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아성 무너뜨리는 유색인종 선수들… 골프, 테니스, 아이스하키도 ‘물갈이’
“유색인은 태어날 때부터 열등한 인종이다. 교화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원초적으로 착취와 지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한때 앵글로 색슨족의 백인우월주의는 틀림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은 그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백인들은 경제·문화·예술·스포츠를 독과점하며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흑인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기에 뒤떨어졌던 것뿐이었다. 흑인들은 점차 백인 중심의 세계에 뛰어들어 결코 열등하지 않음을 입증했다.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흑인들의 성취는 놀라웠다. 적어도 스포츠에서 흑인들은 백인보다 더 우생종임을 보여주었다.
전통의 윔블던, 흑인 품으로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흑인들은 사탕수수밭에서 뛰어나와 백인들의 ‘스포츠 놀이터’를 잠식했다. 백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들은 게릴라전을 하듯 조금씩 조금씩 파고 들었다. ‘헝그리 스포츠’라는 복싱이나 몸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하는 농구는 일찌감치 흑인들이 점령했다. 이제는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던 ‘고급 스포츠’인 골프와 테니스, 아이스하키에서도 흑인 스타들이 등장하며 백인들의 영역이 잠식되고 있다.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코트를 호령한 윌리엄스 자매까지 오늘날 미국에서 스포츠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이들은 모두 흑인들이다. 정상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정해진 룰에 의해 정당하게 겨루는, 그래서 실력있는 자가 반드시 승리하는 스포츠는 누구에게나 도전이 가능한 무대였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은 타고난 기량과 한없는 노력으로 백인우월주의의 벽을 깨며 신세계를 열었다. 지난 7월9일 테니스의 본고장 영국 런던 윔블던 센터코트는 그런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테니스 최고의 권위를 지닌 윔블던대회에서 21세기 첫 번째 우승자를 가리는 여자결승전에서 백인인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와 비너스 윌리엄스(미국)가 맞붙었다. 할렘가 출신의 윌리엄스는 백인의 자존심을 걸고 나온 지난 대회 우승자 데이븐포트를 엄청난 힘으로 밀어붙이며 간단하게 무찔렀다. 전통의 윔블던은 그렇게 2000년 첫 코트를 흑인에게 내주며 백인들의 품에서 떠나갔다. 지난해 US오픈을 차지한 동생 서리나 윌리엄스와 함께 메이저대회 자매 우승이란 기록을 세운 윌리엄스 자매는 전형적인 ‘할렘가의 신데렐라’들이다. 어린 시절 흑인으로서 불우한 성장과정을 보냈지만 라켓의 힘으로 인종차별과 가난의 벽을 뛰어넘었다. 아버지 리처드는 스포츠의 평등함을 믿고 4살 때부터 그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들은 20세기 마지막 US오픈과 21세기 첫 윔블던을 제패해냈다. 이들 자매 이전에도 백인들의 독무대이던 테니스에서 흑인의 힘이 입증된 바 있다.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알시아 깁슨이 57년, 58년 윔블던을 우승하며 이미 흑인역사를 썼다. 하지만 깁슨의 우승은 돌연변이처럼 순간의 일로 여겨졌고 이후 테니스에서 흑인은 잊혀진 인종이 되고 말았다. 그뒤 42년 만에 재생된 흑인 비너스의 윔블던 정상 정복은 이제 테니스도 검은 바람에 뒤덮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포츠계의 ‘검은 바람’은 이제 대세다. 아직도 일부 스포츠에서는 차별주의가 여전히 힘을 쓰고 있고 그래서 백인들 사이에서는 ‘백인들만의 스포츠’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지만, 흑인들의 스포츠 점령은 엄연한 현실이다. 백인 신화에 홈런을 날리다
특히 복싱은 진작부터 흑인들이 우수성을 입증한 가장 대표적인 종목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로 손꼽히는 무하마드 알리. 본명이 캐시어스 클레이인 알리는 42년 미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태어나 18살이던 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그는 영광스런 금메달을 오하이오강에 집어던지고 말았다. 백인깡패들의 인종차별에 분노한 흑인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그 어떤 가치도 없었다.
그러나 알리는 프로무대에 뛰어들어 세 차례나 헤비급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적어도 링에선 흑인이 백인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알리가 흑인들의 우상으로 링을 점령했다면, 재키 로빈슨과 행크 애런은 야구장에서 흑인파워를 입증한 개척자들이다.
반세기 전 미 프로야구에 뛰어든 재키 로빈슨은 관중뿐 아니라 동료선수들로부터도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차별을 극복했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흑인야구의 선구자였다. 행크 애런은 ‘야구를 잘한다’는 것 때문에 협박까지 받았다. 니그로리그에서 출발해 53년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레이브스로 적을 옮긴 뒤 애런은 미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다. 23년간 755개의 홈런을 날리며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까지 세웠다.
