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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출판] 방학은 소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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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0 00:00 수정 : 2008-09-1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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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절대 나오지 않는 청소년 소설 3권

여름방학이다. 할 일 많은 겨레의 청소년들에게 추천도서 목록을 들이미는 건 참 민망한 일이다. ‘방학용 추천도서’라는 게 실은 ‘재미없으니 피해가야 할 책’이라는 의미 아닌가. 그럼에도 최근 출간된 ‘청소년 소설’ 세 권을 소개하려 한다. 우선, 절대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 안심하시라. 그러나 귀여니식 연애소설이나 판타지소설보다는 두고두고 ‘씹는 맛’이 있다. 세 권 모두 외국소설인데, 청소년 걱정에 밤을 지새우는 대한민국에서 왜 좋은 청소년 소설들이 쏟아져나오지 않는지는 미스터리다.

소설들은 모두 ‘깨달음’과 성장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뭔가를 가르치고자 기를 쓰지는 않는다. <파도>(토드 스트라써 지음, 김재희 옮김, 이프 펴냄)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고등학교 역사 수업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각색한 소설이다. 고든고등학교의 인기 좋은 역사 교사 벤 로스는 나치즘과 유대인 학살에 관한 수업을 진행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왜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그 끔찍한 일들을 묵인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난감해한다. 역사서들을 들춰봐도 마땅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실험을 구상한다. ‘파도’라는 문양과 경례법을 만들고 모든 학생들에게 군대식의 규율에 복종하고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따르라고 주문한다.

학생들은 이상한 마법에 빠져든다. 벤 로스는 손짓 하나로 아이들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질문이 떨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답을 말한다. 아이들은 개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도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묘한 쾌감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윽고 ‘파도’라는 단체에 학생들이 속속 가입하게 되고, 단체에 반대하는 학생을 폭행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 소설은 파시즘의 메커니즘을 성찰하게 한다. 주제 자체는 교훈적이지만 긴장감 있는 내러티브와 빠른 상황 전개 때문에 한번 읽으면 좀처럼 손에서 놓기 어렵다.

<쑤우프, 엄마의 이름>(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낮은산 펴냄)은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와 폐쇄공포증을 앓고 있는 옆집 버니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는 하이디라는 소녀의 이야기다. 버니 아줌마는 신발끈을 매기도 힘들어하는 하이디의 엄마를 돌봐주고, 하이디에게 읽기와 쓰기도 가르쳤다. 하이디를 괴롭히는 질문은 “내 이름은 왜 하이디고 나는 어디서 왔을까”이다. 그건 엄마도 버니 아줌마도 가르쳐줄 수 없는 문제였다. 하이디는 늘 엄마가 중얼거리는 ‘쑤우프’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었다. 어느 날 엄마의 낡은 사진기에서 요양원 사진들을 발견한 하이디는 그곳을 찾아 미국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어린 소녀의 여행을 따라간다. 진실과, 그 진실에 따르는 위험, 내가 아는 자신과 내가 모르는 자신. 소설은 하이디의 시선으로 이런 문제들을 돌파해간다. 매우 슬픈 스토리지만, 한 번도 신파에 빠지지 않고, 천진난만한 유머도 깃들어 있다.

<사랑에 빠져본 적 있니?>(잉에 마이어 디트리히 지음, 염정용 옮김, 우리교육 펴냄)는 전형적인 청소년 연애소설이다. 착하고 명랑하고 순수한 여주인공과, 뭔가 불량하지만 상처를 가진 미남 소년이라는 순정만화적인 공식이 등장한다. 그러나 사랑을 처음 경험하는 소녀의 심리를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사랑의 불확실성, 순간성, 소통 불가능성과 맞닥뜨린 소녀는, 상처 입은 만큼 성장하게 된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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