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훈 홍정형외과의원
환자는 자신의 병과 자신이 받을 치료에 대해서 의사에게 들어야 한다. 의사도 환자에게 자신이 할 치료를 환자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기본적으로 의사들은 이 의무를 지키려고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을 빼앗아서야 되겠는가”라는 말에 막히기도 한다. 그래서 폐암 환자가 “폐렴으로 요즘 약 타먹고 있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죽는 경우가 생긴다.
환자에게 알려서 환자가 절망에 빠져 혹시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의사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괴롭더라도 환자에게 그의 병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이발사로 어렵게 생활하는 40대 초반의 남자 환자가 허리 엉치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 직업상 아프려니 하고 있다가 그냥 둔 것이었는데 검사해본 결과 이미 골반과 허리뼈까지 암이 퍼진 상태였다. 어디에서 생긴 암인지 알려면 종합병원으로 옮겨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그것을 알아낸다 해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치료가 거의 불가능했다. 부인은 너무 가난해 치료도, 어려운 병을 더 이상 검사할 형편도 못 된다고 말했다. 자기 입으로는 도저히 말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조심조심 병에 대해서 설명했다. 환자는 “저보고 그냥 죽으라는 말씀이시군요” 하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렇게 퇴원해 한 달쯤 뒤 환자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희망을 빼앗은 셈이기도 하지만 인생을 정리할 기회도 되었을 것이라고 위로해본다.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죽는 것은 갑자기 죽음을 마주치게 되는 사고와 비슷하다. 자신의 생명을 마감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30년 전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 나는 보호자를 속인 적이 있다.
네 살짜리 소년이 소아과에서 등이 아프다고 하여 내원했는데, 등뼈 X-선을 촬영하니 척추결핵이어서 정형외과로 왔다. 얼굴도 창백해 혈액검사를 했더니 빈혈 소견이 보였다. 척추결핵은 계속 진행되면 허리가 굽어 꼽추가 되는 병이다. 이 환자의 경우는 등뼈의 척추결핵 부위를 수술로 긁어내고 결핵 치료를 하면 등이 굽지 않고 치유될 수 있었다. 가족에게 수술 사실을 알리고 수술 동의를 구했다. 그 자리에는 소년의 부모 외에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었다. 가족같이 지내는 신도들이라고 했다. 부모는 이 수술을 하려면 수혈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같이 있던 분들이 그런 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수혈하지 않고 마취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고 수술하지 않으면 등이 굽은 장애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부모를 설득하니 부모는 조금 흔들리는 듯도 했다. 그런데 같이 온 신도들이 더 펄펄 뛰면서 교리상 절대 수혈할 수 없다며, 수혈하겠다면 환자를 퇴원시키겠다고 했다. 결국 부모도 “아이가 죽어도 좋으니 수혈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수혈하지 않고 수술하겠다”고 약속한 뒤 수술 일정을 잡았다. 수술하는 날 수술실 입구에 부모와 신도들이 지키고 서서 또 한 번 수혈하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았다. 나는 수술방에서 수혈로 환자 상태를 좋게 한 뒤 전신마취를 해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미리 원무과에 얘기해서 간호과에서 준비한 혈액대금을 항생제 주사대금으로 청구하도록 해놓은 뒤였다. 수술 뒤 환자는 볼이 발그레해졌고 그 뒤 약 1년간 결핵 치료와 X-선 촬영을 통해 건강하게 되었다. 나는 환자 고지의 의무를 위반한 이 사건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 교리 안에 있는 그들은 이미 고지 사실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내가 그들의 종교에 대처한 방법은 신념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네 살짜리 소년이 소아과에서 등이 아프다고 하여 내원했는데, 등뼈 X-선을 촬영하니 척추결핵이어서 정형외과로 왔다. 얼굴도 창백해 혈액검사를 했더니 빈혈 소견이 보였다. 척추결핵은 계속 진행되면 허리가 굽어 꼽추가 되는 병이다. 이 환자의 경우는 등뼈의 척추결핵 부위를 수술로 긁어내고 결핵 치료를 하면 등이 굽지 않고 치유될 수 있었다. 가족에게 수술 사실을 알리고 수술 동의를 구했다. 그 자리에는 소년의 부모 외에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었다. 가족같이 지내는 신도들이라고 했다. 부모는 이 수술을 하려면 수혈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같이 있던 분들이 그런 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수혈하지 않고 마취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고 수술하지 않으면 등이 굽은 장애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부모를 설득하니 부모는 조금 흔들리는 듯도 했다. 그런데 같이 온 신도들이 더 펄펄 뛰면서 교리상 절대 수혈할 수 없다며, 수혈하겠다면 환자를 퇴원시키겠다고 했다. 결국 부모도 “아이가 죽어도 좋으니 수혈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수혈하지 않고 수술하겠다”고 약속한 뒤 수술 일정을 잡았다. 수술하는 날 수술실 입구에 부모와 신도들이 지키고 서서 또 한 번 수혈하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았다. 나는 수술방에서 수혈로 환자 상태를 좋게 한 뒤 전신마취를 해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미리 원무과에 얘기해서 간호과에서 준비한 혈액대금을 항생제 주사대금으로 청구하도록 해놓은 뒤였다. 수술 뒤 환자는 볼이 발그레해졌고 그 뒤 약 1년간 결핵 치료와 X-선 촬영을 통해 건강하게 되었다. 나는 환자 고지의 의무를 위반한 이 사건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 교리 안에 있는 그들은 이미 고지 사실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내가 그들의 종교에 대처한 방법은 신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