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바뀐 ‘월드컵 폐인’과 올빼미족에게 추천하는 케이스별 권장 식단… 점보급 삼각김밥과 눈물나는 틈새라면이면 배고픔과 서러움은 킥 오프~
▣ 채다인 편의점 평론가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다가 창문 밖이 껌껌해져서야 요란스러운 배곯이에 대응할 생각이 났는데, 음식을 모두 거덜내고도 시장을 보지 않았으니 열어보나 마나 냉장고에는 먹을 게 없다. 집 나와서 살겠다고, 잘살 수 있다고 어깃장을 놓았는데 어머니·아버지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것 봐라. 그러려고 집 나갔냐.” 어머니, 아버지, 그래도 우야둥둥 먹고는 살아야지요. 불효자는 오늘도 편의점에 갑니다. 라이프 사이클이 일반적인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어떤가.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거나, 며칠 밤을 새는 작업 뒤에 자고 일어나니 한밤중일 때, 밤거리를 먹을 것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다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비참하고 서럽다. 그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 서러울 때만큼 따뜻한 음식의 힘이 큰 적이 없다. 그때 편의점은 고향 마을 어귀에서 바라보는 고향 집 같다.
긴급할 때 붙이는 반창고 같은 음식
지구 반대쪽에서 벌어지는 월드컵을 시청하느라 밤낮이 바뀐 ‘월드컵 폐인’들이 많은 요즈음,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은 폐인들의 유일한 영양 공급처다.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만나는 편의점은 ‘긴급 난민구조처’기도 하다.
편의점의 출발 자체가 스포츠와 관련이 깊다. 편의점은 올림픽을 치르고 난 다음해 1989년 5월 세븐일레븐이 올림픽선수촌에 1호점을 내면서 한국에 첫 상륙을 했다. 편의점이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된 ‘통행금지’ 조처가 1982년 1월1일을 기해서 사라진 것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정부 당국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올림픽을 치르고 난 뒤 대한민국은 선진 ‘밤문화’까지 흡수하며 불야성을 구가하게 되었다. 이후 편의점은 하루 평균 570만 명이 찾고 올해 말쯤 전국 점포가 1만 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급성장했다. 세븐일레븐, GS25, 패밀리마트 편의점 체인이 전국을 3등분하고 있는데 이외에도 바이더웨이, 미니스톱, 서클K 등의 전국 체인이 있고, 24시간 문을 여는 소매점들도 이제는 ‘편의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편의점 음식은 인스턴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달고, 맵고, 맛이 자극적이고 합성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먹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제품의 유통기간을 엄격하게 체크하기 때문에 같은 식품일 경우 슈퍼마켓보다 신선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1인분으로 포장돼 나오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었다가 남기기 일쑤인 독신자들에게 좋다. 편의점 음식은 간편·간단하게 만들어진 반조리 식품들로 ‘과학’과 ‘실험’으로 응집한 식품이기도 하다. ‘레토르트 식품’은 식품을 조리 가공한 뒤 밀봉하고 ‘레토르트’라 불리는 고온 살균기에 넣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그렇게 해서 없는 게 없는 백화점급 편의점이 펼쳐진다. 볶음김치는 일부러 찾아 먹을 정도로 인기 상품이고, 전주비빔밥은 라면에 질린 ‘올빼미족’에게 더없는 기쁨이 되고, 군고구마가 포장돼 나오니 ‘도대체 어떤 맛일까, 정말 군고구마 맞아?’ 하는 생각에 한 번쯤 도전하고 싶기도 하다. ‘편의점 식단’에 비타민이 부족한 것은 치명적인 약점. 큰 편의점에는 과일·샐러드 등이 있긴 하지만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편의점 생활자들은 비타민을 ‘비타500’으로 흡수한다는 우스개도 있다.
편의점에서는 한 달마다 출시 상품을 정한다. 반응을 보고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벤트성 상품의 구성도 한 달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편의점 상품은 부침이 심하다. 특이한 식품에 유달리 집착한다면 편의점 ‘특이 음식’은 발견 즉시 맛보아야 한다.
