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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유전자를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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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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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논쟁 이끄는 불확정성의 원리… 유전인자 발현은 문화적 요인으로 조절 가능

사진/유전자 치료는 치료비가 비싸고 안전성도 의심받고 있다. 한 과학자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백혈구 세포 속에 유전자를 넣어주고 있다.
21세기는 유전자 공학의 시대라고 할 만큼 유전자와 그에 관련된 바이오 산업이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략 한달에 1건 정도의 획기적인 암치료제나 최첨단 의료기술이 매스컴에 화려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그 내용에서는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만일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아마도 지금쯤 대부분의 암은 정복되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거의 완성됨에 따라 이러한 식의 장밋빛 미래에 대한 보도의 황당하기는 더러 경쟁적이기까지 하다. 머지않아 유전자 조작으로 사람의 탄생에 관한 정보를 마음대로, 예를 들어 피부색까지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든지, 또는 유전병의 조기치료, 그리고 유전자 조작 농작물로 인류의 식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든지 하는 보도가 연일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과학 내부와 외부의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우리의 기대만큼 그 발전은 간단치 않을 것 같다.

컴퓨터 유전자 예측의 빛과 그림자


유전자란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염색체 DNA 배열에서 특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한 부분을 말한다. DNA 서열의 여기에서 저기까지가 인간의 눈을 결정하는 유전자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먼저 ‘모델 개체’(model organism)라 불리는 하등동물의 특정한 유전자를 이용해서 그 부분이 눈을 결정하는 것인지를 조사한다. 예를 들어 초파리에서 눈에 관여할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를 지워본다든지, 또는 그 부분을 복사하여 추가로 다른 위치에 집어넣어 본다든지 하여 초파리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초파리는 그 생명주기가 사람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그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태어난 초파리에 눈이 없다든지, 또는 눈이 몇 군데 더 생긴다든지 하면 그 부분은 눈을 결정하는 유전자라고 확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실제 개구리의 눈 유전자를 초파리에게 덧씌워 초파리의 다리에 눈 모양의 기관을 다는 그야말로 엽기적인 초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관련된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든 수정란으로 태어난 아기에 눈이 없다든지, 또는 눈이 세개가 만들어졌다면 그 부분은 눈을 만드는 것에 관련된 유전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윤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다행스럽게도(?) 사람에게서 이 정도의 유전자 손상이 일어나면 대부분 유산되므로(자연도태) 최종적 결과를 관찰하기 힘들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에게 실험을 하지 않고 유전자의 기능을 알 수 있을까. 먼저 초파리나 생쥐의 눈에 관련된 유전자의 DNA 배열 정보를 확인하고 그와 가장 비슷한 사람의 DNA 배열 위치를 찾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유전정보를 추측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미천한 초파리나 개구리의 눈에 관한 유전자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그것이 과연 비슷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본다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유전자 예측(gene prediction)에는 기계학습능력이 있는 컴퓨터프로그램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미 기능이 밝혀진 유전자를 지운 뒤에도 그 유전자가 담당한 기능이 그대로 개체에 나타나는 ‘녹아웃 유전자’(knockout gene) 문제가 연구자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중복으로 존재해서 하나쯤 지워져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가설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기무라 교수 등은 유전자학(Genomics)의 불확정성의 원리로 이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양자역학에서 제시된 불확정성의 원리란 양자 세계에서는 어떤 두개의 변수에 대한 내용을 동시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의 위치와 그 모멘텀, 또는 에너지의 양과 그것이 측정된 시각 등이 그러한 서로 배반되는 쌍의 변수들이다. 이와 같이 생물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유전자들의 발현시기와 기능은 동시에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발현가능성이 아주 약한 것들은 적어도 몇대에 걸쳐서 집단적이며 확률적으로 조사해야 하므로 유전적 적합성(fitness)과 그 관찰기간의 곱은 일정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지금과 같이 “이 유전자가 있으면 이 기능이 일어난다”는 식의 단정적인 결론은 위험할 수 있다. 이 가설이 흥미로운 것은 사회생물학 논쟁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 논쟁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인간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타고날 때 받은 유전자 정보인가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후천적인 문화적인 요인인가?”이다. 선천성에 무게를 두는 쪽은 결국 인간이란 유전자의 명령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이타성과 같은 고도의 정신적인 행동도 결국은 자신의 유전자를 안전하게 널리 퍼트리기 위한 교묘한 생물학적 위장전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유전자의 불확정성 원리를 인정한다면 그 유전인자의 발현은 문화적 요인으로 조절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갈수록 유전정보에 따른 인종차별이 과학의 탈을 쓰고 노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몇몇 회사에서는 보험료를 결정하기 위해서 각 가입자에게 유전자 테스트를 받아오게 하고 있다. 따라서 깨끗한(?) 유전정보를 가진 사람에게는 보험료를 싸게 받고 각종 암에 관련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예 보험을 받아주지 않거나 더 비싼 보험료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싼 보험료를 위해서 유전자 진단을 받으려 하지만 만일 그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이야말로 완전히 유전적으로 ‘왕따’를 당하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과연 그러한 진단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 유전인자가 있는 사람을 군대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것으로 완전히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코흘리개 아이 때부터 동성애자라든지 과도폭력성 유전인자 보유자로 분류되는 것은 반인권적이며 또한 비과학적이다. 과연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 가능을 나타낼지도 의문스러우며,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그것은 얼마든지 자연적으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생태학적 접근… 불평등한 유전자 치료

AIDS가 처리되기도 전에 다시 광우병이 우리 사회를 급습하고 있다. 아마도 새로운 엄청난 질병이 줄을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질병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그 치료에 비해서 결국은 새로운 병의 정체를 더 빨리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단순한 몇 개체의 유전자만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수십 세대에까지 걸쳐서 살펴보아야 하는 마이크로 생태학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대장균 한 마리로부터 시작되는 족보를 만들어가면서 그들을 추적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일 배아복제가 허용되면 인간 유전자 연구가 훨씬 발전할 것이다. 인간 유전자에서 어떤 부분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초파리를 쓰지 않고서도 쉽게 실험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런데 그러한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말할 때에는 항상 분배의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 최첨단 유전자 치료에 매달 약 1천만원 정도 든다면 그 기술의 가치와 인류를 위한 공헌 등을 운운하는 것은 평등을 깨뜨릴 수밖에 없다. 여하튼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라는 말을 다시금 상기해본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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