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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야누스식품,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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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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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그대 웃음은 내 가슴속에 별빛이 되고/ 자꾸만 팝콘처럼 튀어올라 오~ 오~/ 웃음이 손짓이 표정이 내게로 와…’ 가수 성시경은 연정의 애절함을 팝콘에 비유해 노래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팝콘 특유의 부드러움이 매 순간을 압도한다. 팝콘의 부드러움에서 젊은이들은 연인의 정을, 어른들은 향수를 읽는다.

팝콘의 자랑은 물론 부드러움만이 아니다. 달콤한 듯 풍기는 구수한 ‘전분취’, 그 깊은 뒷맛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그렇다면 부드러움과 구수함으로 설명되는 팝콘의 두 미각적 가치는 신체 대사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시 말해 건강 전문가들은 팝콘이란 식품을 어떻게 평가할까.

“영화관에서 판매되고 있는 팝콘은 가급적 들지 마세요. 십중팔구는 포화지방으로 튀깁니다.” 미국 공익과학센터(CSPI) 마이클 자콥슨 박사의 충고다. 박사가 팝콘 문제로 포화지방을 거론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포화지방 자체도 나쁜데다 이 지방에는 틀림없이 트랜스지방산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경화유이기 때문이다. 트랜스지방산이란 가공식품 유해성 논란의 최선단에 위치한 물질이라는 점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팝콘에 마가린 따위의 인공 경화유가 사용됨으로써 부드러움과 구수함은 더욱 고양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팝콘을 정크푸드로 분류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근거는 당지수(glycemic index) 이론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팝콘과 같은 팽화식품은 일반적으로 당지수가 높다. 고온·고압에서 가공되기 때문이다.

당지수가 높다는 것은 체내에서 소화·흡수돼 혈당치를 급격히 올린다는 뜻이다. 혈당치가 급격히 올라가면 순식간에 공복감이 해소된다. 뻥튀기를 먹고 나면 밥 생각이 없어지는 이유도 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팝콘에 충분한 영양분이 있는가? 영양분은 없되 일순간에 식욕을 떨어뜨리는 식품, 그게 바로 정크푸드다. 팝콘의 부드러움과 구수함이라는 연막 뒤에는 ‘정크’(junk)라는 고약한 단어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들어 팝콘은 또 하나의 치명적인 구설수에 휩싸여 있다. 포장지를 생산하는 듀폰사 연구원의 회사 내부 문건 공개가 그것. 팝콘 봉지 안쪽에는 유해 화학물질이 코팅돼 있는데, 그 일부가 제품으로도 녹아 나온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플루로텔레머’로 확인된 이 물질은 환경호르몬이자 발암 의심물질이다.

이제 전문가들이 팝콘을 곱지 않은 눈초리로 보는 이유가 명백해졌다. 팝콘이 자랑하는 부드러움과 구수함이란 품질 요소는 미각만을 배려해 설계된 말초적 가치다. 트랜스지방산의 작품이라는 점, 또는 당지수를 높이는 원인이라는 데에서 우리 몸은 그러한 물리적 특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해한 것’으로 인식한다.

“혀는 문 앞의 경비원이다. 경비원이 주인이 되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된다.” 재미 생리학자인 텍사스대학 유병팔 박사는 이렇게 말하며, 오로지 미각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식생활에 경종을 울렸다. 좋은 음식이란 입이 좋아하는 식품이 아니라 몸이 좋아하는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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