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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무서운 감자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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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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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이브가 동틀 무렵, 영국 화이트번의 한 조용한 마을. 잇몸 출혈로 밤새도록 고통을 겪던 한 청년의 심장 고동이 서서히 약해지더니 급기야 멎는다. 청년의 이름은 스콧 마틴(Scott Martin). 당시 20살이었다. 어머니와 두 누이가 곁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한창 나이에 웬 청천벽력일까. 영양실조로 인한 간경변이 사망 원인으로 나왔다.

마틴은 극심한 편식가였다. 그가 20년 동안 먹어온 식품이라고는 오직 감자튀김, 흰빵, 통조림 콩. 대표적인 가공식품들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야채와 과일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의사가 처방해준 영양식품도 맛이 없다고 먹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에도 그의 옆에는 감자튀김이 놓여 있었다.


마틴이 가장 좋아했던 감자튀김, 즉 프렌치프라이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식품이다. 이 제품의 일반 제조공정을 보면 ‘블랜칭’(blanching)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잘게 썬 감자를 뜨거운 물에 데치는 작업이다. 튀기기 전에 감자를 익히는 목적도 있지만, 갈변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다. 문제는 이 블랜칭 공정의 영양학적인 의미다. 그 과정에서 감자의 여러 유익한 성분이 유실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감자튀김을 된장국의 감자와 같이 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패스트푸드를 대표하는 이 제품은 비단 영양적인 측면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이 식품 주변에는 늘 유해물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전에 국내의 한 환경단체가 감자튀김과 감자칩 제품에 함유된 아크릴아미드 성분을 또다시 거론함으로써 우리의 ‘망각중추’를 흔들었다. 수년 전 아크릴아미드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때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는 것이다. 이 물질은 전분류 식품을 고온에서 가공할 때 생긴다. 프렌치프라이나 포테이토칩이 유독 문제되는 이유는 감자에 그 원인 물질이 많아서다. 아크릴아미드는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성분이다.

감자튀김류의 유해성은 또 있다. 기름에 튀긴 식품이 갖는 공통적인 아킬레스건이다. 고지방 식품이라는 굴레 외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트랜스지방산 문제다. 대부분의 튀김식품에는 트랜스지방산이 들어 있다. 기름이 높은 온도에 접촉하면 미세한 화학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때 트랜스지방산이 만들어진다.

트랜스지방산은 자연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를 인공물질로 정의한다. 이 인공물질은 인체 내에서 대사되지 않는다. 인체 효소가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곧바로 배설돼야 할 텐데, 좀처럼 배설되지도 않는다. 인체에 남아서 여러 고약한 짓을 자행한다. 대표적인 문제가 혈관 건강을 악화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크게 늘고 있는 심장병이나 뇌질환 뒤에 트랜스지방산이 있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바다. 그 밖에 만성피로, 면역력 저하, 정신질환 등에도 상당 부분 이 물질이 개입한다.

아크릴아미드건 트랜스지방산이건, 이 물질들이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이 유해물질로 오염된 식품들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소비자들이 이용해주는 탓이다. 이러한 식품 소비 풍토가 지속되는 한, 제2의 스콧 마틴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유해물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쩌면 이와 같은 소비자의 안일한 사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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