아무리 맛있다고 편의점 식품으로 생활할 수는 없다. 편의점 식품은 아주 긴급할 때 약 없이 붙이는 반창고 같은 것, 덧나지 않도록 날이 새면 약을 꼭 발라야 하지만 당장 상처에 반창고는 절실하다. 바로 이 사람들처럼 말이다. 케이스별로 추천 음식을 만들어보았다.
케이스 ① 삼각김밥의 세계는 넓고도 깊어라
오늘은 한국전이 있는 날. 회사를 마치자마자 거리응원을 위해 시청 앞 광장으로 달려간 ㅇ씨.
친구와 함께 자리를 잡고 가져온 준비물(?)들을 체크해본다. 확성기, 태극기, 짝짝이…. 아차, 서둘러서 준비하느라 응원하며 먹을 간식거리를 챙겨오지 못했다. 저녁도 거른 채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다 보면 응원은커녕 허기져서 중간에 지쳐버릴 텐데 간단하게 먹을 만한 게 없을까? 힘 빠져서 배터리 닳는 소리 나기 전에 삼각김밥을 긴급하게 투입해보자.
삼각김밥은 편의점의 전용상품인 ‘PB상품’으로 시작해 일반가정으로 역침투한(홈쇼핑에는 삼각김밥 싸는 기계도 있을 정도다) 편의점 대표 히트상품이다. ‘FF’라고 따로 부르는 이름도 있다. 당연히 삼각김밥은 편의점이 가장 다양하고 가장 맛있다. 기본적으로 매운맛 전주비빔밥, 참치 마요네즈, 소고기 고추장 등 인기상품은 모든 매장에서 다 갖추고 있다. 편의점마다 특색 있는 제품을 내놓기도 한다. ‘와사비’를 김에 발라 톡 쏘는 맛을 내는 삼각김밥이 대표적이다.
하나로 성이 안 찬 사람들을 위해서는 ‘점보급’이 준비돼 있다. 세븐일레븐의 1천원짜리 ‘점보삼각김밥’은 보통의 700원짜리보다 1.5배 정도 양이 많다. 패밀리마트의 더블 삼각김밥은 700원짜리 두 개를 묶어서 천원에 판매한다. GS25의 싸고 푸짐한 ‘천냥김밥’은 분식점의 ‘1천원짜리 김밥 아성’을 위협한다.
GS25에서는 월드컵 시즌을 맞이해 월드컵 전용(?) 삼각김밥 네 종류를 발매했다. 우리나라 대표팀의 붉은색을 적극 이용한 ‘붉은 불닭’과 ‘김치불고기’, 윌드컵 개최지인 독일의 대표적인 음식인 소시지와 베이컨을 사용한 ‘전차군단 베이컨 소시지 삼각김밥’, 유럽의 축구강호 스페인의 대표 식재료인 토마토와 소고기를 스테이크소스에 볶아낸 ‘무적함대 비프토마토 삼각김밥’ 등. 역시 삼각김밥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케이스 ② ‘틈새라면’은 거의 ‘정신차릴라면’
ㅎ씨는 응원하던 팀이 이겨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전철은 끊기고 집에 돌아갈 수 없다. 흥분해서 집에 가봤자 잠도 들지 못할 것 같다.
4시 경기를 보고 바로 회사로 출근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새벽으로 갈수록 조금씩 춥기도 하고, 배도 고파지는데,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라면으로 때워볼까.
GS25에서는 유명한 라면집 ‘틈새라면’과 손을 잡고 ‘틈새라면’을 출시했다. GS25의 음식은 맵기로 유명한데, 거기다 틈새라면의 매운맛이 합쳐지니 거의 ‘정신차릴라면’의 수준의 라면이 만들어졌다. 붉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붉고 화끈하게 매운 라면 국물을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세븐일레븐에서는 일본 컵라면과 우동을 수입해서 판매한다. 개당 2천원으로 비싸긴 하지만 일본라면 맛이 나는 국물은 값을 뛰어넘는 유혹. 일본 튀김우동도 있다. 편의점 전용상품은 아니지만 농심에서 나온 ‘포들면’은 베트남 쌀국수 맛이 나며 모든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꽤 맛있다. GS25에서는 즉석냉면도 판매한다. 면과 육수, 비빔소스가 따로 포장돼 있다.
