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동영상과 연예인 소문의 짜깁기로 뒷북치는 방송국의 오락 프로그램들…‘공짜 아이템’ 얻는 대신 직접 콘텐츠 만든 <상상플러스> <스펀지>에서 배울만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할 일은 없고, 잠은 안 오고, 머리 쓰기는 싫고. 옛날엔 이럴 때 재핑(Zapping)을 했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흥미가 생기면 보고, 안 그러면 또 재핑하고. 하지만 요즘엔 재핑 대신 인터넷 서핑(Surfing)을 한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들어가서 아무 단어나 치면 검색 결과와 상관없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뜨고, 흥미 있는 검색어를 클릭하면 무수한 콘텐츠들이 쏟아진다. 이것들을 계속 클릭하며 여기저기 옮겨다니면 몇 시간은 그냥 간다.
역사적인 뒷북, 차인표 분노 4종 세트
하지만 진짜 놀이는 그때부터다. 서핑하다 보면 이미 몇 시간 전, 혹은 며칠 전에 봤던 콘텐츠를 기사로 내는 인터넷 매체가 반드시 있다. 딱히 취재랄 것도 없다. 그저 콘텐츠 내용과 네티즌 반응을 묶어 기사로 쓴 수준이다.
그때부터 그 기사에 네티즌의 ‘응징’이 뒤따른다. ‘둥둥둥’ ‘여러분 저 어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해봤어요’처럼 ‘뒷북’을 울린 기자를 놀리는 표현들이 리플로 주렁주렁 달린다.
네티즌이 만들고, 찾고, 심지어 놀기까지한 걸 그제야 기사로 내놓으니 조롱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그러나 인터넷 언론의 뒷북은 방송 오락프로그램의 뒷북보다는 그나마 낫다. 문화방송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검색대왕’은 무려 1년 전 인터넷에서 잠시 유행한 ‘차인표의 분노 4종 세트’를 버젓이 방영하는 역사적인 뒷북을 쳤다. 차인표가 1년 전 SBS <홍콩익스프레스>에 출연했을 당시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네티즌들을 웃긴 오버 연기 장면들이 편집돼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 동영상에 게스트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흉내내니, 한국 인터넷 보급률이 그렇게 낮았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또 SBS <신동엽의 있다 없다>는 사람들의 얼굴을 예쁘게 바꿔줄 수 있다며 이젠 기술이라 하기도 민망한 포토숍 사용법을 마치 대단한 신기술인 양 시연해 보였다. 연예인에 관한 소문들을 다루는 케이블 음악채널 KMTV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연예인 루머’ ‘성형 의혹’ 등 매회 자극적인 제목을 달지만, 그것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돌던 내용들의 짜깁기다. 직접 발굴한 연예인 성형 전 사진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 사람 성형입니다!”라고 대놓고 말하지도 못한다. 사진을 보며 눈을 어떻게 집고, 코를 어떻게 높였는지 조목조목 얘기해주는 네티즌들의 글이 훨씬 재밌다.
이런 뒷북은 제작진들이 인터넷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네티즌들이 더 재밌고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든 컨텐츠는 근본적으로 개인 작업을 통해 창조된 것이다. 인터넷은 그것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그만큼 창조자와 타인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도구다. 패러디 동영상이건 짧은 댓글이건 간에, 인터넷 검색의 재미는 검색 그 자체가 아니라 검색 결과가 가져다주는 수많은 창조물에 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은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대신 인터넷에서 가져온 신기한 사진 같은 것들을 시청자에게 ‘재방송’하며 오직 ‘인터넷’만을 내세운다. 이는 개인의 인터넷 서핑을 방송으로 옮겨온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인터넷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SBS <세상에 이런 일이>처럼 세상의 별난 것들을 보여주는 구실을 하겠지만, 국민 대부분이 인터넷을 하는 요즘 이런 프로그램을 신기해하며 볼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세상에 이런 일이>도 소재 발굴과 취재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공을 들이지 않는가.