애런이 본격적으로 백인들의 표적이 되기 시작한 것은 통산 700홈런을 넘어서면서부터다. 백인들은 그들의 영원한 우상인 베이브 루스의 통산 홈런 714개의 기록이 흑인에 의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흑인들이 야구장에까지 ‘침투’한 것도 못마땅한 터에 백인의 우상 베이브 루스의 기록까지 깨질 위기에 처하자 백인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실력 앞에 피부색은 소용이 없었다. 애런은 결국 시원한 홈런으로 흑백장벽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테니스 못지 않게 부자들의 스포츠인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흑인들이 진입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흑인들이 골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주인인 백인들에게 양산을 씌어주거나 공을 줍는 것뿐이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흑인은 출전자격을 갖추고도 마스터스대회엔 나설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골프도 결국 21세기를 맞기 전 흑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천재 골퍼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면서 골프의 역사는 이제 흑인에 의해 쓰여지고 있다.
우즈는 흑인 아버지와 타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메리카 인디언과 백인의 피까지 섞여 있어 한마디로 흑인이라고는 보기 힘들지만 흑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였으면 무조건 흑인으로 보는 미국 사회의 통념으로 보면 흑인임에 틀림없다. 우즈는 다른 흑인들에 비해 비교적 교육을 잘 받았고 그 때문인지 흑백을 초월, 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골프장에서 우즈 바람은 일반사회로까지 번져 인종차별을 더욱 약화시키는 효과까지 낳고 있다.
‘황색 돌풍’ 일으킨 퍼팅
우즈에 의해 골프에서도 정점에 선 ‘흑인의 힘’은 리 엘더스 등 몇몇 선배 흑인선수들에 의해 씨를 뿌렸다. 이들이 인종차별의 벽을 먼저 뚫으면서 우즈의 탄생도 가능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여자 골프 역시 유색인종들이 백인의 벽을 뚫고 있다. 여자 골프에선 특히 ‘검은 바람’이 아니라 ‘황색 바람’이 거세다. 바로 우리나라의 박세리가 그 선구자격이다. 우즈가 US오픈을 따내던 98년 7월7일 박세리도 5.5m 퍼팅을 극적으로 성공시키며 US여자오픈 역사를 새롭게 썼다.
그동안 스포츠계에서 마지막 백인들의 스포츠로 남아 있던 골프, 테니스까지 유색인들에게 점령당함으로써 이제 더이상 백인들이 독야청청할 수 있는 스포츠분야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스포츠천국 미국의 4대 인기 프로스포츠인 농구, 야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를 보면 더욱 이런 경향은 분명해진다. 비록 미식축구의 꽃인 쿼터백이나 아이스하키가 백인들만의 분야로 버티고 있지만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완전한 평등은 아직 아니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어찌 보면 백인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사무국의 통계에 따르면 1917년부터 1991년까지 75년간 등록된 흑인선수는 통틀어 18명에 불과했다. 흑인선수들이 등장하긴 했어도 아직 이렇다 할 스타는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리그에서 뛰고있는 선수는 20명 이상으로 지난 75년간 총 활동한 선수보다 많아졌다.
이처럼 스포츠 무대의 주역에서 백인들이 밀리고 있는 것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개인종목뿐 아니라 단체 구기종목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의 꽃이라는 육상종목에서는 백색바람이 오히려 화제가 될 정도로 역전당했다. 백인들이 과학적인 이유를 들어 생체학적으로 흑인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수영에서도 이미 챔피언(88서울올림픽 접영 100m 수리남의 네스티)이 탄생했고, 미국 내 아프리카계 흑인들도 신기록을 세우며 검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당초 유럽이 중심을 이루던 올림픽 축구에서도 나이지리아의 검은 태풍이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지난 98년 월드컵과 올해 유럽컵을 석권한 프랑스도 다른 피부색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98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프랑스 스타팅멤버 11명 중 7명이 알제리계, 아르메니아계, 가나계 등 이민계 선수였다.
그러나 비록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들이 스포츠 전면에서 백인들을 뛰어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포츠계에서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98년 미 프로야구를 뜨겁게 달구었던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전쟁도 겉보기엔 평등한 싸움 같았지만 피부색의 차이에 따른 미국 야구팬들의 불공정한 시선이 숨어 있었다. 모처럼 힘의 우위를 본 백인들은 일방적으로 미국 태생의 백인 맥과이어를 응원했고, 언론도 알게 모르게 맥과이어 위주로 싸움을 전개시켰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소사는 일대일의 홈런싸움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백색집단의 교묘한 방해공작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올해에는 특히 메이저리그의 백인선수 존 로커의 인종차별 발언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의 대표급 마무리투수인 로커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온갖 유색인종이 다니는 뉴욕이 싫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해 큰 물의를 일으켰지만 암암리에 백인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
농구 등 흑인선수들이 이끌고 있는 인기스포츠에서도 팀의 경영진이나 코칭스태프는 아직까지 백인들이 점령하고 있어 완전히 인종적으로 평등해진 것은 아니다. NHL은 흑인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인종차별 논란이 늘어났다. 그러나 흑인선수들은 “흑인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을 때도 있지만 밝은 내일을 꿈꾸는 흑인 소년소녀들의 희망이 되기 위해 참고 힘을 낸다”며 스포츠를 통한 입신양명의 꿈을 담금질하고 잇다.
