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수록된 이 유명하고 살벌한 문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 포로수용소에 걸려 있었답니다. 무장해제와 인신구속 상태의 포로에게 저 문구는 얼마나 큰 낙심이었을까요. 정치가 예술을 참조한 가장 악랄한 경우입니다. 만일 의미상 ‘복음’을 전파할 목적의 문구가 제시된다면 그 효과는 과연 긍정적일까요?
세 집에 하나꼴로 매장 계산대 위에 붙어 있는 성물(聖物) 액자 속 문구는 특정 종교색을 표방하거나 경전 일부를 따온 겁니다. 내용은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축복과 건강을 기원하다는 선의가 담겼지요. 그러나 시장기를 달래러 들른 식당에서 새사람으로 거듭난 예가 흔할 성싶진 않군요. 매장에 걸린 성물은 불특정 손님을 향한 포교보다는 신앙 공동체의 결속을 확인하는 결사의 징표입니다. 종교적 가맹점 딱지랄까요. 한편 이것은 승객의 의사도 묻지 않고 틀어대는 버스의 수다스런 라디오 방송과도 조건상 비슷합니다. 간섭 없이 좀 살 순 없는 겁니까?










