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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섬 할머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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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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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훈 녹색병원 지역건강센터 소장

2000년부터 3년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대우재단이 협약해 낙도 지역의 병·의원 세 곳을 위탁 운영했다. 그 시절 진도대우의원에 있을 때 40대 중반의 남자가 노모와 함께 진료실을 찾았다. 매우 여윈 환자였다. 여태 결혼을 하지 않았고, 줄담배를 즐겼다. 말이 어눌하고 실실 웃기를 좋아해 동네에서는 바보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당뇨를 몇 년간 앓고 있는데 식후 혈당이 400이 넘었다. 조절을 잘 안 되는 당뇨였다. 노모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의 치료를 신신당부했다.

간호조무사와 사무장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말을 들으니 대식가에다 술도 많이 마신다고 했다. 당뇨약을 처방하고 안 들으면 인슐린을 쓰기로 하고 병원 승합차로 동네까지 모셔드렸다. 그런데 아무리 말리고 설득해도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고, 과식하고, 줄담배를 피워댔다. 결국 인슐린 요법으로 당을 조절해야 했는데, 과식·과음, 흡연의 생활 패턴은 아무리 얘기해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어느 날 노모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들이 문지방에 넘어진 채 꼼짝도 못한다는 것이다. 진통제 주사를 놓고 부목을 댄 뒤 들것에 조심스레 실어 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대퇴골 경부에 골절이 있었다. 골다골증이 진행돼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 것이다. 진도의 팽목항에 119가 대기하도록 연락하고, 날씨 좋은 날에는 하루 4회 운행하는 선편으로 환자를 진도의 병원에 이송했다.

환자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3개월 정도는 병원 요양이 필요한데도 1개월이 안 되어 경제적 이유 등으로 노모가 환자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마도 이것이 문제가 된 듯하다. 수술 뒤 집에 있게 된 환자를 방문 진료했을 때는 이미 환자의 몸 상태가 많이 악화돼 있었다.

방문 진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노모가 전화를 했다. 신음을 하고 열이 나고 아파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조금씩 움직이면서 아무래도 수술 부위에 자극이 갔는지 환부가 붓기 시작했다. 수술 부위에 농양이 생긴 것 같았다. 국소 마취를 하고 절개를 하니 상당히 많은 양의 농이 쏟아져나왔다. 농양의 깊이를 보니 대퇴골 수술 부위까지 깊이 들어갔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링거액을 주면서 환자와 노모에게 당뇨와 전신 상태 악화로 패혈증이 우려되니 다시 진도의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노모는 낫기가 힘들겠다고 판단한 듯 아들이 진도에 가서 죽으면 안 된다고 한사코 반대했다. 게다가 날씨마저 악화돼 선박 운행이 정지됐고 반강제로 후송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항생제와 링거를 투여하면서 배농을 하고 경과를 지켜봤는데 환자는 2~3일 만에 더욱 악화됐다. 결국 의식불명이 됐고 곧 돌아가셨다. 큰 병원에서도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은 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후송을 시켰어야 했다는 아쉬움과 반대를 뿌리치지 못한 것에 자책감이 들었다.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외래진료를 나오는 노모의 안부를 물으니 날마다 아들의 무덤에 가서 울다가 온다고 했다. 비록 동네에서 바보 취급을 받았지만 노모에게는 유일한 아들이었고 삶의 이유였다. 노모의 귀하고 귀한 아들을 살리지 못한 것에 깊은 죄책감이 들었다. 이 사건을 겪은 뒤 나는 섬 지역의 공공의료의 확충과 민간의료 공공기능 지원, 응급후송 체계 개선이 절실하다는 건의를 복지부 등의 관계기관에 드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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