케이스 ③ 땅콩·육포에서 매운양념곱창까지
늦은 밤, 집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경기를 지켜보는 ㄱ씨.
응원하고 있는 팀은 전반 1 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 한심해서, 그리고 속이 타서 더는 못 보겠다고 TV을 끄려고 하는 순간 터지는 골. “골, 고~~~올! 궈어어어얼~입니다아!!” 기분 좋아 먹던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다시 맥주를 가지러 일어선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뿔싸, 냉장고에 맥주가 한 캔도 남아 있지 않다. 순간 전반 종료 휘슬이 울린다. 후반전을 놓치지 않으려면 하프타임 내에 해결해야 한다. 잽싸게 편의점에서 달려가보자.
편의점의 맥주 안주는 어디나 비슷하다. 캔땅콩, 멸치, 오징어, 육포 등. 슈퍼에서도 판매하는 레토르트 음식도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다. 혹시 맥주가 아니라 소주 안주가 필요하다면 청정원에서 나온 ‘하이포크 매운양념곱창’을 권한다. 데울 수 있는 상품은 아니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넣고 7~8분 정도 졸이면 끝이다.
케이스 ④ 밥해 먹을 힘조차 없을 땐 죽!
얼마 전 취업을 해 서울로 상경한 ㅂ양. 올라와서 열심히 일하느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랴,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어느 휴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머리가 몽롱하다.
아무래도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덜컥 걸려버린 것 같다. 배가 고파 뭘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몸이 아파서 음식을 해먹을 힘도 없고, 외지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것도 없다더니, 아파서 누워 있을 때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죽 한 그릇이 그리워진다.
아파서 밥을 해먹을 힘조차 없을 때 전자레인지에 간단히 데워먹을 수 있는 즉석죽만큼 고마운 존재는 없다. 모든 편의점에는 깨죽, 팥죽 등이 마련돼 있다. GS25에서는 궁중요리 전문가 한복선씨가 감수한 즉석죽 조리제품을 편의점 단독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전복죽은 3200원, 해물야채죽은 3천원이다. 어머님이 정성껏 만들어주신 죽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따뜻한 죽 한 그릇으로 힘을 내보도록 하자.
케이스 ⑤ 사랑하는 이에게 케이크와 와인을
늦은 밤, 야근을 마치고 여자친구에게 안부전화를 건 ㅅ씨, 그런데 수화기 너머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하는 거야?” 아뿔싸, 업무에 치여 사느라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생일을 그만 잊어버린 게 아닌가.
“그, 그럼 알고 말고. 자기 주려고 케이크 사놨으니까 금방 갈게.”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밤 12시, 벌써 제과점은 문을 닫은 시간이고… 과연 ㅅ씨의 운명은?
‘편의점에서 케이크까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편의점에서는 조각케이크나 푸딩 등의 디저트류를 판매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에서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의 ‘쁘띠케이크’(할인점에서도 판매)를 준비해두고 있다. 간편하게 케이크를 먹을 수 있어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품목이다. 계절별로 내놓기도 한다. GS25에서도 팔았지만 지금은 팔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는 토라진 여자친구를 달래기엔 부족할 듯, 그럼 덤으로 샴페인이나 와인을 한 병 사가는 건 어떨까? 물론 편의점에서 사온 것임은 곧 들통나겠지만 당신의 귀여운 성의를 봐서라도 여자친구는 슬쩍 눈감아줄 거다.
지구 반대쪽에서 벌어지는 월드컵을 시청하느라 밤낮이 바뀐 ‘월드컵 폐인’들이 많은 요즈음,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은 폐인들의 유일한 영양 공급처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