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신분은 직접 진술보다 간접 약호로 표현되는 예가 많습니다. 의원급 고위 공직자는 양복 깃에 콩알처럼 부착한 금속 배지로 지위를 보장받습니다. 인지가 곤란한 배지의 작은 크기는 남부러울 게 없는 소수정예의 여유를 재현합니다. 배지는 그저 반짝이는 금빛으로 족합니다. 그 이상 노출은 ‘오버’로 간주됩니다. 왼팔의 완장도 착용자의 입장 대변용입니다.
배지보다 가독성이 높고 은근한 압박도 행사합니다. 주차단속, 군 지휘관 또는 홍위병을 표시하며 권력욕과도 연관 있습니다. 이마짝에 띠를 동여매는 경우도 볼까요. 이건 얼굴에 간판 올린 격이니 품위는 떨어지나 호소력은 배지나 완장에 비할 게 아닙니다. 머리띠는 궁지에 몰린 늙은 촌부와 가녀린 여사원을 죄다 ‘투사’로 통일시켜, 개체는 집단으로 인식됩니다. 절박함이 묻어 있는 머리띠와 이들의 일치된 목청은 위험신호입니다. 머리띠의 주장이 억지이거나 머리띠를 유도한 시대가 부조리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머리띠를 묶어야 하는 세상에 던져집니다.

(사진/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