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령〉 〈가면학원〉 〈하나코〉… 미국적 공포물과는 확연히 다른 일본 공포영화의 맛
어둡고 추한 외모의 타타리라는 소녀가 있다(타타리는 일본어로 ‘저주’라는 의미다). 학교 급우들은 모두 타타리를 따돌린다. 심지어는 가짜 연애편지를 보낸 뒤 가슴 설레는 그녀를 보며 몰래 킥킥댄다. 그런데 타타리에겐 신묘한 재주가 있다. 상대방에게 저주를 걸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왕따시킨 급우를 환각상태에 빠뜨리고, 자신을 학대한 교사에게 저주로 맞대응한다. 타타리 일기장엔 어떤 글이 적혀 있을까. 다소 의외다. 그저 “일기엔 오늘도 학교에서 행복했다고 쓰자”라고 적어놓은 것이다. 현실에 대한 부정이자 쓸쓸한 자기위안이다.
일본 공포물의 스타, 나카다 히데오
만화 〈학교괴담〉(원제는 <이상한 타타리>)은 만화가 이누키 가나코의 작품이며 일본에서 영화화한 적이 있다. <학교괴담>처럼 최근 국내엔 일의 공포영화 몇편이 개봉하고 있거나, 혹은 극장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미 1편이 상영된 <링> 시리즈의 후속편, <여우령>과 <가면학원>, 그리고 <하나코> 등의 영화가 그것이다. 한을 품은 누군가의 복수, 학교를 무대로 하는 판타지, 혹은 전통적인 색채를 간직하는 귀신의 등장이다. 이 작품들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뭉뚱그려 설명하자면,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공포영화 장르가 국내에 빠른 속도로 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공포물, 그 특징과 주요한 키워드로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난 중학생 당시부터 공포영화 마니아였다. <오멘>과 <서스페리아>, 그리고 <엑소시스트> 등의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다. 그 영화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영화 <링>을 만든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말이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에겐 <오멘> 등의 영화가 그를 감동시킨 작품이지만 일본영화는 나카다 감독에게 빚진 부분이 있다. 1980년대 이후 주춤하던 공포영화 장르를 주류문화로 상승시킨 당사자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기 때문이다. 국내판으로 만들어진 영화 <링>은 여러 면에서 전통적인 일본 공포영화의 핵심을 계승하고 있다. 일단, 머리를 풀어헤친 원혼의 등장이다. <링>에서 사다코의 원혼은 비디오 매체를 통해 급속히 전파된다.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머리를 늘어뜨리고 스멀스멀 힘없이 걸어다니는 그가, TV 스크린을 뚫고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스즈키 고지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링>은 1990년대 초반들어 <이블 데드 트랩>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명맥이 끊겼던 일본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화려하게 무덤으로부터 부활시켰다. 무엇보다 <링>은 일본식 공포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영화 판권구매에 혈안이 될 만한 이유가 있다. 별다른 특수효과 없이 미국적인 공포물과는 확연하게 다른 종류의 ‘서늘함’을 안겨주고 있으므로. 이제 할리우드 공포영화는 하향세에 접어든 것일까? <스크림> 시리즈 이후 주목할 만한 영화가 나오질 않는 것 같다. <스크림> 시리즈는 여러 소장르가 결합된 ‘잡탕식’ 공포물이라 할 만하다. 젊은 청춘스타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선 청춘영화로 보이며 공포물의 경향인 ‘스플래터’적인 특징, 다시 말해서 피가 튀고 잔인무도한 장면도 꽤 있다. 게다가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미국의 가족 문제와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비판 등 그리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영화에 스며들고 있다. <스크림> 시리즈는 피와 칼이 범람하고 신체적 손상을 하나의 유희과정으로 전락시키는 난도질영화의 최근 흐름을 대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정신이상자나 악마가 아니라, 학교 급우, 그리고 그의 가족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든다. 이렇듯 공포를 가볍게 즐기고 시각적 쾌락의 과정으로 삼는다는 것은 나름의 재미를 주긴 하지만 공포영화라는 장르에 ‘급제동’을 거는 부작용도 낳은 것으로 보인다. 관객이 팝콘을 먹으면서 키득거리며 관람할 수는 있지만, 기실 더이상 무서울 것 없는 공포영화의 시절이 도래한 셈이니까. 일본사회의 이면을 반영하는 것
“최근 일본 공포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는 모두 <링> 시리즈의 성공 덕이다. 걱정스런 것은 이런 현상이 하나의 딜레마라는 것이다.” 일본의 영화비평가들은 <링> 시리즈(이 시리즈 1편은 일본에서 1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의 성공을 반신반의하는 눈치다. 과연 그것에 버금가는 후속작이 나와주겠느냐는 것이다. 상업성 여부에 대한 의아심을 잠시 접어둔다고 하면, 일본영화에서 공포물은 최근 ‘호러 붐’이라 불릴 만큼 인기다.
