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훈 <씨네21> 기자
사진을 보면 슬퍼진다. 사진 속의 나는 환하게 웃고 있어서 이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하고 착각하게 된다
드라마 <연애시대> 중 은호(손예진)의 대사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머리가 아파졌다. JPG 파일의 형태로 하드에 가득 찬 별 볼일 없는 길거리 사진들. 그것들을 추려내는 작업을 밤새도록 하다 보니 ‘디지털’이란 단어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툴툴거리는 내 하드의 메모리를 차지할 만한 가치를 지닌 사진은 수백 장 중 겨우 십수 장에 불과했다. 게다가 디지털 이미지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화 행위를 소흘히 하도록 만든다. 옛날처럼 벽에다 붙여놓고 감상할 기회도 없어져버린 것이다. 컴퓨터 화면의 사진이 싫어진 나는 오래된 사진첩을 서랍에서 꺼냈다.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은 반짝거리는 광택을 내며 여전히 옛 친구들의 미소를 안고 있었다. 조심스레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면, 찰칵, 셔터 내려가는 소리, 그리고 치이이이잉 필름 감기는 소리, 그리고 뷰파인더를 얼굴에 가져다 대면 코를 찌르는 새콤한 필름 냄새. 필름 카메라를 사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새카만 코니카 카메라처럼 단단하고 투박한 것으로. 디지털 카메라처럼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그 장소와 그 사람들의 공기를 아련하게 잡아주는 것으로. 그래서 행복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유광의 순간들을 벽에 붙여두고 위안할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