<상상플러스>, 꼭짓점 댄스를 퍼뜨리다
인터넷의 효과는 텔레비전이 창조한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고, 피드백을 받는 ‘망’으로 이용할 때 극대화된다. 한국방송 <상상플러스>와 <스펀지>는 인터넷을 방송을 ‘날로 먹는’ 아이템 은행쯤으로 사용하는 대신 자신들의 콘텐츠를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퍼뜨릴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한때 <상상플러스>는 인터넷에서 발굴된 패러디나 연예인 닮은 사람 사진을 이용한 토크쇼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런 토크쇼는 오래갈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런 사진들이 대중의 흥미를 끌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네티즌들이 방송보다 더 빠르게 각종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주고받으면서 사진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노현정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올드 앤 뉴’는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가져오는 대신 반대로 프로그램이 창조한 콘텐츠를 네티즌에게 던져줬다. 10대, 혹은 기성세대가 서로 모를 법한 단어들을 게스트는 물론 네티즌을 상대로 문제로 출제하고, 네티즌들에게 그 단어에 대한 반응이나, 게스트에게 궁금한 질문을 받은 것이다.
<상상플러스>를 통해 순식간에 전국적인 유행을 불러일으킨 ‘꼭짓점 댄스’는 <상상플러스>와 인터넷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상상플러스>가 꼭짓점 댄스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던져주자 네티즌들은 마치 인터넷에서 색다른 콘텐츠를 발견한 것처럼 꼭짓점 댄스를 자연스레 인터넷에 퍼뜨렸고, 이런 빠른 반응에 언론도 꼭짓점 댄스를 다루기 시작했다. <스펀지>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의 지식검색 서비스에서 나온 문장을 문제로 출제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그 문장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참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과정에 있다. 제작진이 온갖 조사와 실험을 통해 문장을 증명하는 과정을 보면서 시청자는 문장의 내용에 더욱 궁금해하고, 그것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스펀지>의 관련 내용을 인터넷 검색 순위에 올린다. <스펀지>의 지식검색은 그 자체가 콘텐츠가 아니라 인터넷과 프로그램을 연결해주는 수단이다. 두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수많은 공짜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딴 세상’으로 취급하는 대신 그 자신이 직접 콘텐츠를 창조하고, 그것을 인터넷을 이용해 최대한 네티즌들에게 자연스레 퍼뜨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인터넷을 소개하는 대신 하나의 포털 사이트처럼 행동하면서 방송과 인터넷을 연결했고, 네티즌은 인터넷 콘텐츠를 이용하듯 두 프로그램을 즐겼다. 두 프로그램의 코너 중 가장 반응이 없는 것이 검색어 순위 코너라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다른 인터넷 프로그램처럼 인터넷 콘텐츠를 그저 전달할 때 프로그램의 재미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런 인터넷 프로그램의 성공과 실패는 인터넷 초창기의 수많은 벤처기업들을 연상시킨다. 많은 벤처기업들은 별다른 수익모델 없이 오직 ‘인터넷 기업’이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처럼 자신들을 포장했다. 그러나 그중 살아남은 것은 지식검색 서비스든, 사용하기 편한 미니홈피 서비스든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콘텐츠를 창조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네티즌에게 제공한 기업들이었다. 인터넷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곳일 뿐이고, 세상엔 공짜란 없다. 아직 방송만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놀이는 그때부터다. 서핑하다 보면 이미 몇 시간 전, 혹은 며칠 전에 봤던 콘텐츠를 기사로 내는 인터넷 매체가 반드시 있다. 딱히 취재랄 것도 없다. 그저 콘텐츠 내용과 네티즌 반응을 묶어 기사로 쓴 수준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검색대왕’은 인터넷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결국 소재 빈곤으로 막을 내렸다.(사진/ 문화방송)
<상상플러스>에서 시작된 꼭짓점 댄스(위)의 확산 과정과 <스펀지>의 운영 방식은 방송이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