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철환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의사는 생명을 직접 다루므로 어떤 직업보다 실력과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의사는 예과 과정과 본과 과정, 그리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면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 많은 가르침은 책으로는 교과서와 논문, 사람으로는 스승과 선배와 동료, 그리고 반복되는 실험과 임상실습과 회의(컨퍼런스)를 통해 나온다.
이렇게 의사들은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데는 애를 쓰지만 의사소통을 잘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소홀하다. 경험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의욕은 넘치는데 경험은 부족하다 보니 실수를 하게 된다. 치료는 잘됐는데 환자는 나빠지고 불만족하는 이상한 일도 벌어진다. “수술은 잘됐는데 환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라는 이해하기 힘든 일도 벌어진다. 임상 의사 중 평생 욕을 먹거나 멱살을 잡힌 경험이 없는 의사는 드물다.
한번은 초등학생이 열이 펄펄 나서 왔다. 아이는 급성편도선염으로 편도선에 고름이 잡힐 지경이었고 며칠 거의 먹지를 못했다. 5일 전부터 아팠는데 엄마, 아빠가 늦게 집에 들어와서 아픈 줄 몰랐다고 한다. 그때는 내가 30대 초반, 말조심 하는 법도 몰랐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말을 참는 법도 몰랐다. 나는 아이 엄마에게 “애가 이렇게 되도록 5일 동안 몰랐단 말이에요? 엄마 맞아요?”라고 말해버렸다. 순간 아이 엄마는 얼굴이 빨갛게 변해 밖으로 나가고 아이 아빠에게 내가 한 말을 전했다. 아이 아빠는 어떻게 의사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항의하고, 간호사는 그 상황을 무마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의 부모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두 부부는 어려운 살림을 꾸리느라 얼마나 힘들게 일했던가? 내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짐만 더 얹어준 격이었다.
동료 의사가 응급실에서 겪은 일이다. 소화제 중에 ‘메토클로프라마이드’(metoclopramide)라는 약이 있는데, 이 약은 효과는 좋지만 그것을 복용한 사람 중 일시적으로 전신 근육이 뒤틀리는 증상이 생겨 응급실에 오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내 동료 의사는 응급실에서 이 약의 부작용으로 온 환자를 진찰한 뒤 혼잣말로 “메토클로프라마이드 사이드네”라고 말했다(여기서 ‘사이드’는 ‘부작용’(side effect)의 줄임말로 이른바 콩글리시이다). 그리고 동료 의사가 돌아서서 처방전을 쓰고 있는데 응급실 간호사는 바로 그 메토클로프라마이드를 환자에게 주사하고 말았다. 간호사는 ‘사이드’라는 말을 ‘링거액 줄 옆으로 주사’(side infusion)의 준말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 간호사는 ‘메토클로프라마이드 사이드’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약을 주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의사의 혼잣말을 지시로 이해한 간호사도 신중하지 못했지만, 정식 의학 용어가 아닌 줄임말을 쓰는 병원 문화가 만든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다행히 이 환자는 곧 좋아졌지만 생명을 잃게 하는 말실수가 없으리란 법이 없다. 의사들은 이 사례를 들으면 배꼽을 잡고 웃지만, 아마 보통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의사는 정확한 의사소통으로 바른 치료와 함께 환자의 마음을 읽어내고 어루만지는 전문가여야 한다. 나의 말실수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준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
한번은 초등학생이 열이 펄펄 나서 왔다. 아이는 급성편도선염으로 편도선에 고름이 잡힐 지경이었고 며칠 거의 먹지를 못했다. 5일 전부터 아팠는데 엄마, 아빠가 늦게 집에 들어와서 아픈 줄 몰랐다고 한다. 그때는 내가 30대 초반, 말조심 하는 법도 몰랐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말을 참는 법도 몰랐다. 나는 아이 엄마에게 “애가 이렇게 되도록 5일 동안 몰랐단 말이에요? 엄마 맞아요?”라고 말해버렸다. 순간 아이 엄마는 얼굴이 빨갛게 변해 밖으로 나가고 아이 아빠에게 내가 한 말을 전했다. 아이 아빠는 어떻게 의사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항의하고, 간호사는 그 상황을 무마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의 부모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두 부부는 어려운 살림을 꾸리느라 얼마나 힘들게 일했던가? 내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짐만 더 얹어준 격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