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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여름 휴가땐 축구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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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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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사회학과 인문학이 담긴 세 권의 축구이야기 …<피버 피치> <축구 전쟁의 역사> <축구, 그 빛과 그림자>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요즘엔 축구를 보는 대신 축구를 읽었다. 닉 혼비의 <피버 피치>, 사이먼 쿠퍼의 <축구 전쟁의 역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 세 권의 축구책을 읽었다. <피버 피치>는 닉 혼비의 축구일기다. 혼비를 키운 것은 8할 아니 10할이 아스널이었다.

아스널은 때때로 우승을 차지해 닉 혼비에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던져주곤 한다. 2003~2004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아스널.

<피버 피치>에는 혼비가 1968년부터 1992년까지 잉글랜드 축구팀 FC아스널을 응원하면서 겪었던 25년 동안의 일희일비가 담겨 있다. 혼비는 아스널의 팬으로 살면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는 일과 비판적 시각 없이 온전히 같은 대상을 응원하고 그 소속감을 갖는 것의 가치”를 배웠다.


앗, 축구는 위험하구나!

이 구절을 읽으면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정이 내게는 무엇이 있었던가를 떠올렸다. 아마도 농구대잔치 시절, 삼성전자 농구팀이 그랬을 것이다. 라이벌 현대와 세 번을 하면 두 번은 지는 팀을 나는 사랑했다. 어느 팀의 팬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그런 종류의 게임에 몰입하면서 인생을 버텨왔다는 생각도 했다. 신문의 국제면을 보면서 브라질 노동자당의 집권을 열렬히 응원하거나 인터넷에서 이란의 청소년 동성애자가 처형당하는 사진을 보면서 주체하기 힘든 슬픔에 젖는 일도 내게는 비슷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정이 사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질끈 눈감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는지, 무의식의 도피는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여전히 ‘피버 피치’(Fever Pitch·열정의 축구장)에서 소년의 열정을 간직한 혼비는 이토록 단호하게 장담한다. “아스널은 지난 내 인생의 전부였으며 앞으로의 인생에도 아스널이 나의 전부일 것”이라고. 맙소사 저토록 순수하다니, 몰입의 능력을 잃어버린 아저씨는 영원한 사춘기 소년이 부러우면서 한심했다.

<피버 피치>에는 “가디언에 칼럼을 쓰는 사이먼 쿠퍼는 나보다 축구에 대해 많이 알겠지만”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바로 그 사이먼 쿠퍼가 ‘축구와 정치’를 주제로 22개국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쓴 책이 <축구 전쟁의 역사>다. <피버 피치>가 축구팬의 어쨌든 행복한 일기라면, <축구 전쟁의 역사>는 기자의 생생한 사회학적 보고서다. 1994년 영국에서 출간된 <축구 전쟁의 역사>의 원제는 다. 내게는 ‘적에 대항하는 축구’라는 의미뿐 아니라 ‘축구의 적에 대항하는 축구’라는 뜻으로도 읽혔다. 축구의 역사는 곧 축구를 악용하려는 적에 맞서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전쟁 초기에 크로아티아 민병대는 주로 축구팀 디나모 자그레브의 서포터 조직인 ‘Bad Blue Boys’(BBB)에서 충원됐고, 흉악한 전범인 세르비아 군사령관 아르칸도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의 팬클럽 회장이었다. 물론 사정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비슷했다. 이렇게 <축구 전쟁의 역사>는 해박한 배경지식과 폭넓은 인터뷰를 통해 ‘축구와 정치’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말한다. 축구가 저항의 도구로 사용된 사례들도 나오지만, 지배의 수단으로 악용된 경우가 너무 많아서 책을 읽다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앗, 축구가 이렇게 위험한 게임이라면 축구를 좋아하지 말아야겠다!

<축구 전쟁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각도 배웠다. 쿠퍼는 카탈루냐인들이 FC바르셀로나에 대한 열렬한 응원을 통해 격렬한 카탈루냐 민족주의를 드러내면서도, 정작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독립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스페인 축구팀이 우승하자 카탈루냐인들이 ‘뜻밖에’ 환호한 사례를 들어 이중의 심리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FC바르셀로나에 대한 애정에 카탈루냐인들의 독립 열망이 투영돼 있다는 상식을 뒤집는 논리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소하고 결정적인 지식도 주워듣게 된다. (책이 나왔던 90년대 중반 당시) 축구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는? 브라질, 잉글랜드가 아니다. 쿠퍼는 ‘알바니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알바니아의 살인적 실업률이 드높은 축구 관람률과 상관관계가 깊다는 암시도 덧붙인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쿠퍼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22개국을 다니면서 축구적으로 해박하고 인문학적으로 풍부하며 정치적으로 날카로운 <축구 전쟁의 역사>를 썼다는 것이다.

순수한 축구, 남아프리카공화국

<축구 전쟁의 역사>가 생생한 사회학 보고서라면, <축구, 그 빛과 그림자>는 탁월한 인문학 에세이다. 저자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라틴아메리카의 저명한 좌파 지식인이다. 한국인이라면 화해하기 어려웠을 ‘좌파와 축구’라는 대립항이 이 라틴아메리카 지식인 안에서는 평화롭게 공존한다.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 담긴 152개의 에세이는 한결같이 ‘예술’이다. 갈레아노에게 축구란 “금지된 자유를 향한 모험적 돌진”이며 “때로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를 잡아먹는 의외성의 예술”이다. “세 개의 통나무 사이에 홀로 서서 자신에 대한 총살이 집행되기만을 기다리는 순교자.” 골키퍼의 비극적인 운명을 이토록 ‘성스럽게’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현대 축구의 비극은 간결한 구호로 정리된다. “복종·속도·힘은 오케이, 그렇지만 멋진 기교는 금지. 이것이 세계화의 모델이 (현대 축구에) 강요하는 틀이다.” 물론 유머와 위트도 잃지 않는다. 1929년 터진 아르헨티나 대표선수 놀로의 놀라운 골을 묘사한 뒤에 “운동장에는 약 2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으나, 모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신들도 그곳에 있었다고 맹세하고 있다”고 마무리한다. 갈레아노와 쿠퍼의 공통된 견해가 있는데, 이제는 지구상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던, 승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화려한 드리블에 몰두하는 순수한 축구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괜스레 2010년 월드컵이 기다려진다. 올 여름 휴가에는 축구를 한번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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