일본 공포영화는 거칠게 요약하면, 몇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원작의 영화화, 괴담물의 현대적 변형, 그리고 근래 유행하는 심리공포물 등이다. <링> 시리즈와 <여우령>이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이며 아직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를 마지막 사례로 각기 언급할 수 있다. <하나코>와 <가면학원> 같은 학원 공포물은 <에코에코 아자라쿠> 등의 시리즈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서 일정 마니아층을 거느릴 정도로 인기높다. 학교가 비인격적이며 공포스런 공간이 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이므로. 최근 일본에서 공포영화가 다수 제작되는 것은 <링> 시리즈의 성공 덕이라 할 수 있지만, 전통 민담이나 괴담에서 소재를 끌어오는 기법은 이전에도 있었다. 단지, 눈에 띄는 성공작이었을 따름이다. 최근작 <사국> 등에서 알 수 있듯, 전통 괴담과 공포영화의 접목은 1950년대 이후 일본영화의 주된 흐름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기에 일본 공포물이 관객에게 인기리에 호출받는 장르가 된 이유는 뭘까. 일본 공포영화는 보는 이의 심리와 공포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곤 한다.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신지의 뇌까림이다. 가장 개인적인 공포의 핵을 건드리는 일본 공포물은 할리우드 공포영화처럼 잔혹하거나 혈흔이 낭자한 것에 비해 다소 얌전하지만, 소름끼친다. 일본사회의 집단무의식, 심리소설의 전통 등에서 일본 공포물의 근원을 발견하는 방법도 있다. “일본에서 호러물의 범람은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어느 평자의 해석은 이런 점에서 유용하다.
영화 <큐어>엔 이런 장면이 있다. 누군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건다. “니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 누군가 죽이고 싶지 않아? 죽여버려!”라고. 최면상태에 잠긴 사람은 그의 명령을 실제로 이행한다.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던 타인에 대한 적개심을 더이상 누르지 않고, 터뜨려버린다.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현대 도시인들은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고독감과 어딘가에 갇혀 있는 듯한 폐쇄감, 그리고 사회와 자신을 분리시켜버리고 싶은 충동이 허공을 맴돌고 있다”라고. 원혼이 살아 있는 이를 습격하고, 왕따당하던 학생이 친구에게 저주를 걸며, 무의식 상태의 누군가가 상대편 목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 일본 공포영화는 겉으로는 질서정연하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 치부에선 독한 악취를 풍기는, 일본사회의 이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장르일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그 점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김의찬/ 영화평론가

사진/일본 공포영화는 할리우드 공포물처럼 잔혹하거나 혈흔이 낭자한 것에 비해 다소 얌전하지만 소름이 끼친다.위〈여우령〉,아래 〈가면학원〉.
“난 중학생 당시부터 공포영화 마니아였다. <오멘>과 <서스페리아>, 그리고 <엑소시스트> 등의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다. 그 영화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영화 <링>을 만든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말이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에겐 <오멘> 등의 영화가 그를 감동시킨 작품이지만 일본영화는 나카다 감독에게 빚진 부분이 있다. 1980년대 이후 주춤하던 공포영화 장르를 주류문화로 상승시킨 당사자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기 때문이다. 국내판으로 만들어진 영화 <링>은 여러 면에서 전통적인 일본 공포영화의 핵심을 계승하고 있다. 일단, 머리를 풀어헤친 원혼의 등장이다. <링>에서 사다코의 원혼은 비디오 매체를 통해 급속히 전파된다.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머리를 늘어뜨리고 스멀스멀 힘없이 걸어다니는 그가, TV 스크린을 뚫고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스즈키 고지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링>은 1990년대 초반들어 <이블 데드 트랩>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명맥이 끊겼던 일본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화려하게 무덤으로부터 부활시켰다. 무엇보다 <링>은 일본식 공포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영화 판권구매에 혈안이 될 만한 이유가 있다. 별다른 특수효과 없이 미국적인 공포물과는 확연하게 다른 종류의 ‘서늘함’을 안겨주고 있으므로. 이제 할리우드 공포영화는 하향세에 접어든 것일까? <스크림> 시리즈 이후 주목할 만한 영화가 나오질 않는 것 같다. <스크림> 시리즈는 여러 소장르가 결합된 ‘잡탕식’ 공포물이라 할 만하다. 젊은 청춘스타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선 청춘영화로 보이며 공포물의 경향인 ‘스플래터’적인 특징, 다시 말해서 피가 튀고 잔인무도한 장면도 꽤 있다. 게다가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미국의 가족 문제와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비판 등 그리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영화에 스며들고 있다. <스크림> 시리즈는 피와 칼이 범람하고 신체적 손상을 하나의 유희과정으로 전락시키는 난도질영화의 최근 흐름을 대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정신이상자나 악마가 아니라, 학교 급우, 그리고 그의 가족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든다. 이렇듯 공포를 가볍게 즐기고 시각적 쾌락의 과정으로 삼는다는 것은 나름의 재미를 주긴 하지만 공포영화라는 장르에 ‘급제동’을 거는 부작용도 낳은 것으로 보인다. 관객이 팝콘을 먹으면서 키득거리며 관람할 수는 있지만, 기실 더이상 무서울 것 없는 공포영화의 시절이 도래한 셈이니까. 일본사회의 이면을 반영하는 것

사진/위〈하나코〉,아래〈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