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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랑의 꽃다발, 시들어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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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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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인 꽃은 시효 짧은 선물로 간주됩니다. 가지에서 잘려 포장되는 순간 시들어갈 운명의 초읽기는 시작됩니다. 짧으면 굵어야 살아남는 필드의 법칙인지라 꽃다발의 굵은 생존력은 현란한 색채와 형용 불능의 향기, 구겨지기 쉬운 감촉에서 옵니다. 후각·시각·촉각에 전력을 쏟았으니 진이 금세 빠질밖에요.

프러포즈는 배달된 꽃다발로 표상되고, 축하·위로·감사 같은 좋은 감정의 대리 전달자로 단연 꽃이 선호됩니다. 강한 첫인상에 비해 화살처럼 빨리 시드는 꽃의 본성은 연인 관계의 본질과도 닮았습니다. 화훼의 제일 예쁜 부위만 추린 게 꽃다발이듯, 남녀의 가장 드라마적 상황은 연애입니다. 초라하게 시들 꽃의 전성기는 도파민 분비로 900여 일 유지되는 사랑의 열병과 흡사합니다. 꽃의 일시적 아름다움은 곧잘 박제의 유혹과 결합해 조화로 거듭납니다. 시들해지는 사랑을 붙드는 제도적 장치는 결혼입니다. 연애가 생화라면 결혼은 조화입니다. 정서에 반하는 비유 아니냐고요? 그러나 딱히 부인할 수도 없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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