트를 녹화하도록 허용해 저절로 홍보효과를 얻어 재미를 본 록그룹 그레이트풀 데드와 중세시대 수도회를 재조직해 수도회의 재정을 탄탄히 했던 성베르나르두스와 같은 역사 인물, 상업적 이익을 휘해 한자동맹을 조직했던 북부 독일의 중세도시 등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반면 〈위대한…〉은 꿈을 현실로 이루려는 도전 끝에 주변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당시로선 과감하기 짝이 없었던 디즈니랜드를 세운 월트 디즈니와 공평한 이익배분으로 현대적 소비자 협동조합의 시초가 된 영국의 로치데일 협동조합 등을 곁들였다.

그렇다면 이처럼 탁월한 결정과 대비되는 기업사 최악의 결정들은 어떤 것들일까? 〈75가지…〉의 지은이 크레이너는 책의 말미에 반면교사를 위해 실패한 결정 스물한 가지를 소개한다. 소프트웨어 표준화의 흐름을 예측하지 못하고 독자적인 시스템만 고집했던 애플사, 생산시스템을 인간보다 중요하게 여겨 노동의 인간적 측면을 간과한 경영학자 테일러, 자기편을 찾지 못해 품질이 더 우수한 베타방식을 개발하고도 마쓰시타의 VHS방식에 비디오 주도권을 빼앗긴 소니, 무리하게 금융기관으로 변신하려다 이 결정을 백지화하고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 40억달러나 투입해야만 했던 아메리칸익스프레스사의 결정 등이 그가 꼽은 대표적 ‘실패한 결정’들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