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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순수한 껌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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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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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인간이 인간다워진것은 잘 씹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일본 교토대학 오시마 기요시 박사의 이색 주장이다. 그는 뇌 연구가이지만 씹는 것, 즉 저작의 중요성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약 100만 년 전부터 인간은 음식을 꼭꼭 씹어먹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에 뇌가 비약적으로 발달하게 됐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사의 이 주장 앞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비롯한 일반 가공식품은 쥐구멍을 찾아야 한다. 과잉으로 친절을 베푸는 가공기술이 ‘씹는 불편’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는 점. 뭇 가공식품에 휩쓸릴세라 단아하게 혼자만의 아성을 지키고 있는 기호식품의 강자, 추잉껌만은 예외다. 오로지 씹는 즐거움이 효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추잉껌은 그래서 앞으로의 역할이 더 기대된다 하겠는데.


“추잉껌과 같은 식품은 주의해야 합니다. 1회 섭취량이 적다는 이유로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십상이지만 첨가물이 고농도로 사용되는 식품이지요. 민감한 아이의 경우 이런 식품을 취식하면 즉각 이상한 행동을 보일 수 있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벤 페인골드 박사가 저서에서 경고한 내용이다. 이 섬뜩한 발언의 중심에는 물론 화학물질이 있다.

페인골드 박사의 이 지적은 추잉껌을 알면 쉽게 이해된다. 껌의 뼈대라 할 수 있는 껌 베이스에 천연 물질이 사용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초산비닐수지, 폴리부텐, 폴리이소부틸렌, 에스테르검…. 대개가 중합반응에 의해 만들어진 화학물질들이다. ‘껌 베이스는 삼키는 게 아니니까.’ 흔히들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끊임없이 치아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이 물질들은 과연 온전할까? 타액 내 껌 베이스 미세 파편들의 농도를 분석한 자료는 있는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초산비닐 성분의 경우 마취 효과 또는 독성 등이 거론된다는 점이 귀살스럽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농도의 첨가물 식품’이란 말은 다음 원료들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맛을 내기 위한 향료, 눈을 즐겁게 하는 색소, 그리고 이것들이 잘 섞이게 하기 위한 유화제 등도 껌 스틱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질들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향료다. 껌에 사용하는 향료의 농도는 보통 1%를 넘는다. 일반식품의 경우 0.1% 전후에서 향이 사용된다는 점을 볼 때 껌은 ‘고향료 식품’이다. 주로 합성물질로 이루어진 향료는 다른 화학물질들과 함께 타액에 녹아 소화기관으로 흘러들어갈 것이 뻔하다. 섭취량이 적다고 마음 놓을 일이 아니라는 뜻이며, 페인골드 박사가 껌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이유다.

세상 만물에는 대체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추잉껌도 그 가운데 하나다. 턱뼈 운동을 통한 지능개발 식품의 상징인가 하면, 첨가물 덩어리라는 혐오식품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껌이 소개된 지 40여 년.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부정적 측면만 발달해온 느낌이다.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껌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문득 어릴 적 밀밭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채 여물지 않은 밀알을 입에 털어넣고 씹으면 제법 질긴 고무질 물질이 남는다. 추잉껌이 귀하던 시절, 그것을 껌이라고 씹었다. 통밀 글루텐 100%! 그야말로 천연 껌이다. 오늘날 껌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힌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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