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와 젊은 층 사이의 양극화를 돌파하는 퓨전 사극…궁 밖 ‘맵’에서 철검 ‘아이템’으로 무예 닦으며 ‘능력치’ 올리기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요즘 드라마는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올해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작품들은 SBS <하늘이시여>나 한국방송 <별난 여자 별난 남자>처럼 다분히 기성세대 취향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시청률에 비해 큰 이슈가 되거나 젊은 층의 열렬한 반응을 얻는 ‘마니아 드라마’가 되진 못했다. 반면 젊은 층이 ‘강추’하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높아야 20%대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SBS <연애시대>나 한국방송 <굿바이 솔로>는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으며 마니아 시청자들을 만들었지만 평균 시청률은 10% 초반에 머물렀다. 점점 수치로 나타나는 양적인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반응이 드러나는 질적인 시청률을 모두 가져가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과 3회만에 20년 세월을 뛰어넘어
이런 상황에서 사극은 두 시청자층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카드로 손꼽힌다. 과거 사극은 온전히 기성세대를 위한 장르였다.
하지만 최근엔 오히려 젊은 시청자들이 더 좋아한다. 이는 사극이 과거와 달리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 구조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이병훈 PD가 연출한 문화방송 <허준> <대장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병훈 PD의 모든 작품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비범한 재능의 주인공을 등장시킨 뒤, 주인공이 수많은 과제를 돌파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물론 이는 영웅담의 공통된 전개 방식이지만, 이병훈 PD는 거기에 수많은 과제들을 에피소드로 그려내면서 눈에 뚜렷이 보일 만큼의 단계별 성장을 보여줬다.
단적으로 장금(이영애)이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통해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는지 생각해보라. 이병훈 PD의 사극은 매회 일단 보기 시작하면 궁금해서라도 보게 되는 과제들이 있고, 이는 기성세대 시청자들은 기본이요, 젊은 시청자층까지 사로잡았다. 그들에게 이런 스토리는 과제를 통해 ‘레벨’을 ‘업’하고, ‘아이템’을 얻는 롤플레잉 게임과 비슷하다. 현재 <바람의 나라>와 같은 롤플레잉 게임이 신세대에게 인기를 얻듯, 사극 역시 과거를 소재로 하면서 젊은 층이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통해 모든 시청자층을 잡을 수 있는 장르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문화방송 <주몽>은 이런 퓨전사극의 스토리 구조를 좀더 젊은 층에 맞게 고쳤다. <허준>과 <상도>에서 이병훈 PD와 함께 작업한 최완규 작가와 <다모>를 집필한 정형수 작가가 함께 쓴 <주몽>은 이병훈 PD의 사극보다 훨씬 빠르게 영웅의 성장기에 집중한다. 기존 사극들이 사극 특유의 서사성을 부여하고, 주인공의 비범함을 설명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과 달리 <주몽>은 불과 3회 만에 2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청년 주몽(송일국)이 영웅이 되는 과정에만 집중한다. 3회에 주몽은 무예를 멀리하고 궁녀나 건드리는 유약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이내 배다른 형제들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해지면서 자신의 위치를 각성하고, 자연스레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다. 또 주몽이 왕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알려주는 다물활과 그의 ‘능력치’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철검 같은 ‘아이템’이 사건의 중심에 놓이며, 주몽은 무공을 증진시켜줄 스승을 찾아나선다.
불과 6회가 진행된 시점에서 주몽은 이미 궁에서 내쫓겨 더 넓은 ‘맵’(롤플레잉 게임에서 캐릭터가 활동하는 무대를 뜻한다)으로 나갔고,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과 과제를 겪고, 아이템을 얻으면서 성장할 것이다. 주몽이 다소나마 무예를 배우면서 배다른 형제들과의 검술 시합에서 조금이나마 버텨낼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캐릭터의 성장을 단계별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빠른 전개에는 그만큼 스토리가 생략돼 주몽이 영웅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실히 묘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몽>은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허준호)의 영웅담을 전면에 배치해 그것을 핏줄의 힘으로 돌파한다.
역사적 고증,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필수
<주몽>의 팬들이 이미 ‘허셀크로’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처럼 용맹함과 지략을 모두 갖춘 해모수의 비극적인 스토리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의 아들 주몽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그리고 해모수의 활약을 통해 <주몽>은 다량의 전투신을 드라마 초반에 배치하면서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시청자층이 좋아할 화려한 볼거리와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가득한 스토리를 전개시킨다. 불과 6회에 이르러 <주몽>은 주몽이 대업을 이루는 그 순간까지 마치 롤플레잉을 하듯 끊임없이 이어질 성장의 이야기를 준비한 셈이다. 서서히 반응이 오는 일반 사극과 달리 <주몽>이 벌써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과거 사극보다 더욱 요즘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콤팩트한 스토리로 승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빠른 스토리가 곧 좋은 스토리는 아니고, 높은 시청률이 좋은 작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주몽>이 역사적 고증이나 캐릭터에 대한 고민 없이 과제와 해결, 성장만을 반복한다면 <주몽>은 또 다른 롤플레잉 게임의 소재를 던져주는 것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몽>의 초반 성공은 드라마가 지금 시청자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장르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꼭 <주몽>이나 <대장금>처럼 전 세대 시청자를 타깃으로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드라마가 젊은 트렌디 드라마, 나이든 가족 드라마 같은 식으로 장르의 스타일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한 번쯤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사극은 두 시청자층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카드로 손꼽힌다. 과거 사극은 온전히 기성세대를 위한 장르였다.

퓨전 사극 <주몽>은 해모수의 비극적인 스토리에 대비되는 영웅담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곁들였다. 롤플레잉 게임처럼 빠르게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전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