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출판] 여성사, 망각과의 대결

613
등록 : 2006-06-09 00:00 수정 : 2008-09-17 18:59

크게 작게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가진 사학자의 길 <왜 여성사인가>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왜 여성사인가>(푸른역사 펴냄)는 미국 여성사 연구를 이끌어온 거다 러너가 여기저기 쓴 글들을 묶은 책이다. 20세기 후반 떠오른 여성사 분야에서 그가 어떤 결실을 보여줬는지는 <가부장제의 창조> 등 국내에 번역된 연구서를 보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가 40대의 나이로 역사학에 뛰어든 이유 등 학문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개인적인 면모와 함께 여성사에 접근하는 거시적인 방법론을 엿보게 해준다.

거다 러너를 평생 고민에 빠뜨리고 학문의 길로 인도한 것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나치의 손아귀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계 유대인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늘 타자였고 일탈자였다.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각국의 사회에 동화된 유대인과 정체성을 고수하는 유대인들 사이의 벽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그 속에서도 여성은 가부장적 공동체가 만들어낸 이중의 타자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대교 종교의식을 거부하는 등의 반항을 시도했지만 자의건 타의건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버릴 수는 없었다. 곧 나치와 홀로코스트의 광풍이 유럽을 뒤흔들었다.


거다 러너는 미국에서 뒤늦게 역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는다. 유대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억압이 그를 움직인 동력이다. 그는 역사학이 지배자가 계속 시도해온 ‘선택적 망각’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배자의 ‘바깥’에 있는 존재의 역사는 끊임없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내 역사 속에 파묻힌 여성을 찾아낸다. 예컨대 비폭력 저항은 마틴 루서 킹과 간디만을 연상케 하지만, 미국 이민 초기 청교도의 폭력에 맞서 싸운 위대한 퀘이커 여성 교도가 그 시작이었다는 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또는 백인 남성, 백인 여성, 흑인 남성 등 수많은 지배의 사슬에 얽혀 있는 미국 흑인 여성의 역사를 되살리는 것이다.

거다 러너는 3부에서 여성사를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것은 계급과 인종 등의 단일한 범주를 해체하고, 이런 모순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피억압자를 드러내는 것이다. 계급이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 판명된다면 한 계급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감지할 수 없다. 고대 근동에서부터 여성은 부부재산 계약 등을 통해 남성에 종속된 계급으로 탄생된다. 그들은 성적 정절과 순종으로 젠더화된다. 그러나 이들은 노예 여성에 대한 착취를 통해 지배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종이란 범주는 백인 남성과 백인 여성, 흑인 남성과 흑인 여성 간의 복잡한 관계를 감춰버린다. 여성사는, 더 나아가 역사는 단일한 범주로 재단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사학자는, 혹은 역사학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역사 속 존재들의 수많은 차이와 그 차이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자신에 대한 투쟁이자 세계에 대한 투쟁을 계속해왔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