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진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혈액종양내과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암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신약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약은 매우 비싸지만, 기존 항암제보다 효과가 약간 더 우수하거나 부작용이 약간 더 적을 뿐, 획기적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정보 제공 차원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런 약제들에 대한 설명을 드리기는 한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인지, 이런 약제를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많지 않다.
어느 날 80살이 넘은 할아버지 한 분이 며느님과 함께 외래에 오셨다. 다른 병원에서 이미 폐암 4기로 진단을 받으셨다고 한다. 검사 결과 우리 병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미 반대쪽 폐에도 전이되어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연세가 많으시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항암치료도 견디기 어려우실 것 같았다. 그래서 신약에 대해 말씀드렸다.
기존 항암제보다 효과가 더 우수한 것 같지는 않고, 이 약만으로는 완치도 불가능하지만, 부작용이 적어서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을 드렸다. 아직 연구 결과가 부족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데, 그러면 한 달 약값이 250만원 정도 소요된다는 것도 함께 설명을 드렸다.
신약에 대해 설명은 드렸지만, 기존 항암제의 용량을 줄여서 약한 항암치료를 해보거나, 적극적인 치료는 포기하고 진통제와 기침약만 투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보호자께서 신약을 사용하겠다고 하셨다.
한 달 뒤 X선 촬영과 전산화단층 촬영으로 병이 좋아졌는지를 검사했다. 통계를 보면, 이 약으로 병이 좋아질 확률은 약 20%에 불과하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병은 많이 호전됐고, 증상도 함께 좋아졌다. 이 약만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약효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 약을 복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치료 방법이다. 이 점을 설명드리고 다시 그 약을 처방해드렸다.
다시 한 달 뒤에도 할아버지의 병은 악화되지 않았고, 호전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약을 복용하신 뒤 6개월이 지났다. 할아버지께서 진료실에서 나가신 뒤, 함께 오신 며느님께서 언제까지 이 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물어보셨다. 처음에 설명드린 바와 같이 완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병이 좋아져서 약을 끊을 수 있는 경우는 없으며, 효과가 없어질 때까지 약을 계속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씀드렸다. 병이 좋아진 상태로 잘 유지되고 있다는 말에 며느님께서는 안도하는 것인지 걱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가족은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약값만으로 한 달에 300만원을 지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약을 언제까지 쓸지 기한도 없고, 완치 가능성도 없다는데….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그 뒤로도 수개월 동안 계속 그 약을 복용하셨다.
지속적인 투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할아버지 병은 악화되었다. 약효가 끝났으니 약을 끊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함께 오신 며느님은 역시 걱정과 안도가 교차하는 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마 이 가족은 할아버지 치료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 것이고, 빚을 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의사가 효과가 있다는 약제를 권유하니까, 어려운 형편이라도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의사는 대개 환자만 바라보니까, 1분이라도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고, 환자의 증상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권유하게 된다. 의사는 모든 정보를 제공할 뿐, 결정은 결국 보호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까. 아니면 돈 때문에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거나 과다 지출로 고통받지 않도록, 눈치를 보아 고가 치료법에 대한 정보는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까. 고민스럽다.

유영진 의사
어느 날 80살이 넘은 할아버지 한 분이 며느님과 함께 외래에 오셨다. 다른 병원에서 이미 폐암 4기로 진단을 받으셨다고 한다. 검사 결과 우리 병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미 반대쪽 폐에도 전이되어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연세가 많으시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항암치료도 견디기 어려우실 것 같았다. 그래서 신약에 대해 말씀드렸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