여전히 유색인종에게 높은 벽으로 남아 있는 성역도 있다. 수중발레나 리듬체조 등 몸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종목들이 그런 예다. 대부분 백인 심판들이 채점을 독점하고 있어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껏 이런 분야에 도전한 유색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직 정상을 차지하기에는 편견의 벽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인다. 또한 스키와 같은 겨울철 스포츠도 여러 가지 이유로 성역으로 남아 있는 분야다.
힘과 기량에서 흑인에게 밀리고 있는 스포츠계의 백인들. 멀지 않은 장래에 미국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스포츠 전당’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태생인 흑인 프로테니스 스타 고 아서 애시는 ‘도전과 개척’의 명예의 전당을 꿈꿨다. 만약 이런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머지않아 백인보다 더 많은 유색인종 스포츠스타들이 헌액될 것이다.
이영만/ 경향신문 기자

(사진/할렘가의 신데렐라 윌리엄스 자매. 메이저대회 자매 우승이란 신기록에는 스포츠의 평등함을 믿고 교육시킨 아버지의 노력이 숨어 있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흑인들은 사탕수수밭에서 뛰어나와 백인들의 ‘스포츠 놀이터’를 잠식했다. 백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들은 게릴라전을 하듯 조금씩 조금씩 파고 들었다. ‘헝그리 스포츠’라는 복싱이나 몸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하는 농구는 일찌감치 흑인들이 점령했다. 이제는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던 ‘고급 스포츠’인 골프와 테니스, 아이스하키에서도 흑인 스타들이 등장하며 백인들의 영역이 잠식되고 있다.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코트를 호령한 윌리엄스 자매까지 오늘날 미국에서 스포츠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이들은 모두 흑인들이다. 정상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정해진 룰에 의해 정당하게 겨루는, 그래서 실력있는 자가 반드시 승리하는 스포츠는 누구에게나 도전이 가능한 무대였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은 타고난 기량과 한없는 노력으로 백인우월주의의 벽을 깨며 신세계를 열었다. 지난 7월9일 테니스의 본고장 영국 런던 윔블던 센터코트는 그런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테니스 최고의 권위를 지닌 윔블던대회에서 21세기 첫 번째 우승자를 가리는 여자결승전에서 백인인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와 비너스 윌리엄스(미국)가 맞붙었다. 할렘가 출신의 윌리엄스는 백인의 자존심을 걸고 나온 지난 대회 우승자 데이븐포트를 엄청난 힘으로 밀어붙이며 간단하게 무찔렀다. 전통의 윔블던은 그렇게 2000년 첫 코트를 흑인에게 내주며 백인들의 품에서 떠나갔다. 지난해 US오픈을 차지한 동생 서리나 윌리엄스와 함께 메이저대회 자매 우승이란 기록을 세운 윌리엄스 자매는 전형적인 ‘할렘가의 신데렐라’들이다. 어린 시절 흑인으로서 불우한 성장과정을 보냈지만 라켓의 힘으로 인종차별과 가난의 벽을 뛰어넘었다. 아버지 리처드는 스포츠의 평등함을 믿고 4살 때부터 그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들은 20세기 마지막 US오픈과 21세기 첫 윔블던을 제패해냈다. 이들 자매 이전에도 백인들의 독무대이던 테니스에서 흑인의 힘이 입증된 바 있다.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알시아 깁슨이 57년, 58년 윔블던을 우승하며 이미 흑인역사를 썼다. 하지만 깁슨의 우승은 돌연변이처럼 순간의 일로 여겨졌고 이후 테니스에서 흑인은 잊혀진 인종이 되고 말았다. 그뒤 42년 만에 재생된 흑인 비너스의 윔블던 정상 정복은 이제 테니스도 검은 바람에 뒤덮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포츠계의 ‘검은 바람’은 이제 대세다. 아직도 일부 스포츠에서는 차별주의가 여전히 힘을 쓰고 있고 그래서 백인들 사이에서는 ‘백인들만의 스포츠’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지만, 흑인들의 스포츠 점령은 엄연한 현실이다. 백인 신화에 홈런을 날리다

(사진/올림픽 금메달을 오하이오강에 던져버린 무하마드 알리. 그는 탁월한 기량으로 헤비급 챔피언을 세번이나 차지하며 흑인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사진/천재골퍼 타이거 우즈가 등장한 뒤 골프의 역사는 다시 쓰여지고 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에서도 한국 낭자들의 ‘황색 돌풍’이 거세다)

(사진/수영도 이제 백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진은 88년 서울올림픽 접영 1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수리남 출신의 네스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