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현대생활의 필수품 검정 비닐은 그 색이 상징하듯 죽음과 연루됩니다. 매장에서 집어든 유채색 상품의 광택을 집어삼키는 무채색의 은폐력이 일단 그렇지요. 도로, 가로수, 가옥 등 공간의 상하 구분 없이 출몰하지만 자력 아닌 바람에 실려 이동합니다. 방향감각이 상실된 채 공중 부양한 검정 비닐의 가장 친숙한 자태야말로 유령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낮의 활기와 열광이 쓸고 간 새벽녘 도심은 음식물 찌꺼기를 찾아헤매는 배회 고양이와 그걸 담은 검정 비닐이 접수합니다. 소비문화와 사행심의 끝자락에 처치 곤란 상태로 수북이 쌓인 것도 검정 비닐입니다. 설혹 이들에게 제공되는 재기의 발판이래야 고작 ‘비공식’ 쓰레기봉투이며 때론 소화 못한 토사물을 받아내기도 합니다. 이 정도는 그나마 나은 축이지요. 토막 살해의 증거물은 여지없이 검정 비닐과 함께 발견됩니다. 요금 없이 선심 제공되는 탓에 검정 비닐의 존재감과 유통의 증거는 인멸됩니다. 있는 듯 없는 그야말로 유령이지요. 혹은 도시의 신종 검은 고양이인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