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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형광색 리모컨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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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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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리모컨의 입지는 고작 1kg이 약간 넘는 무게와 부피로 자신보다 수십 배나 큰 몸통을 지휘 통제하는 두뇌의 영도력에 버금갑니다. 원격 조종장치 리모컨은 나와 거대한 가전제품 사이의 관계를 완성시키는 앙증맞은 미니 가교인 셈이지요.

리모컨의 존재 이유는 물리적 거리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동을 감축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하드웨어의 진화로 보강된 기능이 탑재되면서 손바닥만 한 리모컨 위로 40개가 넘는 버튼이 올려지자 편의보다 학습이 선행되는 사태가 초래됐습니다. 설령 매뉴얼 ‘마스타’로 상황 종료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전원이나 녹화 같은 빨간색 실행키를 제하곤 죄다 잿빛 혹은 검정 일색인 리모컨 본체는 식별도 어려울뿐더러 숨겨놓은 다리라도 달린 건지 언제나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곤 합니다. 채널 조작에 소모되는 시간의 수십 배를 리모컨을 찾느라 허비하는 부조리라니! 우리와 가전제품 사이는 리모컨을 매개로 좁혀졌건만 정작 우리와 리모컨 간 거리는 멀기만 합니다. 형광색 리모컨은 누가 안 만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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