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훈 전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
2005년 10월 어느 날, 평화가 찾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수단 다푸르 지역의 한 공립병원. 일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온다. 며칠 전 병원 내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가뜩이나 어수선하던 차라 또 무슨 사고라도 일어난 건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겹겹이 둘러싼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내민 한 뭉치의 옥수수 이파리.
난민촌 주변의 옥수수밭에서 주워온 거란다. 마른 이파리 뭉치 속에는 무명으로 탯줄이 묶이고 양수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은 신생아가 있었다. 태어난 지 이틀쯤 되었을까. 와글거리며 따라온 사람들의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들이 뜨겁다. TV도 신문도 없는 난민지 사람들에게 버려진 아이는 대단한 구경거리임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을 뒤로한 채, 아이를 처치실로 안고 들어왔다. 간단한 진찰 결과 아기는 약간의 탈수증이 있는 것 외에는 건강했다. 며칠 관찰할 요량으로 아이는 환자 아닌 환자가 되어 영양실조센터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튿날, 병원에 나가자마자 그 녀석부터 살펴보았다. 씩씩하게 살아남은 아이의 침상에 놓인 차트에는 ‘불법 아기’(illegal baby)라는 진단명이 붙어 있었다. 우습다기보다는 화가 치밀었다. 세상에 불법적인 생명이라니! 어쩌랴. 혼전임신과 출산이 범죄 행위로 간주되는 이슬람 사회에서 아이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불법 아기’라는 이름뿐인 듯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불법 아기’라는 진단명을 떼는 일이 고작이었다. 현지 출신의 동료 의사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제는 아기의 향후 거취가 걱정이었다. 경찰에서는 아이의 생모를 찾는 수사를 시작했고, 현지인 간호사 한 명은 아이를 입양시키고 싶어했다. 귀찮은 일을 피하려는 병원 쪽에서는 입양 절차를 무시하고 그 간호사에게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성화였다. 영양실조센터 책임자였던 내 입장은 참으로 난처했다. 아이의 미래와 생모의 처우, 아이를 원하는 간호사를 위해서도 입양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겠지만 적법한 절차를 무시할 순 없었다. 내심 경찰이 아이의 생모를 찾아내지 못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곳은 혼외정사가 금지돼 있고, 혼외정사를 한 여인은 형제나 친척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아무도 딴죽을 걸 수 없었다. 내 바람과는 달리. 열흘가량 지난 뒤 생모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남편을 전장에서 잃은 여인이라 했다. 아이 아빠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감옥으로 보내지고 꼬마 알리는 죽은 남편의 가족에게 맡겨졌다. 또다시 분노했다. 비단 그녀뿐이랴. 다푸르에서 전쟁에 희생당한 여인들은 부지기수다. ‘잰지위드’(다푸르 지역의 악명 높은 무장 강도단)에게 겁탈당한 여인,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얹혀살다가 사촌에게 당한 어린 소녀, 땔감을 줍다 군인들에게 당한 50대 여인, 몰래 임신중절 시술을 해달라고 조르는 익명의 여자들…. 당하고서도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그녀들. 그러나 현지의 관습을 존중해야 하고 정치적 목소리 역시 낼 수 없는 비정부기구(NGO)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미미했다. 월드컵 열기로 전세계가 마취된 지금,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자와 아이들,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학살은 되풀이되고 있다. ‘인샬라’만 외치고 있기에 그 학살은, 너무 잔혹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튿날, 병원에 나가자마자 그 녀석부터 살펴보았다. 씩씩하게 살아남은 아이의 침상에 놓인 차트에는 ‘불법 아기’(illegal baby)라는 진단명이 붙어 있었다. 우습다기보다는 화가 치밀었다. 세상에 불법적인 생명이라니! 어쩌랴. 혼전임신과 출산이 범죄 행위로 간주되는 이슬람 사회에서 아이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불법 아기’라는 이름뿐인 듯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불법 아기’라는 진단명을 떼는 일이 고작이었다. 현지 출신의 동료 의사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제는 아기의 향후 거취가 걱정이었다. 경찰에서는 아이의 생모를 찾는 수사를 시작했고, 현지인 간호사 한 명은 아이를 입양시키고 싶어했다. 귀찮은 일을 피하려는 병원 쪽에서는 입양 절차를 무시하고 그 간호사에게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성화였다. 영양실조센터 책임자였던 내 입장은 참으로 난처했다. 아이의 미래와 생모의 처우, 아이를 원하는 간호사를 위해서도 입양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겠지만 적법한 절차를 무시할 순 없었다. 내심 경찰이 아이의 생모를 찾아내지 못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곳은 혼외정사가 금지돼 있고, 혼외정사를 한 여인은 형제나 친척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아무도 딴죽을 걸 수 없었다. 내 바람과는 달리. 열흘가량 지난 뒤 생모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남편을 전장에서 잃은 여인이라 했다. 아이 아빠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감옥으로 보내지고 꼬마 알리는 죽은 남편의 가족에게 맡겨졌다. 또다시 분노했다. 비단 그녀뿐이랴. 다푸르에서 전쟁에 희생당한 여인들은 부지기수다. ‘잰지위드’(다푸르 지역의 악명 높은 무장 강도단)에게 겁탈당한 여인,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얹혀살다가 사촌에게 당한 어린 소녀, 땔감을 줍다 군인들에게 당한 50대 여인, 몰래 임신중절 시술을 해달라고 조르는 익명의 여자들…. 당하고서도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그녀들. 그러나 현지의 관습을 존중해야 하고 정치적 목소리 역시 낼 수 없는 비정부기구(NGO)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미미했다. 월드컵 열기로 전세계가 마취된 지금,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자와 아이들,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학살은 되풀이되고 있다. ‘인샬라’만 외치고 있기에 그 학살은, 너무 잔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