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안부전화도 없는 ‘부재형’ 아버지를 위해 책을 기획했건만…
▣ 권선희 도서출판 사이 대표
최근 미국에서는 파더링 스타일(Fathering style), 일명 아버지의 스타일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 성인이 된 자녀들의 사회생활에 아버지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분석한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아버지 유형에는 과잉성취형, 시한폭탄형, 수동형, 부재형, 너그러운 멘토형, 이렇게 다섯 부류가 있단다. 참고로 나의 아버지는 ‘부재형’ 스타일에 속한다.
지금 성인이 된 자녀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문제들의 근원을 추적해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꽤 크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고로, 우리가 현재 조직생활을 힘들어하고 인간관계를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많은 부분 우리 아버지 때문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아버지들에겐 죄책감이 들게 하는 대목일 수도 있으나, 우리에겐 좋은 면죄부 하나 생긴 듯하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 자신의 아버지 유형을 파악하고 그로 인한 현재의 자신을 진단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자녀에게 무관심한 부재형 스타일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심리에서 높은 성취욕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일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상사에게 터뜨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조직생활보다는 자영업이 적당하단다. 아, 이건 바로 내 얘기다. 내가 가끔 상사에게 눈 똑바로 뜨고 대들었던 것이 결국 나의 아버지 때문이었군, 이라는 생각에 잠시 안도감과 함께 억울함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는 왜 나를 조직생활을 그만두고 출판사 창업이라는 자영업의 길로 내몰았을까? 내 이름이 발행인으로 찍혀 나온 책은 이제 겨우 4권이다. 그중 경제적으로 가장 고마운 책은 올 3월에 펴낸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이다. 사실 이 책의 기획 의도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원고 청탁을 받으면 그럴듯하게, 앞으로 출판의 트렌드는 실버출판이 한 축을 차지할 것이며 영미권이나 일본에서는 ‘Adult Development’에 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고 또 그에 관련된 책이 많이 나와 조만간 한국 출판 시장에서도 하나의 흐름을 구축하리라 예상했기에…, 라고 거창한 기획의 변을 내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마는, 사실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전적으로 내 아버지 손에 이 책을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니 기획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당연히 나의 아버지다. 거듭 말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부재형’ 스타일이다.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15년째 객지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내가 자주 이용하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사무실 코앞에 있던 성수대교가 출근길에 무너졌고,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아현동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고, 집 근처에서 대형 화재가 났고, 다니던 대학 근처에서는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폭주하는 안부전화 속에 내 아버지의 전화는 단 한 통도 없었다. 그런 초지일관의 자세를 지녔던 내 아버지는 왜 마흔 이후 30년의 삶을 그토록 처참하게 스스로 짓밟으면서 고통스럽게 사시는 걸까, 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1독자는 누가 뭐래도 내 아버지여야 한다고 믿었다. 책이 출간되자 어머니는 재빨리 고향에 있는 서점에서 사서 읽으셨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100페이지 읽었다, 200페이지 읽었다, 하시면서 보고를 해왔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건네주자, 특유의 마땅치 않다는 표정으로 겉표지만 힐끗 보더니, “난 이딴 책 필요 없어” 하시며 거들떠도 안 보신단다. 아, 대실패다. 이 책의 첫 번째 독자여야 할 사람은 이 책을 처참히 무시했다. 1차 타깃 독자한테까지 거절당한 책을 누구한테 팔란 말인가. 1차 독자도 설득하지 못한 나는 지금이라도 출판사를 접어야 하나? 그래도 내가 드린 기획료는 거절하지 않으시는 걸 보니 아버지께 추가 기획 인세를 드리기 위해서라도 이 작은 출판사를 접지 말고 어떻게든 꾸려가야 할 것 같다. 부재형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에게는 자영업이 맞는다니, 믿어보는 수밖에.

지금 성인이 된 자녀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문제들의 근원을 추적해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꽤 크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고로, 우리가 현재 조직생활을 힘들어하고 인간관계를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많은 부분 우리 아버지 때문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아버지들에겐 죄책감이 들게 하는 대목일 수도 있으나, 우리에겐 좋은 면죄부 하나 생긴 듯하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 자신의 아버지 유형을 파악하고 그로 인한 현재의 자신을 진단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자녀에게 무관심한 부재형 스타일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심리에서 높은 성취욕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일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상사에게 터뜨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조직생활보다는 자영업이 적당하단다. 아, 이건 바로 내 얘기다. 내가 가끔 상사에게 눈 똑바로 뜨고 대들었던 것이 결국 나의 아버지 때문이었군, 이라는 생각에 잠시 안도감과 함께 억울함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는 왜 나를 조직생활을 그만두고 출판사 창업이라는 자영업의 길로 내몰았을까? 내 이름이 발행인으로 찍혀 나온 책은 이제 겨우 4권이다. 그중 경제적으로 가장 고마운 책은 올 3월에 펴낸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이다. 사실 이 책의 기획 의도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원고 청탁을 받으면 그럴듯하게, 앞으로 출판의 트렌드는 실버출판이 한 축을 차지할 것이며 영미권이나 일본에서는 ‘Adult Development’에 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고 또 그에 관련된 책이 많이 나와 조만간 한국 출판 시장에서도 하나의 흐름을 구축하리라 예상했기에…, 라고 거창한 기획의 변을 내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마는, 사실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전적으로 내 아버지 손에 이 책을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니 기획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당연히 나의 아버지다. 거듭 말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부재형’ 스타일이다.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15년째 객지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내가 자주 이용하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사무실 코앞에 있던 성수대교가 출근길에 무너졌고,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아현동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고, 집 근처에서 대형 화재가 났고, 다니던 대학 근처에서는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폭주하는 안부전화 속에 내 아버지의 전화는 단 한 통도 없었다. 그런 초지일관의 자세를 지녔던 내 아버지는 왜 마흔 이후 30년의 삶을 그토록 처참하게 스스로 짓밟으면서 고통스럽게 사시는 걸까, 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1독자는 누가 뭐래도 내 아버지여야 한다고 믿었다. 책이 출간되자 어머니는 재빨리 고향에 있는 서점에서 사서 읽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