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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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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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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몇 년 전 ‘접촉 사고’ 뒤 난감해하는 친구에게 별 생각 없이 “육보시도 있는데 뭐”라고 말한 일이 있다. 친구의 얼굴이 순간 확 폈다. 정말 고민됐나 보다(“오늘 이 술집에 있는 아무 놈에게 보시하고 말 거야”라고 울부짖다 나에게 머리채 끌려나왔던 그녀도 한때는 이렇게 물수세미처럼 맑을 때가 있었다).

별일 없는 한 누구나 하지만, 별일 없으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섹스다. 그러다 보니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한번 잤다거나, 잠자리 트러블이 있다거나, 거부 혹은 요구당하면, 밑도 끝도 없는 고민에 빠진다. 나랑 잠깐 응응응 했던 그 남자, 곧바로 서먹해졌는데, 혹시 과도한 의미 부여 때문이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진짜 묻고 싶었는데 그날 이후 나를 거의 스토커 취급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 못했다). 왜 사람들은 원나이트스탠드에 대해 자기가 얼마나 쿨한지 증명하려고 핫하게 몸부림치는 걸까? (무조건 피하는 게 쿨한 거니? 흥!)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메일 박스에 ‘개인 상담’이 적지 않게 들어온다. “그가 자꾸 하자는데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그녀의 이러저러한 태도가 감당이 안 돼요”류의 내용이다. 사실 스스로 ‘해답’을 알면서 확인받고 싶어하는 거다. 할지 말지는 처지와 형편껏 본인이 결정할 일이고, 감당 안 되면 뜯어고치거나 헤어지는 게 수다. 최근 한 40대 ‘불륜남’의 메일을 보면, 부적절한 관계의 그녀가 조신하지 않은 게 불만이었다. 난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줬는데 그녀는 내게 마누라처럼 목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대답은 이거다. “-..-”

우리는 섹스를 하는 사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너무 쉽게 허물어뜨린다. 일거수일투족을 쥐락펴락하거나 모든 것을 공유하는 관계는 없다. 게다가 그 역할 모델이 ‘남편 마누라 사이’여서는 절대 곤란하다. 섹스는 관계의 윤활유이자 최고의 소통 방식임에는 틀림없지만 인간은 결국 단독자로 살아간다. 대한민국의 상식 있고 교양 있는 성인 여성이길 소망하는 나를 가르친 건 그러고 보니 8할이 섹스였던 거 같다. 섹스에는 좋은 섹스와 그냥 섹스가 있다. 세상에 나쁜 섹스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쁜 섹스는 섹스가 아니라 폭력이거나 투정이거나 착취일 가능성이 높다.

‘섹스는 대단히 정치적인 행위이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다른 성의 관계나 지위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문제적인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겪어봐야 알고 알아야 사회화된다. 그렇다면 음식 취향과 밥상 매너를 말하듯 섹스 취향과 잠자리 매너를 공공연하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정치·경제·사회 여타 중후장대한 이슈에 섹스가 밀리란 법 있나?’ 오마이섹스 연재를 시작하면서 먹은 마음이었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못했던 거 같다. 좀더 갈고닦아 때 되면 돌아오겠다.

‘나 하나 쪽팔려 여러 사람 즐겁다면야…’ 자세를 견지해준 내 파트너 ‘바른 뿌리’와 무덤까지 갖고 갈 비밀을 너무 많이 들킨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등장해준 친구들아 고맙다.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신 독자들, 관용과 인내를 베풀어주신 독자들께도 감사드린다. 늘 행복하고 섹시하시길.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김소희의 오마이섹스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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